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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물 사유화가 부른 세계적 재앙

[기획] '물은 인권이다' ① 왜 물에 대한 권리인가?

[기획 의도] 지난 3월 22일 유엔이 선포한 '생명을 위한 물 국제행동 10년, 2005-2015'(the International Decade for Action 'Water for Life')이 시작됐다. 2015년까지 안전한 물에 접근하지 못하는 인구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생명의 원천인 물을 고갈시키는 착취행위를 중단시킨다는 것이 주요 목표. 이 10년 계획은 물의 오염과 고갈, 불평등 분배 문제가 재앙 수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계획만으로 재앙의 진원지인 '물의 사유화' 흐름에 파열을 낼 수 있을 것인가? <인권하루소식>은 2차례에 걸쳐 '물에 대한 권리'가 의미하는 바와 이 권리를 위협하는 국내외 '물 사유화' 흐름을 살펴본다.


"여기 나온 많은 기업들은 물을 우리 동포들의 피로 더렵혔다!"

2003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3회 세계 물 포럼'. 세계 각국의 정치가, 국제금융기구 관계자, 기업가들이 가득 모인 회의장에서 볼리비아에서 온 공동체 지도자 오스카 올리베라는 이렇게 외쳤다. 그의 발언은 물의 사유화로 인해 세계 민중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 어린이, 선주민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재앙을 웅변적으로 고발한다.


도둑맞는 물

물은 음식, 주거, 건강, 농업 등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다. 물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그래서 물은 그 자체로서 현세대와 미래세대까지를 포함한 모든 인류의 기본적 권리일 뿐 아니라, 다른 인권들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이것이 바로 물이 그 누군가의 소유물이나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현실에서 '모두를 위한 물'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인구와 1인당 물 이용량이 급속히 늘어나는 데 비례하여 물의 오염과 고갈 속도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분배의 불평등 문제 역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1억에 달하는 인류가 기초적인 물조차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20억이 넘는 인류는 기본적인 위생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마실 만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해 물 이용량의 절반 이상이 부자 나라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기초적인 물조차 공급받지 못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2050년 무렵이면 세계 인구의 1/3이 물을 제대로 구할 수 없게 되고 콜레라 등 깨끗하지 못한 물이 부르는 질병으로 1년에 수백만 명씩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물의 사유화가 낳은 재앙을 고발하는 영화 <갈증> [출처] www.thirstthemovie.org

▲ 물의 사유화가 낳은 재앙을 고발하는 영화 <갈증> [출처] www.thirstthemovie.org



그러나 '물의 위기', '인권의 위기'는 물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이윤 창출의 기회'가 되어왔다. 물 시장은 거대 물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21세기 가장 각광받는 시장 가운데 하나. 이들은 공공의 자원인 물을 병에 담아 비싼 값을 붙여 되팔고, 물에 관한 공공서비스 부문을 정부로부터 넘겨받아 높은 요금을 받아 이윤을 챙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금융기구들은 각국 정부에 대출이나 신용등급 상향 조정을 내주는 대가로 물과 같은 필수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라는 압력을 가하면서 물 기업들의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해왔다. 물의 관리와 공급을 시장에 내맡기는 것만이 물의 위기를 해소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속삭이면서. 세계은행이 추산한 2001년 세계 물 교역량은 무려 1조달러. 이렇게 수에즈, 온데오, 비당디 등 세계적인 물기업들이 주머니를 두둑이 채우는 사이, 물의 위기는 더더욱 심각해지고 인권은 치명적 타격을 받고 있다.


물의 사유화가 불러온 참혹한 재앙들

물이 사적 이윤의 원천으로 전락했을 때 빚어지는 문제는 소유주인 기업들이 '돈 되는 짓은 하고 돈 안 되는 짓은 하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다.

그 나라의 경제수준과 관계없이 물의 사유화가 진행된 곳에서는 물 값은 올랐지만 질은 떨어지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관찰됐다.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물을 공급하고, 깨끗한 물을 유지하고 제공하기 위한 투자는 뒷전으로 밀려난 탓이다. 프랑스에서는 수도사업이 민영화된 이후 요금이 1.5배 상승했다. 볼리비아에서는 세계적 물기업인 벡텔이 수자원 관리 사업권을 따내면서 요금이 3배 이상 뛰어올랐고, 최저임금이 1백달러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물값으로 무려 20달러를 내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가나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소득의 50%를 물값으로 내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또 기업들의 요금 인상과 무분별한 채취로 '물기 없는 땅'이 늘어나자, 지역주민,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은 더 먼 곳으로 물을 뜨러 다니느라 더 고되게 일해야 했고 학교마저 그만두는 일이 벌어졌다. 물을 구하는 데 따르는 위험도 높아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마출루 지역 주민들은 물값을 내지 못해 악어와 하마가 자주 출현해 '크로커다일'이라 불리는 강에서 물을 길어 먹는다. 99년 영국계 물기업 바이워터가 푸말랑가 주의 물 서비스 사업권을 따낸 이래 요금을 내지 못한 이들은 몇 년째 물을 얻지 못했다. 강으로 물을 뜨러갔던 어린이들이 악어에 물려죽는 사태도 곧잘 일어난다.

먼 곳까지 물을 길러 다니는 어린이들 [출처] www.un.org/waterforlifedecade

▲ 먼 곳까지 물을 길러 다니는 어린이들 [출처] www.un.org/waterforlifedecade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위협받고 있다. 1998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영수도회사를 대표적 물기업 수에즈에 내맡기는 민영화를 단행했다. 관리권을 넘겨받은 수에즈는 당시 7600명 노동자 중 4000명을 명예퇴직시켜 버렸고, 모자란 일손은 3개월에서 6개월짜리 단기 계약직 노동자들을 채용해 보충했다.


물 이용은 빼앗길 수 없는 권리

'물에 대한 권리'가 새삼 강조되는 것은 그만큼 이 권리가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 열린 '밀레니엄 정상회담'에서는 2015년까지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에 접근할 수 없는 인구 비율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세계보건기구/유니세프 협력 감시 프로그램'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아시아의 경우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은 인구의 65%, 위생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은 80%에 이른다. 올해부터 시작된 '생명을 위한 물 국제행동 10년'은 밀레니엄 정상회담의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후속조치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예상되는 인구 증가율까지 감안해 매년 1억명에게 새롭게 물이 공급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위생설비를 갖추는 일도 함께 해야 한다. 그러나 국제금융기구들의 부채 상환 압력과 세계적으로 확대일로를 걷고 있는 사유화 흐름에 맞서 이 계획은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 그에 앞서 이 계획 자체가 물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할 각국 정부의 책임을 다하는 계획인지부터 질문되어야 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2002년 내놓은 '일반논평 15'(아래 논평)는 사회권규약에 규정된 물에 대한 권리를 구체화하고 가입 당사국의 책임을 좀더 분명히 하기 위해 내놓은 규약해설이다. 논평은 여러 국제인권조약에 흩어져 있거나 숨어있던 물에 대한 권리를 밖으로 끄집어내고 풍부한 해석을 곁들어 놓았다.

논평에 따르면, 물에 대한 권리는 세 가지 측면에서 구체화된다. 유용성(availability), 곧 개인과 가정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물이 지속적으로 제공되는가 질(quality), 곧 그 물은 안전하고 마실 수 있는가 접근성(accessibility), 곧 물은 이용 가능한 상태에 놓여있는가가 이 권리의 보장 여부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된다. 이 때 '접근성'은 다시 안전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어 물리적으로 접근 가능해야 하고 비용을 낮춰 경제적으로도 접근 가능해야 하며, 차별없이 누구나 물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이와 같은 일이 지켜질 수 있도록 물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세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가 직접 무기실험이나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물을 오염·파괴하거나 도시빈민 등 특정 집단을 고의적으로 물 공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 물을 함부로 추출하거나 오염시키는 사적 행위자들을 규제해야 할 공적 책임을 회피하는 일, 물값 부담을 올려 접근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일은 모두 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모든 개인과 가정이 물의 최소량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질병 예방을 위한 충분한 하수설비를 확보하는 일 등은 유보될 수 없는 즉각적 의무 사항이다.

이에 비추어볼 때, 물 관리권을 민간기업에 내맡겨온 전세계적 사유화 정책들은 결국 정부의 인권 보장 의무를 체계적으로 포기해온 과정이나 다름없다. 물을 시장에 내맡긴다는 것은 이 권리를 '돈'에 종속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관련 정책의 수립 과정을 더욱 비밀스럽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의 사유화 흐름을 차단하지 않는 한, 이 권리의 보장은 요원하다.


'목마른 자'들의 저항

물기업과 국제금융기구들의 횡포, 정부의 외면 속에서도 물의 사유화 흐름에 맞선 민중들의 저항은 세계 각지에서 계속되고 있다. 볼리비아 코차밤바 민중들의 투쟁은 그 대표적 사례. 세계은행이 부채탕감의 조건으로 물의 사유화를 요구한 뒤, 1999년 헐값에 물 관리 사업권을 따낸 벡텔사는 수도요금을 올리는 것은 물론 지역 공동체에서 자체적으로 길어쓰던 우물과 농업용수에까지 요금을 매기고 통제하기 시작했다. 소득의 1/5∼1/4을 물값으로 내야 할 처지에 몰린 민중들은 2000년 1월부터 넉달 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계엄령까지 선포하고 폭력적으로 민중들의 시위를 진압하려 했지만, 민중들의 저항은 그치지 않았다. 벡텔사는 결국 그해 4월 사업을 포기하고 코차밤바를 떠났고, 이듬해 그 보복으로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볼리비아 민중들은 프랑스 물기업 수에즈에게 수도 라파즈 외곽에 위치한 엘알토 시의 물 관리 사업권을 이양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철회시키기 위해 또다시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볼리비아 민중들의 투쟁은 물 사유화를 저지하는 데서 나아가 공동체에 기반한 자체적인 물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인권과 민주주의를 스스로 건설하는 데까지 성장하고 있다.

인도 플리차마다 민중들의 투쟁도 주목할 만하다. 1998년 코카콜라 공장이 들어선 뒤 이 마을에서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그나마 남은 물도 오염되는 일이 벌어졌다. 여성들과 어린이들은 매일 5킬로미터나 떨어진 다른 마을로 물을 뜨러 다녀야 할 정도였다. 주민들의 반대로 2002년 4월 마을 의회는 결국 코카콜라 공장 운영 허가를 취소했고, 법정싸움이 계속됐다. 마침내 2004년 2월, 주 법원은 코카콜라 공장에 지하수 공급을 4개월간 중단하라는 판단을 내렸다.

인도 민중들은 지난해 수십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물 사유화 저지 전국 행진을 벌이면서 신임 만모한 싱 총리로부터 사유화 속도를 늦추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그해 말 인도 정부는 수도세를 최고 10배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이다.

미국 곳곳에서도 물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각종 로비를 벌이는 물 기업들과 물 사유화 정책을 저지하려는 민중들 사이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스톡톤 시에서는 지난해 시장 선거의 최대 쟁점이 바로 물 사유화 정책이었고, 사유화 정책을 밀어붙였던 게리 포데스토 시장이 반대운동에 부딪혀 낙선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이처럼 물의 사유화는 지구 곳곳에서 민중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이곳 한국에서도 물의 사유화에 맞선 도전이 시작됐다.

(다음호에서는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유화 흐름과 그에 맞선 민중들의 도전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