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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독립적으로 살기 위한 조건은?

청소년의 입장에서 본 기본소득 운동

기본소득은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생계에 필요한 소득을 보장한다는 구상이다. 재산이 있든 없든,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에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 개개인에게 매달 균등한 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는 무상급식이나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현물 급여에 속하는 데 비해 기본소득은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개개인에게 기본소득을 얼마씩 보장해야 할지는 주장하는 사람이나 모델마다 조금씩 다른데, 대체로 최저생계비 안팎에서 왔다 갔다 하는 듯하다. 정부에서 정해둔 최저생계비(꽤나 적지만) 기준으로 보면 대략 50만 원 정도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작년부터 ‘기본소득네트워크’가 꾸려져서 기본소득 운동을 해가고 있다. 기본소득네트워크에서는 기본소득과 기본소득 운동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 ‘기본소득과 여성’, ‘기본소득과 장애인’, ‘기본소득과 청소년’ 같은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기본소득은 노동과 연계되지 않는 무조건적인 소득이기 때문에 기존의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에서 배제되어 있거나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이 더 큰 이해당사자가 된다. 그 일환으로 지난 6월 19일, 기본소득네트워크의 제안으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대학생사람연대가 공동 주최한 ‘기본소득과 청소년’ 토론회가 열렸다.



가족과 교육을 변화시키는 기본소득

첫 발제자인 기본소득네트워크 김성일 씨는 “간섭받지 않을 자유”, “모든 개인의 자유로운 삶”의 전제 조건으로서 기본소득의 개념과 의미를 이야기했다. 그 다음으로 기본소득 도입이 학교․교육제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가정․가족에서 청소년의 지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그리고 개인화․시장화 된 교육과 대학, 20대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기본소득의 의의 등에 대한 발제들이 이어졌다. 발제자들은 대체로 여러 가지 문화적, 제도적 걸림돌이 있긴 하지만, 기본소득이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기본소득은 지금까지의 가족, 세대 중심의 복지 정책과는 달리 개인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복지제도의 중점을 가족이 아니라 개인에게 두는 것 자체가 패러다임의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 제도는 우선 가족(정확히는 부모나 보호자, 후견인 등)의 경제력에 종속되어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밑받침이 된다.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자의든 타의든 가족의 틀에서 벗어난다는 청소년에게 아주 어려운 삶이 기다리고 있는 지금의 사회와는 달리, 가족의 틀을 벗어나더라도 사회가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것이다. 가정 안에서 청소년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동시에 10대, 20대가 자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또한 소위 ‘정상가족’을 가진 청소년과 그렇지 못한 청소년들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도 보탬이 될 것이다.

청소년들이 기본소득을 직접 받음으로써 생기는 변화 외에도,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인해 생기는 사회 변화는 청소년들의 삶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육이다. 교육의 방식과 내용은 노동시장이나 경제 구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의 사회에서는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력을 쌓고 입시경쟁 및 취업경쟁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학력(學歷)과 학벌이라는 차별 기제를 쥐고서 학생들을 강제적으로 공부하게 만들고,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경쟁에 참여하도록 몰아넣는 모양새다.



만일 기본소득이 도입되어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정규직 노동자나 전문직이 되지 못하더라도 일정한 생활수준이 더 쉽게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이런 경쟁은 완화된다.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이나 고등학교 등을 졸업하지 않는 것의 위험부담이 줄어든다. 기본소득은 사회에서 학교가 갖고 있는 독점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입시경쟁을 위한 학교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삶을 위한 교육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삶 전반에 걸쳐 생계에 대한 두려움과 압력을 줄여주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를 위한, 투쟁을 위한 실탄”

이날 토론회에서 주로 쟁점이 되었던 것은 기본소득 도입이 과연 그만큼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1살 정도의 아동들에게는 기본소득을 어떻게 지급하고 어떻게 사용하게 할 것이며, 민법상 경제적 권리가 제한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들도 언급되었다. 또한 한국의 문화적 풍토상 기본소득을 부모/보호자/후견인의 간섭 없이 얼마나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대체로 사회 구조에서 기본소득 도입이 과연 얼마만큼 변화를 견인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들이 컸던 것 같다. 자본에 의해서 소비의 주체로만 역할을 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청소년들이 기본소득을 명품 소비 등에만 사용한다면 기본소득은 그렇게 큰 역할을 해내지는 못할지도 모른다거나, 지금 상황에서는 기본소득이 시장화를 극복하는 제도가 되기보다는 전부 사교육비로 들어가는 게 되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왔다.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학교를 그만둔 학생들과 계속 학교에 적응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서 상류층이 되는 학생들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결과적인 양극화 문제 등도 토론의 주제였다. 현실적으로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는 사회에서 기본소득이 큰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거, 의료, 교육 등의 영역에서 기본적인 공공재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의 도입은 학교와 가정에 종속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삶을 바꿀 가능성을 안고 있는 제도이다. 기본소득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이, 청소년들의 생활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삶은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기본소득은 다른 여러 복지를 포함해 제도·문화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운동, 가족과 교육, 사회를 바꾸기 위한 청소년들의 주체적인 운동이 없이는 도입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날 김성일 씨는 기본소득은 “자유를 위한, 투쟁을 위한 실탄”이라고 했다.

토론회를 마치고,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들 개개인에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제도라는 생각을 했다. 부모든 학교든, 누군가의 눈높이에 맞는 인간이 되고 경쟁에서 승리하고 성적이나 뭔가를 달성하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으며 사회 전체가 우리의 살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경쟁과 예속 속에서 살아야 하는 청소년들을 비롯하여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은 그 의미 자체로 즐거운 제도가 아닐까.

덧붙임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