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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유엔무대에서 한국 사회권 심사

23일 민간단체 발표, 대우폭력․비정규직 지적


6년만에 한국의 사회권 상황이 유엔의 심사대에 올랐다. 23일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인권센터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온두라스, 중국, 베네주엘라 등 5개국의 사회권 상황을 심사하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아래 사회권위원회)의 제25차 회의가 열렸다. 사회권위원회는 첫날 오후 심사대상이 되는 나라에 대한 민간단체들의 발표를 경청했다. 민간단체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각국의 심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사회권규약 제2차 반박보고서 연대회의’도 지난 1년여간 준비해온 보고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국의 사회권 상황에 대한 인권․사회단체들의 의견을 발표했다. 한국 민간단체 대표단은 유일하게 사진과 그래프 등 시각자료를 이용해 더욱 주목을 끌었다. 경찰의 폭력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대우차 노동자의 사진으로 발표를 시작한 박경신 변호사는 1차보고서 심사 때도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이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떠올랐음을 상기시키며 6년이 지난 지금 “부의 불평등은 오히려 더 악화되었고, 이에 저항하는 평화로운 활동에 대한 국가의 폭력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표단은 경제위기가 가장 정점에 이르렀던 1998년 하위 20% 계층의 소득은 17.2% 줄어든 반면, 상위 10% 계층의 소득은 오히려 4% 증가했던 사실과 해를 거듭할수록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악화되고 있다는 지표로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어 대표단은 현재 정부의 정책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있으며 또한 그들을 사회권의 사각지대에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비정규직 노동자다. 대표단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저임금에 시달리고 사회보험으로부터도 배제된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의 비정규직화가 두드러짐을 강조하며 이는 심각한 여성차별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대표단은 “한국정부가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가난한 나라의 외국인 노동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면서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장애인들의 높은 실업률과 정부가 정해놓은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이 휴지조각에 불과한 현실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편의시설의 부족 혹은 허술한 설비로 장애인들의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노동기본권과 관련해서, 대표단은 ILO의 거듭된 권고에도 불구하고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가 금지되고 있는 상황, 공무원의 단결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95년 1차 보고서 심사 후 한국정부에 대한 위원회의 권고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대표적인 예다. 또 사회보장권, 교육권, 건강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이 분야에 대한 정부 예산의 확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대표단은 발표문을 통해 인권단체들이 반대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안이 조만간 국회에서 통과되려 한다는 점도 알렸다. 정부안대로 통과될 경우 공무원에 의한 인권침해 조사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대표단은 한국에서 사회권 보장의 진전을 꾀하는데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최종견해가 중요한 계기를 제공할 것임을 강조하며 민간단체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 민간단체의 발표가 끝나자 이번 회기의 의장인 필리핀 출신의 단단 씨는 이례적으로 “매우 훌륭한 발표”였다고 의견을 밝히며, 민간단체들이 제출한 보고서 및 기타 자료들을 유심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정부 보고서에 대한 심사는 4월 30일과 5월 1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