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①

집 없는 '시설' 사람들

[편집자주]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강력한 대응을 부르짖는 것을 비웃듯 집값은 끊임없이 오르고 개발되는 도시마다 사람들이 몰리고 돈이 오간다. 땅과 집을 가장 확실한 재산으로 여기는 인식과 그것의 바탕이 되는 사회적 관계가 바뀌지 않는 이상, 부동산 투기 대응책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주거는 권리다. 경제적 능력에 따른 차별 없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적절한 주거가 보장되어야 한다. <인권하루소식>은 인권운동사랑방 '신자유주의와 인권팀'과 함께 주거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필요'에서 출발하는 주거권의 실현을 모색하고 주거공공성에 대한 고민을 제기하고자 한다.

최근 사회복지시설의 문제가 잇달아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방송뉴스와 신문기사에서는 앞 다투어 '폭행', '감금', '협박', '성폭력', '비인간적 시설 조건' 등을 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인권'유린'이라는 말로 정리한다. 여기서 인권유린이라는 말은 대체로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설생활자들이 침해받은 것은 '신체의 자유'만이 아니다. 개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 자유권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리, 경제적 권리, 사회적 권리, 문화적 권리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시설생활자들을 일컫는 말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 오갈 데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오갈 데' 이다. 즉 오래 전부터 시설생활자들은 주거권을 박탈당해왔다.


가난과 편견이 시설을 '선택'하게 하다

조남선(67세)씨의 직접적 시설입소 배경은 '알콜 중독' 이다. 목수 일을 하던 조씨는 무릎이상으로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임대아파트 경비 일을 하게 되었다. 월급 60만원으로 부인과 아들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더욱 더 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결국 부인에 의해 양평 성실정양원이라는 시설에 입소하게 된다. 서류상 조 씨를 부양할 가족이 있고,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최저생계비 기준으로만 본다면 조씨는 가난하지 않다. 그러나 질병으로 인한 위기상황에서 가난한 개인은 타자의 선택 앞에 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김난영(34세, 가명)씨의 경우 어릴 적, "마약이 해로운 건지 좋은 건지 판단할 수 없었던 시절 어떤 아저씨로부터 마약을 받아 복용"한 경험 이후 조울증을 겪게 되었고,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이, 한 식당아주머니의 조언"을 들은 부모가 이씨를 기도원에 입소시켰다. 질병이나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개인을 시설에 가둔 것이다.


'고립'이 시작되다

"(인제 심신수양원은) 산골짜기 막다른 곳이라서 거기선 도망 못 가요…그러니 보호자가 데려가지 않으면 죽어 나가는 거예요."

조씨는 인제 심신수양원에서의 시설경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2005년 1월 현재 보건복지부의 통계를 보면 법인 및 개인이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은 1,213개소에 88,116명이 생활하고 있고, 미신고 된 시설이 1,209개소에 21,896명이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시설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이들 시설은 우리 주위에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공간적 고립은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

"부모님이나 친지들이 방문하여 아이의 상태를 물으면서 행여나 호전되었을 경우 데려가려고 하면, 상태가 매우 나쁘다고 이야기해요. 그렇게 되면 친지들은 별 수 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대화의 통로가 완벽히 차단됩니다."

10여 년 간이나 시설생활을 했던 김씨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여러 곳을 전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시설생활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또 권리구제의 대책이 전무한 상황에서, 시설 내 규칙은 관리자들 중심의 규율과 통제로 작용하기 쉽다.

김씨와 조씨가 생활했던 시설의 경우 시설비리와 인권침해 문제가 폭로된 경우이다. 하지만 많은 다른 시설생활자들 역시 자의든, 타의든 공간적, 집단적, 통제적 조건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시립병원에 고관절 수술을 끝낸 조씨에게 시설이라는 공간은, "잠자는 거, 아침에 시간 맞춰 일어나는 거, 밖에 못 나가는 거, 돈 한 푼 없으니까 담배도 못 피우는 거"로 대표되는 "모든 것에 적응을 못"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시설에서 나온 후 가능한 선택은 무엇인가?

인권단체들이 시설문제를 폭로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알게 된 김씨의 경우, 현재는 약을 복용하며 일상생활을 잘 하고 있다. 그러나 '답답한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 역시 만만찮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도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김씨가 처음 선택한 곳은 고시원이다.

"답답하고 좁고, 화장실과 샤워실 등 기본적인 일을 해결하는 공간조차 너무 좁고, 화장실도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어요 ... 청소를 하다 보니 좁은 느낌이 피부까지 전달해져와 너무 불편했어요."

대부분의 고시원은 더 이상 고시를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다. 김씨와 같이 목돈이 없어 보증부 월세나 전세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고시원은 대안(?)적인 주거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쪽방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과 만만치 않은 주거비 때문에 김씨는 시설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시설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고 한다.

반면, 좋은 조건이 갖추어진 시설과 조금 열악하지만 독립된 형태의 주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김씨는 "망설일 것 없이 독립된 형태의 주거죠"라고 답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열악한 환경은 자신이 개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독립적인 주거 확보는 쉽지 않다.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대개의 시설생활인들은 시설 내 인권침해가 폭로되어도 또 다른 시설로 공간적인 이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가 사회방위를 목적으로 시설유지 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한 이들의 주거권 박탈은 사회적 편견과, 빈곤의 굴레 안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조건부신고복지시설 생활자 인권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하 활동가는 "시설생활자들 중 많은 이들은 실제로 지금 당장 혹은 약간의 보조적 서비스만 있다면 독립생활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인제 심신수양원의 인권침해가 폭로된 이후 조씨는 '은평의 마을' 이라는 노숙인 쉼터로 이주했다. "적응하기가 어려운" 은평의 마을에서 나온다고 가정했을 때 조씨에게 제일 필요한 부분은 "잠자는 것하고, 먹는 것"이다. 먹는 것은 세끼를 다 찾아 먹지는 못하더라도 무료급식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잠자는 게 제일 큰 문제라고 조씨는 걱정한다. 현재 실질적인 이혼 상황인 조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권자가 되지 못한다. 그는 수급권자만 되면 "시골에서 방 하나 (임대)해서 마음 편하게 살거나 혹은 여럿이 합작을 해서라도 살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부인과 연락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혼소송을 거쳐 수급권자가 될 수 있을지는 막막하기만 하다.


정부 시설정책의 한계와 주거권

미신고 시설 내 인권침해가 계속해서 발생하자 정부는 2002년 5월 이래로, '미신고 시설 양성화 대책'을 추진 중이다. 이 대책은 신고시설로의 전환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시설 설치기준과 종사자기준 등이 하향적으로 규정하였다. 또한 재정지원과 행정관리 책임부분은 여전히 미흡해 이러한 조치가 생활자들의 시설 내 삶의 질을 상승시킬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시설 대책은 한국사회 '시설생활인'의 인권 증진을 위해 근원적인 시각이 부재함을 지적할 수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는 "정부의 시설 양성화 정책은 기존의 사회복지 시설 시스템을 전제하는 가운데 시설정책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뒤 "시설생활자들에게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지역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에게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 활동가는 "정부의 양성화 대책은 시설이 선택이 아닌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역사회에서 격리되고 감금되는 형태의 시설을 온존 내지는 확대하는 것이므로 시설생활자들의 주거권 확보와는 배치된다"고 말했다. 즉 이미 시설은 개인의 인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많은 시설생활자들이 실제로 독립적인 주거를 원하며 독립생활이 가능하다는 것, 또 이미 서구의 많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시설중심의 모델에서 '지역사회 통합'과, '독립생활 모델'로의 전이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볼 때, 정부의 양성화 대책은 한계가 명확한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주거는 인간의 기본적 필요에 따른 권리이다. 이제 시설의 '현실적 필요성'이라는 말만을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형태의 독립적인 주거공간과 지역사회에서 이웃으로 함께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적극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시설은 이제 긍정적 필요성의 차원에서, 위험상황에서의 '일시적 보호'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하며, 일상적 주거의 기능은 '독립적 주거 공간'에게 내어주어야 한다.

최근 김씨는 영화 엑스트라 일을 하면서 연극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다. 최근 그녀는 '운 좋게' 한달에 17만원 하는 고시원을 얻을 수 있었다. 여전히 그 공간은 좁고 답답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 이다. "누구에게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푹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 하"기 때문이다.
덧붙임

정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신자유주의와 인권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