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 일반

장애와 청소년, 이중의 굴레를 벗기 위하여

청소년인권 경계넘기 2탄, 장애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병신, 애자, 절름발이, 벙어리, 저능아, 귀머거리, 맹인)야!”

학교 혹은 사회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한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써봤을 법한 단어가 저 안에 하나쯤은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누군가에 대한 단순한 장난의 표현으로 혹은 뭔가 부족해 보이는 행동이나 사고를 한 사람에게 주로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대부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딘가 불편한 사람을 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들이다. 이런 말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은 이 사회가 얼마나 장애에 대해 멸시, 차별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토록 장애를 가졌단 이유로 멸시받는 존재, 게다가 ‘보호받아야 할 미성숙한 존재들’로서의 의미를 갖는 청소년이란 이중굴레까지 씌어진 이들, 그들이 바로 장애청소년인 것이다.

장애인권과 청소년인권의 만남

‘청소년인권, 경계를 넘다 1탄 - 10대 성소수자’에 이어 지난 5일 ‘청소년인권, 경계를 넘다 - 장애청소년운동과의 만남’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실에서 열렸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와 시설인권연대 활동가와 함께 장애청소년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당사자운동의 길을 묻고, 함께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학까지 나온 ‘엘리트(!)’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 세 분을 포함하여 25명 정도가 함께한 자리였다.



현재 청소년인권운동은 ‘두발자유, 체벌금지’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학생인권 문제에 여전히 발목 잡혀 제대로 운동이 분화,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장애인권운동 역시 최근 장애인교육지원법이 극적으로 통과되기는 했지만, 학교의 문턱은 장애청소년들에게 여전히 높기만 하다. 게다가 ‘교육부의 입맛대로 시행령 만들기 작전’으로 인해 장애인 교육권 확보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런 현실은 결국 아직 장애청소년들의 주체적인 운동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권과 청소년인권이 함께 만나 장애청소년인권과 운동에 대해 탐색해보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어서, 이날 간담회는 더더욱 소중했다.

나는 비장애청소년 중심의 인권운동이 아닌 포괄적인 청소년인권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울산에서 아수나로 울산지부 친구들과 ‘장애청소년인권모임’이라는 소모임을 꾸리기 위해 준비 중이었고, 주말 통합학교나 장애인교육법 캠페인 등에 함께해오면서 진지한 고민을 나눌 자리가 필요했다. 마침 이러한 자리가 생겨 울산에서 함께 활동하는 친구와 함께 서울까지 올라와 간담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시설=감옥=학교?

1부에서는 학교 안 장애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장애학생지원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인 당사자 세 분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듣는 시간이었다. 9번 거부당하고 겨우 일반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활동가는 지체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쪼그려 앉는 화장실을 계속 사용해야 했던 것은 어찌 보면 비본질적인 이야기라면서 “또래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레 또래문화에서 문화적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털어왔다.

이창준 씨는 특수학교를 거쳐 대학을 진학한 사례인데, 특수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리고 특수학교에 붙어있는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솔직히 털어놔 주었다. 복지부에서 높은 사람이 오는 날이면 학교를 반짝반짝 청소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벌거벗고 죽도록 각목으로 맞았던 이야기, 한 겨울에도 30분 안에 씻지 못한 이들이 찬물로 목욕을 해야 했던 이야기, 밥상에 올라온 ‘꿀꿀이죽’ 이야기, 특수학교에 붙어있는 시설에서 갇혀 지내다 보면 사람이 나가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무능해지고 자기 몸이 시설로 체화돼 버리는 ‘시설병’ 이야기 등을 듣는 동안 앉아있는 청소년들도 숙연해졌다.

특수학교나 시설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 그곳 장애청소년들이 ‘안락한 생활’을 하는 줄 착각했던 청소년들이 들으면 놀랄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졌다. 또 장애로 분류되지도 않는 경증 장애청소년들의 경우 학교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장애청소년에게 시설이나 감옥이나, 일반학교나 특수학교나 안락한 공간 따위는 ‘결코’ 어디에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김정하 활동가도 시설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인 인권침해의 예들을 소개해주면서 흔히 시설을 ‘형기 없는 감옥’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짚어주었다. 시설 생활 장애청소년의 인권현실을 듣다 보니 단순히 낯선 이야기만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시설 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종교 강요와 통제, 억압은 미션스쿨에서 비장애청소년이 겪는 그것들과 다른 것이 없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꿀꿀이죽’으로 불리는 급식의 상태나, 잠시 밖에 나가도 끊어야 하는 외출허가증, 머리는 ‘깍두기’가 아니면 용서되지 않고, 땡볕에서 벌을 세우거나, 일상적으로 난무하는 폭언과 폭력 등등……. 이렇게 많은 부분들에서 학교와 시설이 쌍둥이처럼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분리된 문제가 아닌 서로의 문제가 이어져 있는 것이고, 장애청소년인권의 문제가 단순히 ‘장애청소년’에게만 국한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함께 연대하지 않고서는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장애청소년운동, 어떻게 집을 지을까?

이어 이러한 차이와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장애청소년운동의 집을 짓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구상해보았다.

시설인권연대 김정하 활동가는 “탈시설 운동이 청소년인권과 갖는 직접적인 관계에 대해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많다”면서 “아직 사례, 경험도 적고 청소년인권운동도 이제 시작단계고 장애인권운동에서도 청소년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느 지점부터 연대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가까이에 있는 장애청소년,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장애청소년들부터 찾아가고 같이 고민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현실을 만나면 이제 기지개를 켜려는 장애청소년 인권운동의 길찾기가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라는 말이었다.

김형수 활동가는 “장애청소년 당사자의 운동을 이끌어 함께 활동하는 것은 서로의 소통과 신뢰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지속적으로 서로 경계를 깨며 신뢰를 쌓아가는 것, 그러면서 자신들끼리의 대답을 자꾸 만나면서 풀면 그게 정답인 거 같다”고 단순한 만남만이 아니라 서로의 지속적인 소통과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렇게 청소년들 스스로 자신들의 담론을 끊임없이 만들어 나가야 할 필요성에 모두들 공감했다.

마지막 평가 시간에 이창준 씨는 “장애를 장애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에 모두들 공감하면서 간담회는 마무리 되었다.

비장애/장애인의 경계는 어디에?

이날 간담회를 계기로 평소에 참으로 궁금해하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과연 ‘비장애/장애인’의 진짜 경계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다음 중 ‘진짜 장애인’은 누구일까?

1. 키가 작아 높은 곳을 올라가기 힘든 아동
2. 렌즈를 끼지 않는다면 앞을 보기가 힘든 여학생
3. 평발이라 오래 걷기 힘든 청년
4. 관절염으로 걷기가 힘든 노인

언뜻 보면 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한국이란 사회에서 ‘장애’가 갖는 의미란 아주 협소한 의미의 장애, ‘장애=부끄러움’을 조장하는 의미라고 본다. 장애인에 대해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외국에선 장애를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모든 불편함’으로 규정하면서 종류만 몇백 가지로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고작해야 단순한 ‘차별적 분류’들 뿐이다. 그만큼 우리 모두는 자신이 확실히 비장애/장애인임을 구별할 수 없고, 확실한 경계도 짓지 못하면서 특정 누구를 가리켜 ‘장애인’이라고 ‘뻥’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장애청소년인권운동은 ‘다른 이들을 위한, 다른 이들의 운동’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모든 사회적 약자들의 운동’이라는 것이다.

2% 부족했던 것들!

사실 이러한 자리가 처음이니만큼 이야기할 것도 너무 많았고, 서로의 이야기도 가지가지였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부족한 시간은 역시나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게 했다. 그리고 실제 장애청소년 인권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본 것이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사례나 경험이 많지 않았고, 운동조직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에 관한 고민들을 여러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그럼에도 낙관할 수 있는 것은 아직은 부족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 앞으로 비장애 청소년들이 자신의 학교에서, 지역에서 장애청소년들과 함께 소통해 나갈 것이란 것, 오늘과 같은 만남과 소통의 자리를 꾸준히 마련함으로써 계속 새로운 담론과 패러다임을 생성하고 나아갈 것이라 점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2% 부족한 간담회였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과 돈을 쪼개어 울산에서 올라온 것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귀중하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첫발자국’을 내딛다

고등학교 야간학습 때 <십시일반>이란 인권만화책 안에 수록된 ‘첫발자국’이란 작품을 보고 혼자 펑펑 울면서 장애청소년인권운동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만화에선 혜연이라는 다리를 저는 친구가 학교 안에서 겪는 갖가지 불편과 차별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혜연이는 학교에서 화장실 하나 편하게 사용하지 못해 사고가 났고, 결국 이런 현실에 대해 친구들도 함께 싸우게 된다. 혜연이는 이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드디어 세상을 향해 첫발자국을 내딛었다고 이야기한다.

난 이번 간담회가 바로 그러한 소중한 첫발자국이라 생각한다. 분명 첫발자국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분명 그 첫발자국이 갖는 의미는 크고 뜻 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큰 ‘첫발자국’을 찍었다. 앞으로도 수많은 ‘발자국’을 찍으며, 이제부터라도 ‘수많은 발자국’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걸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발자국을 찍으며 앞으로 계속 남아있을 수많은 경계도 깨부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임

◎ 구덕기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울산지부에서 활동 중인 청소년인권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