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아이들, 집을 나와 집을 찾다

[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③

"한 학생이 가출을 했어요. 알아 봤더니 그 학생 집이 불법도박장, 일명 하우스인 거예요. 집에 아빠가 있으면 경찰이 올까봐 불안하고 경찰이 있으면 아빠가 올까봐 불안하대요. 집에 다시는 안 들어간다고 버티다가 학교도 그만두고 연락이 끊겼어요."(ㅅ공고 교사)

많은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있다. 늘어나는 부모의 이혼, 별거와 가정폭력, 학대, 날로 심각해지는 빈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많은 아이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가출을 했다기보다는 집에서 퇴출을 당한 그 아이들은 곧 사회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분명 존재하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아이들의 집에 살 권리

주거권은 단순히 집 없는 사람의 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식솔을 거느릴 공간을 요구할 수 있는 가장의 권리는 더더욱 아니다. 주거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전과 평화, 존엄 속에 살' 권리이고 이 권리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도움을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청소년 역시 인간이기에 당연히 안전과 평화, 존엄 속에 살 수 없는 집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집을 사회에 요구할 수 있다.

청소년기본법 제5조 1항은 '청소년은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자기 발전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모든 형태의 환경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권리의 주체이기보다는 보호의 대상이고 따라서 주거권은 청소년을 보호하는 어른의 권리인 것처럼 여겨진다. 친권자에게 '미성년인 자의 거소결정권'을 인정하는 우리 민법 조문도 이런 생각을 반영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 발로 집을 나온 가출 청소년에게 집에 살 권리를 인정하라는 주장은 억지로만 들린다. 사회는 그들에게 '비행청소년' 이란 이름을 붙이고는 빨리 귀가하여 '보호자의 선도'를 받으라고 종용한다. 집이 그들의 권리임을 무시한 채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족 안에서의 해결을 강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로 돌아가란 말인가. 그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집은 없다.

"윤섭(가명, 18세, 가출청소년)이가 한 달만에 붙잡혀왔어요. 근데 집에 안 간다는 거야. 엄마는 애한테 관심 없지, 새 아빠는 손찌검까지 하지. 한 달 동안 친구들이랑 방 얻어 살았는데 거기로 다시 가겠다고. 부산에 친 아빠 집도 있고 서울에 친 엄마 집도 있고 친구들이랑 살던 집도 있고. 집은 많은데 정작 얘가 들어 갈 집은 하나도 없어요."(ㄱ교사)



즐거운 나의 쉼터?

우리나라에서 돌아갈 집이 없는 청소년을 첫 번째로 맞이하는 시설은 '쉼터'이다. 쉼터는 가출청소년이 가출원인을 해결할 동안 머무를 수 있는 단기 임시시설로 6개월까지 거주 가능하다. 하지만 그 사이 문제가 해결되는 예가 거의 없어 1년 까지 연장할 수 있다.

쉼터 퇴소 후 갈 수 있는 중장기 시설로 그룹홈이 있다. 그룹홈은 대개 쉼터보다 소규모로 '그룹홈'이란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임시시설이 아니라 집을 대신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보호 기간에 제한이 없다. 하지만 부족한 국가 지원으로 환경이 매우 열악하고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 결과 7만 명에 달하는 가출 청소년의 1.7%만이 이 시설들을 이용하고 있다. 소수의 가출청소년에게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급급한 실정인 것이다.

쉼터 생활 2주째인 기선이(가명, 16세, 현재 쉼터 거주)는 쉼터가 너무 만족스럽다. 며칠 전에 쉼터에서 롯데월드를 다녀온 후로는 특히나 더 입이 벌어져 있다. 그런 기선이를 보며 쉼터 생활 선배인 장훈이(가명, 6개월 쉼터 생활, 현재 그룹홈 거주)와 영일이(가명, 1년 쉼터 생활, 현재 그룹홈 거주)는 걱정스런 눈빛이다.

"쉼터가 처음엔 좋아요. 그런데 6개월이 끝날 때쯤 되면 진짜 힘들어요. 사람들(쉼터 입소 청소년)이 입 퇴소를 반복하니까 적응도 안 되고 답답해요. 그래서 성격도 이상해지고, 작은 일에도 격해지고 예민해지기도 해요."(장훈)

"시설에 가면 생활을 똑같이 해야 해요. 잠깐 밖에 나갈 때도 얘기 안하면 혼나요. 똑같이 밥 먹고 똑같이 설거지 하고." (그룹홈 '디딤터' 운영자)

"단합해야 하니까 참는 게 일이 되요. 너무 참다보니까 감정도 메마르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나만의 공간이 없으니까 많이 힘들죠."(영일)


집안 문제로 혹은 거리 생활로 지친 아이들에게 쉼터는 그다지 쉴 만한 공간이 되지 못한다. 수용 위주 정책으로 운영되면서 이해와 지원보다는 통제와 관리가 우선되어 많은 아이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게 (시설)체질이 있어요. 체질인 애들은 1년도 버텨요. 아니면 6개월도 못 버텨요."(그룹홈 '디딤터' 운영자)

이런 이유로 아이들은 주저 없이 '지원이 빠방한' 쉼터보다 '컴퓨터도 TV도 없는' 그룹홈을 선택한다.

"쉼터는요 가족적인 게 없어요. 집 같지가 않아요. (그룹홈 에서는) 만약 방황을 한다 싶으면 기다려줘요. 지금 그룹홈에서 적응 안 된다고 나가버린 애가 있어요. 쉼터 같으면 벌써 퇴소 조치하고 그랬을 텐데 (그룹홈은)그러지 않아요."(영일)

대부분 쉼터 아이들은 집과 가족으로부터 스스로 탈출했음에도 '가족적인', '집 같은' 공간을 요구한다. 사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조건 없는 지원과 신뢰, 지속적인 애정이다. 다만 그들은 '집'과 '가족' 말고 그런 따뜻한 공간을 상상할 줄 모르는 것뿐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집에 있어야지' 라는 뿌리 깊은 편견 때문에 아이들은 원하는 공간을 표현할 단어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국가야, 국가야 쉼터 줄게, 내 집 다오

주거권은 단순히 공간을 요구하는 권리만이 아니라 개인이 '원하는' 공간을 요구할 권리이다. 따라서 '청소년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당연히 '청소년은 어떤 공간을 원하는가?' 라는 질문이 앞서야한다.

"남학생인데 아빠가 심하게 학대해서 쉼터로 갔어요. 누나가 하나 있는데 다른 쉼터에서 살고 있구요. 근데 얘가 누나한테 가고 싶다는 거야. 누나도 동생이랑 산다고 하고. 그 (누나 있는)쉼터에 물어 보니까 얘를 받을 수는 있대요. 근데 얘네 아빠가 딸이 그 쉼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아내서 어찌나 난동을 부리는지 지금도 힘든데 아들까지 받으면 걔네 아빠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남자애가 있는 쉼터는 여자를 안 받고. 애가 누나랑 살고 싶다고 우는데, 왜 안 그러겠어?" (ㅊ교사)

이 학생이 원하는 공간은 누나와 함께 살기에 적절한 공간, 아빠로부터 안전한 공간이다. 그런 공간이 아니라면 롯데월드를 보내주는 쉼터도 방황을 기다려 주는 그룹홈도 이 학생에게 충분하지 않다.

"숙식 제공이나 외부적인 것 보다요 내면적인 것 있잖아요. 심리적인 치료나 가정환경이나 (가정)불화 같은 거 해결해줘야 하는데. 애들이 불만이 많아요. 그런 거 안 해 주고 맨날 먹을 것만 주면 되는 줄 안다고."(영일)

"가정 폭력 당하다 들어온 애들은요 그게 (가정 폭력 당했다는 게) 다 느껴져요. 걔네들은요 쉼터에 들어오면 거의 2주 동안 말을 아예 안 해요. 경계해서."(장훈)


의식주 뿐만 아니라 원 가정의 복구와 다양한 상담 혹은 치료 프로그램 등이 가출청소년들에게는 절실하다. 이때 원 가정의 복구와 새로운 공간 마련 사이의 선택 역시 청소년의 권리임은 물론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상담자는 청소년의 가출 원인을 집중 조사하여 가출 청소년이 가족과 결합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재결합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는 대안적인 주거지를 제공하고 있다.

더 나아가 청소년은 스스로 선택한 공간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사회에 요구할 수 있다.

"거기(쉼터)는 일일이 뭐든지 다 해주는데 여기(그룹홈)는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해요. 이틀에 한 번 씩 (애들이) 아침밥을 해먹는 게 우리 원칙 이예요. 가정집 분위기지만 스스로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거죠."(그룹홈 '디딤터' 운영자)

현재 가출청소년 쉼터는 독립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 내지는 기술 훈련 등을 거의제공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이런 필요에 대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법적 근거 하에 제공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전환생활프로그램이다. 16∼21세의 청소년들에게 거주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노숙 청소년에게 교육과 직업훈련을 제공하여 자급자족이 가능한 독립적인 생활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주요 목표로 삼는다. 전환생활프로그램은 독립생활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전환생활프로그램에 인접한 장소에 독립된 아파트를 제공하고 '케이스 매니저'가 청소년과 함께 지내며 시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장기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집을 꿈꾸는 아이들

갈 곳이 없는 아이들, 그들은 당연히 사회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장래 범죄자가 되어 발생시킬 사회적 비용' 때문도 아니고 부모를 잃고도 열심히 살려는 모습이 가여워서도 아니다. 바로 그들에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보장이 전무한 한국 사회는 시스템을 마련하기보다 모든 역할을 집에 떠넘기고 만다.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에게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집'이 자신의 '권리'인 줄도 모른 채, 오늘도 집을 꿈꾸는 아이들. 한국 사회는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덧붙임

연정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신자유주의와 인권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