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2012, 2022 노조법 투쟁의 시간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다. 해고자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에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사원의 고용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2003년 1월 분신자결 한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열사의 유서 내용이다. 당시 학내에 분향소가 차려져 열사를 알게 됐고 노동자를 옥죄는 손배가압류의 문제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잊고 있던 배달호 열사의 이름, 그리고 손배가압류 문제를 다시 떠올린 것은 10년이 지난 2012년 대한문 분향소에서였다.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살자” 외치며 77일 간 이어진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이후 47억 원 손배가압류 고통 속에 동료들을 떠나보냈고, 22번째 희생자가 생기며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는 간절함에서 차린 분향소였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난 2022년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질문하면서 삭감되었던 임금의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51일 간 파업이 있었다. 교섭이 타결되고 현장으로 돌아가게 됐지만, 월급 200만원인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원청인 대우조선은 470억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며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진짜 사용자인 원청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노조활동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쓰이며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흔들어온 손배가압류를 금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2022년 가을 노조법 2·3조 개정운동이 시작됐다.
세 번의 겨울을 거리에서 맞으며 농성 투쟁 그리고 택배노동자, 조선하청노동자 등 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는 당사자들과 종교계를 비롯해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단식 투쟁이 이어졌다.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이 논의되는 주요 국면마다 선전전, 릴레이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국회 필리버스터에 대항하는 이어말하기, 자전거 행진, 플래시몹, ‘진짜 사장 나와라’ 챌린지 등등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해 다양하게 여러 활동들을 해왔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가 한데 모여 노조법 개정 운동을 띄운 2022년, 노조법 개정에서 3조 손배가압류 금지와 달리 2조 원청의 사용자 책임에 대해서는 미온적이었던 민주당을 설득하고 이끌어낸 2023년과 2024년. 21대 국회와 22대 국회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두 번 통과됐고,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로 두 번 모두 폐기되면서 노조법 개정은 멈춰서있었다.
두 번의 통과와 두 번의 거부권 이후 다시
지난 겨울과 봄, 계엄과 탄핵, 파면과 조기대선의 정세에서 다시 노조법 개정 국면이 열렸다. 이재명 정부는 노조법 개정을 공약했고, 민주당은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 법안을 조속히 처리한다고 밝혀왔다. 다시 국회에서 논의될 노조법 개정은 기존 통과됐던 안의 한계를 보완해 보다 진전시켜야 했다. ‘온전한’ 노조법 개정을 위해 3가지 내용을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 사례이기도 했던 건설기계 노동자들에 대한 공정거래위의 압박과 제재가 여전히 이어지고,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 등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지난한 소송투쟁에 나서야 하는 현실은 그대로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가장 첫 번째 요구는 누구도 노동자라는 이름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2조 1호 노동자 정의 조항을 더 폭넓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지난한 소송 투쟁을 사업장별로 해야 하는 현실을 반영해 2조 2호 사용자 정의 조항에서 원청을 사용자로 규정하는 내용에 더해 그 책임을 구체화하자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평생을 일해도 불가능한 천문학적 금액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해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옥죄어왔는데, 노동조합이 아닌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금지하자는 것이었다. 다시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더 진전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랐지만, 노조법이 개정되면 기업이 망할 것처럼 호도하고 왜곡하며, 재계만을 대변하는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 와중에 당정 논의가 오히려 지난 통과안보다 후퇴한 방향으로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우려가 짙었다.
8월 24일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9월 2일 이재명 정부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2조에서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를 사용자로 보고, 노동쟁의의 정의를 확대하고, 3조에서 손해배상 청구 시 책임비율을 따져야 하고 손배가 노조 방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더 나아간 노조법 개정을 위해 요구했던 3가지가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현장에서 다시 투쟁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노조법 개정 넘어 노동권을 위한 투쟁은 계속 된다
노조법 개정은 현실과 맞지 않고 뒤쳐진 법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싸워온 지난 20여 년이라는 시간, 그 싸움을 계속 이어온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정치는 가장 나중에 뒤따라 왔을 뿐이다. 6개월 뒤 시행을 앞두고 벌써 개정 노조법에 대응할 방안(꼼수)들을 찾는데 기업들이 골몰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고, 많은 언론에서 기업이 살려면 노동자의 권리는 나중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쏟아낸다.
노조법 개정 이후에도 지난한 싸움들이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조법의 문제가 대두된 지 길게는 20여 년, 짧게는 지난 3년, 노조법 개정 투쟁이 우리 사회에 쌓아온 의미를 기억한다. “진짜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노동자들이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조 할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 “일터에서 겪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노동조합이 더 잘 싸울 수 있어야 한다”, “불법 딱지로 노동조합의 정당한 투쟁이 가로막혀서는 안 되며 그러한 수단으로 쓰여 온 손배가압류는 없애야 한다” 등등 지난 투쟁의 시간은 노동자의 권리, 노조 할 권리를 사회적인 기준이자 원칙이 되어온 시간이다. 노조법 2·3조 개정 이후, 법에 갇히지 않고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

▲ 2023년 11월 2일 노조법 2.3조 개정 국회 통과 촉구 100인 행동

▲ 2023년 11월 17일 개정 노조법 즉시 공포 촉구 100인의 고함

▲ 2022년 12월 7일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인권단체 기자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