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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자유롭고 평등한 물을 위하여

[기획] '물은 인권이다' ② 물 사유화에 맞선 한국 민중의 저항 (끝)

"앞으로는 물을 사먹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십 수 년 전의 물 절약 캠페인에서 볼 수 있었던 문구 중 하나다. 이 말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한국이 유엔 산하기구인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에 의해 '물부족국가'로 분류되어 있고 앞으로 '물기근국가군'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물은 점차 부족해지고 그마저도 오염되어 감에 따라 사람들은 보다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를 들여놓고 생수를 사서 마신다. 이미 한국의 생수시장 매출액은 연 3천5백억원, 정수기 시장은 1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정수기를 사용하고 생수를 사먹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수돗물은 믿을 수 없다'고 해도 수도 요금을 내지 못해 그마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빈곤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슈퍼마켓에 편의점에 널려있는 생수를 뽑아내느라 정작 생수 공장이 들어선 지역의 주민들은 물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 민간기업에 맡겨버린 하수도에서 더러운 물이 흘러나와도 속수무책이다.

물에 대한 권리, 즉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권리는 물의 상품화, 사유화의 공세에 부딪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물 사유화의 흐름이 한국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에 저항하는 민중들은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살펴보자.


물 공급 현황

2002년 기준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평균 유수율(물이 손실 없이 공급되는 비율)은 약 78.6%, 상수도 보급률은 88.7%, 하수도 보급률은 75.7%이다. 그러나 상·하수도 보급률은 지역별로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수도의 경우, 특별시·광역시와 시 지역의 상수도 보급률은 98.5%, 97%인 반면 면지역은 31.1%에 불과하고, 하수도의 경우도 최고 98.7%(서울), 최저 33.9%(전남)로 큰 편차를 보인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펑펑 쏟아지는 대도시와는 달리 상하수도 보급률이 낮은 농어촌·산간도서지역의 주민들은 식수와 농업용수 등을 구하기 위해 산 속 깊은 계곡으로 가서 물을 떠오거나 지하 수백 미터에서 물을 끌어 올리려 애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직도 미흡한 빈민층의 물 접근권

수도요금 혹은 임대주택의 임대료 장기 체납 가구나 철거지역은 단수조치로 물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방조례에서는 대개 3개월 이상 수도요금을 체납하는 가구에 대해서 단수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지난해 단수조치를 받은 가구는 무려 2만여 가구에 이른다. 특히 이러한 가구들 가운데 차상위계층에 속한 가구는 절대빈곤에 시달리면서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되지 않아 생활보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빈곤의 사각지대에 방치된다는 점도 이미 여러차례 지적된 바 있다.

오산시 수청동 철거지구의 경우에는 철거대책위원회의 투쟁이 계속되자 약 50여일 가까이 단전단수조치를 받았고, 해당 지역이 경찰에게 원천봉쇄를 당해 외부로부터의 물 반입도 막혀있는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러던 중 5월말 경 단수조치가 해제되었는데, 이때까지 철거지구에서 생활하던 이들은 빗물을 받아서 쓰거나 간신히 반입되는 생수 한 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민간기업으로 넘어가는 상하수도 관리

전주에서는 지난 4월부터 상수도 민간위탁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상수도 관리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시설보수 및 개선이 필요한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유수율은 낮아지고 상수도 관련 예산은 끊임없이 증가되었다. 하지만 상수도 관리주체인 전주시는 이런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상수도 민간위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상수도사업소민간위탁반대 대책위는 수자원공사가 매년 정부로부터 평가를 받고 이윤추구를 최우선 과제로 강요받고 있는 현실에서 물에 대한 공공성이 확보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수자원공사가 공급하는 물의 가격이 99년부터 지속적으로 인상되어 2005년 현재 평방미터당 394원인데 이는 전주의 대성정수장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물의 단가가 평방미터당 265원인 것에 비하면 약 48% 이상 비싸다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상수도 시설 관리에 필요한 재원이 수자원 공사가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제3자에게 재위탁하거나 대규모의 차입이 불가피해 결국 시민들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2001년 3월에 개정된 수도법에 따르면 전문기관에 수도사업의 위탁운영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2002년 기준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하수도 운영에서는 이미 201개의 하수처리장 중 118개가 민간에 위탁되어 있다. 신설되는 하수처리장은 우선적으로 민간업체에 위탁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또한 민간 기업이 직접 상·하수도 사업자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다양한 방안이 환경부와 행자부를 중심으로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효율성과 경제성을 명분으로 한 상하수도의 민간위탁은 이미 그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6월 2일 전주에서는 잠정집계만으로도 하수 35만1800톤이 미처리된 채 방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해 12월 전주시는 (주)태영을 대주주로 한백·포스코·롯데건설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만든 주식회사인 (주)전주개발에 20년 동안 운영을 위탁하는 협약을 체결했는데, 불과 6개월만에 사고가 터진 것. 또 지난해에는 논산시로부터 상수도 관리를 위탁받은 수자원공사가 관로 보수공사로 인한 녹물발생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상하수도 관리는 물에 대한 접근·이용 뿐만 아니라 시민의 건강과 환경에도 직결되는 부분인데 이를 공적 영역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에 일임한다는 것은 이런 사고가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게 한다.


지하수 먹어치우는 생수공장

제주도의 지하수를 지키기 위한 제주도민들의 끈질긴 싸움도 있다. 지난 2월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국공항(주)는 제주도가 지하수 판매를 '계열사 판매'로 한정지어 실질적으로 시장판매를 금지시킨 것이 부당하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한국공항(주)는 현재 월 3천 톤에 달하는 먹는샘물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제주도 이외의 지역으로 반출하여 판매할 수 없도록 제한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제한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제주도민들은 주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물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여왔다.

이에 대해 지난 6월 27일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는 제주도가 △용수를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고 △지하수를 공적인 관리방법에 따라 공공재로 관리하고 있으며 △한국공항(주)의 사업을 지나치게 제약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행정심판청구를 기각했다.

생수공장을 둘러싼 제주도민들의 저항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물이 부족한 섬인 제주도에서 지하수가 중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역주민들의 중요한 공공자산으로서의 지하수를 이용하는 것 역시 기본권인데, 이러한 기본권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지하수를 상품화하려는 기업들의 시도는 지금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나오는 물을 이용하지 못하고, 필요한 물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야만 한다. 생수공장을 둘러싼 제주도민의 저항은 '물'이 생존권이자 기본권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국공항(주)가 제기한 행정심판 청구가 기각된 것은 물에 대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제주도민의 싸움이 얻어낸 소중한 결실이다.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물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

이러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현실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효율성을 앞세워 물 관리가 지속적으로 시장에 내맡겨 지면서 서민들 특히 빈곤층은 기본권인 물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또한 공공자산으로서의 물이 점차 시장에서의 상품으로 유통되고 있고 이러한 경향은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일반논평 15'는 물과 관련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가 수행해야 할 의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지금의 한국 정부는 물 사유화의 흐름에 대한 감시와 제한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전세계에 몰아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정부는 2002년 6월 환경서비스 시장개방 요구서를 교환했고, 유럽연합·미국·일본 등 13개국이 한국에 대해 △음용수처리 △생활오폐수처리 △생활폐기물처리 △토양오염및지하수정화·복원 등에 대한 시장개방을 요구했다. 또한 국제표준화기구(ISO)는 2006년까지 '상하수도서비스 표준'을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먹는 물분야 서비스'에 대한 국제규격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규격이 제정되면 물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 중심으로 물 시장 개방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면 될수록 민중들의 물에 대한 권리는 시장논리에 짓밟힐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물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품이자 각종 생산 활동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자원이며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잘 보존해야 할 유산이다. 이는 특정한 누군가가 소유하고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자산인 물은 누구나 깨끗하고 안전하게, 자유롭고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야말로 '당연한 상식'이 될 수 있도록, 물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려는 사유화 흐름에 맞서는 싸움은 계속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