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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선 청소년이 학교를 바꾼다

양동중, 동성고, 그리고 5.14…

조용한, 그래서 무서운…

학교는 하나의 폐쇄적인 사회다. 교문과 담벼락을 기준으로 학교 안과 학교 밖의 세계는 구별되며, 학생이나 교사 등 학교 구성원과 학교 구성원이 아닌 사람 사이에도 구별이 있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할 때 우리는 “사회로 나간다.”라고 말한다. 당연히 학교 안의 일은 안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밖의 일은 밖에서 할 일이라서, 학교 안에서 일어난 문제거리를 학교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떠들면 “학교 명예 훼손”이다. 학교 안의 일은, 정말 뭐 살인이라도 나지 않는 한은 학교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게 공공연한 불문율이다.

예컨대 내가 학교폭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때, 학교가 가장 신경 썼던 부분도 교육청이나 외부 언론에서 학교폭력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김제서고의 예처럼 교육청 홈페이지에 “우리 학교 급식이 값에 비해 좀 안 좋아요. 비리라도 있는 거 아닌가?”라고 글이라도 올렸다가는 학교 명예를 훼손했냐는 꾸지람을 듣고 징계를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학교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바깥사람들은 웬만해선 알 수가 없다. 최근에는 그나마 인터넷 등 매체의 발달로 학교 안의 이야기가 학교 밖으로 종종 새어나오긴 하지만,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학교의 권력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학생 입 꿰매는 학교의 ‘명예’

지난 4월에 양동중학교에서 백여 명의 학생들은 두발자유와 체벌금지를 요구하는 학내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모였다가 교사의 제지로 곧 해산 당했고 학교는 즉각 교사 및 학부모들을 소집하여 대처방안과 징계를 논의했다. 만약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 중 하나가 청소년인권단체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 청소년인권단체들의 연대체인 우리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학내시위는 학교 밖으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징계 역시 정말이지 ‘순조롭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4월말 두발자유 학내시위가 있었던 양동중학교. 높아보이는 담벼락만큼이나 '학생인권'의 벽도 높다.

▲ 4월말 두발자유 학내시위가 있었던 양동중학교. 높아보이는 담벼락만큼이나 '학생인권'의 벽도 높다.



학생들을 침묵시키고 안에서 ‘조용히’ 해결하려는 학교의 모습은 양동중학교와는 달리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경화여중의 학내시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3월 18일 경기도 광주시 경화여중에서 있었던 학생들의 학내시위는 구호 한번 못 외치고 조용히 매를 들고 뛰쳐나온 교사들에 의해 ‘진압’됐다.

그런 식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묻힌 학내운동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고 행동에 나서면 학교는 조용히 학생회나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이야기할 문제를 ‘학생답지 않은 행동’으로 시끄럽게 만들었으니 만약 밖에 알려지면 학교 명예가 실추된다며 학생들의 입을 꿰매려 든다. 이처럼 학교들은 학내시위나 학내행동에 나선 학생들에게 그 특유의 폐쇄적 구조를 이용하여 부당한 탄압을 일삼아 왔으며 학생들은 학교 내부에서의 행동은 자신에게 불이익만 줄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다.


용감한 1인, 그러나 꿈쩍 않는 학교

그래서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나섰다. 얼마 전 있었던 동성고등학교 오병헌 학생의 1인시위는 학교 교문 앞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1인시위로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다. 월요일 0교시, 학교 안에서 또 다시 학생 억압이 시작되는 시간의 상징성도 강하지만, 교문 앞이라는 공간의 상징성도 강하다. 교문 앞에서의 시위는 학교를 대상으로 하고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시에 ‘학교 밖 사회’를 대상으로 한다. 2004년 1인시위의 선례를 남긴 강의석 씨의 경우에도 학교 안에서 방송을 하는 등 행동에 나섰다가 먹히지 않고 징계만 받게 되자, 교육청 앞, 법정 등 학교 밖으로 나섰던 것이다.

지난 8일 체벌 금지, 두발자유, 0교시 강제보충 폐지 등을 요구하며 교문 앞 1인시위에 나선 오병헌 학생

▲ 지난 8일 체벌 금지, 두발자유, 0교시 강제보충 폐지 등을 요구하며 교문 앞 1인시위에 나선 오병헌 학생



그러나 한 사람의 용감한 행동이 현실을 뒤엎지는 못했다. 비록 강의석 씨에 대한 학교측의 퇴학처분은 법정소송까지 이어져 결국 철회되었고 대광고등학교는 강제종교수업을 않겠다고 했으나 그 이후에도 대광고를 비롯하여 일부 미션스쿨들의 강제적 종교수업은 계속되었다. 동성고등학교만 하더라도 오히려 아침 7시 강제 등교는 여전하고, 오히려 0교시 강제보충을 9교시 강제보충으로 돌려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제 이발 모습. 학교는 인권침해의 성역인가? <사진 출처: 5.14 청소년인권행동의날준비위원회 www.nocut.or.kr>

▲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제 이발 모습. 학교는 인권침해의 성역인가? <사진 출처: 5.14 청소년인권행동의날준비위원회 www.nocut.or.kr>



2004년 강의석 씨 1인시위 당시, 나는 강의석 씨에게 마음속으로 많은 응원을 보냈으나 한편으로는 세간의 이목이 종교자유와 학교 내 권력구조라는 문제의 핵심보다 ‘단식’이나 ‘서울대 진학’과 같은 강의석 씨 개인의 이야기에 쏠리는 것이 우려스럽기도 했다. 확실히 세상은, 영웅 몇 명의 힘만으로 바뀌진 않는 것이다. 이번 동성고등학교 오병헌 씨의 1인시위도 어떤 결과를 낳을지 기대되지만, “제2의 강의석”이라고 보도를 하는 언론을 보면 한편으로는 그 결과가 우려스럽기도 하다.


변화는 학교 밖 광장에서부터

때문에 학생들은 산발적인 저항, 개인적인 저항이 아닌 더욱 강하고 영향력 있는 결집된 다수의 힘으로 이 사회를 바꾸려고 한다. 바로 이번 5월 14일에 열리는 ‘청소년 인권행동의 날 - 두발자유 바로, 지금!’ 행사이다. 학내시위가 이어지고 거리 집회․시위가 일어난 것은 2005년의 상황과도 비슷하다. 청소년들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세력이 되려고 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 공적인 장소―거리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선언하는 사회적 주체가 되려는 것이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주최로 명동에서 열린 5.14 행사 홍보 캠페인. 두발자유를 지지하는 청소년들의 반응이 뜨겁다.

▲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주최로 명동에서 열린 5.14 행사 홍보 캠페인. 두발자유를 지지하는 청소년들의 반응이 뜨겁다.



더 이상 학교는 사회와 분리된 성역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거리에서 학교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폐쇄적인 학교 안이 아닌 광장에서부터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고 외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청소년들의 결집된 힘이 학교 안으로 침투하고 파고들면 학교 안에서의 권력 관계, 그리고 사회에서의 성인과 청소년 사이의 관계는 그 근본부터 변화할 것이다. 청소년은 당당한 권리의 주체, 변혁의 주체 중 하나다. 그 첫걸음으로 2006년 5.14는 ‘두발자유 바로, 지금’을 내걸었다.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완전한 두발자유를 얻어내는 것이 일차적 목표다. 이와 함께 5.14는 체벌, 정치활동 금지, 과중한 학습노동, 종교탄압 등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지적하고 학교구조를 바꾸기 위한 요구들을 외칠 것이다. “We can change Schools!” 5.14 홍보용 웹자보에 써있는 문구다. 그리고 이는 종래에는 “We can change Society!” “We can change World!”가 될 것이다.

5월 14일 ‘청소년인권행동의 날’. 청소년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동시에 인권을 위한 청소년 자신의 행동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번 행사는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5월 14일은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기념일―학생의 날에 맞먹는 중요도를 지닌다. 나는 얼핏 5월 14일이 사회의 공식적인 기념일로 지정되는 미래의 어느 날을 본다.

학교 실명을 밝히는 이유

ㄷ고, o중, s공고, o외고… 학생 인권문제를 다룰 때 흔히 많은 매체들이 학교이름을 밝히지 않고 첫 글자만 따서 쓴다. 아직 학생의 주장 내용이 확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고는 해도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심지어 사기업 등 다른 영역의 인권 침해 주장을 다룰 때와 견줘 그 정도가 지나치다. ‘학생’의 주장이기 때문에 더 못 미더워하는 것인가? 아니라면 학교는 공적기관에 속해있지 않다고 보는 것인가? <인권오름>은 인권탄압의 가해자로 지목받은 학교의 이름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고, 사람들이 알 권리도 있다고 본다. 학교의 ‘거짓’ 명예가 학생인권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편집인 주>
덧붙임

유윤종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소속으로 5.14 행사 준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