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집을 빼앗긴 사람들

[기획]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②

이촌역 1번 출구, 길 따라 쭉 이어져있는 폐허들, 그 속에서 철거민들은 천막 농성 중이다. 길 건너 높이 치솟은 아파트와 너무도 상반되는 풍경, 곳곳의 벽에 적힌 "투쟁으로 주거권을 쟁취하자"란 붉은 글씨는 참담한 풍경만큼이나 처절하고 절박하다. 전쟁이 지나간 흔적마냥 쓰레기가 넘쳐나고 부서진 건물 잔해로 가득한 이곳에서 강제철거가 시작되었던 2004년 6월 28일부터 용산 5가 19번지 주민들 8가구가 모여 일 년 가까이 싸우고 있다. 단수가 되기도 했었고, 용역들의 협박이 끊이질 않았지만, 추운 겨울, 더운 여름 상관없이 그들은 여전히 투쟁이라 외친다. 용산 5가 뿐만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자행되는 강제 철거에 맞서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지역들이 곳곳에 많다.



개발이데올로기로 용인되는 강제철거

땅이라는 것이 재산으로서 큰 의미가 있는 한국 사회에서 재개발 사업은 특히 중요한 이슈다. 재개발 구역이 정해지면 주택공사나 민간 기업에 의해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재개발 업주들은 철거를 보다 빠르게 실행하기 위해 용역 회사에 일을 맡긴다. 고용된 용역들이 협박과 폭력으로 철거 지역 주민들을 내쫓고 집을 부술 때,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은 이를 '합법적인 절차'로 용인하고 묵과한다. 이 속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자신이 살던 집에서 강제로 내쫓기는 것이 바로 '강제철거'의 모습이다. 지금도 재개발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철거민들을 범죄자 취급 하며 몰아붙이고 있다.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급속한 도시화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무수한 강제철거가 있었다. 강제철거는 과거 도심 곳곳의 수많은 무허가 판자촌을 허물고 철거민들을 광주로 대규모 강제 이동시켰던 6-70년대의 일만은 아니다. 지금도 개발의 이름 아래 수많은 철거민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당장 살던 집이 하루아침에 부서지는 것만큼의 또 다른 안타까움이 있다.



"이건 고향이 없어져버리는 거야. 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 함께 해온 애들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거지. 몇 년을 함께 해온 이웃을 멀리 사는 형제보다도 가깝게 여기고 살았는데…. 애들 학교도 그렇고, 어른들 직장도 그렇고 생활권이 다 이 근방인데…"(용산 5가 철대위 ㄱ씨)

최소한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철거민들의 처절한 저항에 비해 그들의 요구는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철거민들이 개발 중에 머물 수 있는 '가수용 시설'을 만들어주고, 개발 후에 살아갈 '임대주택'을 보장해주라는 것이 그들이 요구하는 전부이다. 즉, 개발을 하되 선(先)대책 후(後)철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개발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게 결코 아니야. 얼마든지 하되 다만, 영세민이 대부분인 세입자들의 생존권은 보장하면서 하라 이거야. 용역 사는 그 돈이면 세입자들 충분히 보장해줄 수 있어. 근데 안 그러잖아."(용산 5가 철대위 ㄴ씨)


대책 마련이 먼저, 철거는 그 다음

이주비 지원보다도 임대주택의 보장이 철거민들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용산 5가의 경우 4인 기준으로 1가구당 1000만원 정도의 이주비가 주어졌지만, 이것으로는 계속 올라가는 주거비를 감당할 수가 없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임대주택이 안정적이고 적절한 주거가 못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영세민 주택이 이 근방도 아니고… 또 대부분 계약 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아 맘 놓고 살수가 없어. 재계약 조건도 까다로워서 형편이 조금만 나아져도 자격이 되지 않으면 쫓겨나는 거야. 영세민 주택 나와서 다른 곳에서 살려 하면 방값이 너무 비싸 들어가기 힘들고."(용산 5가 철대위 ㄷ씨)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풍문이 나돌고, 그래서 임대주택 건설 계획이 있으면 지역에서 반대하는, 똑같은 이름의 주택이라도 임대주택과 그냥 주택의 출입문이 따로 있는, 평수별로 반상회마저 달리 하는, 땅값이 올라 이득 보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는 현실.

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사회의 임대주택은 그 물량 뿐 아니라 실효성 역시 매우 적다. 2005년 건설교통부 등 임대주택정책 개편방안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임대주택 재고량은 전체 주택 재고량의 8.9%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10년 이상 임대되는 실질적 임대주택은 2.5%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네덜란드의 36%, 홍콩의 30.6%, 싱가포르의 83.9%와 비교해볼 때 크게 미달하는 수치이다.

또한 저소득층에게는 공공임대주택의 주거비 부담마저도 만만치가 않다.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는 주거비지불능력 미달 가구가 18.2%(국토연구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2)나 되는 한국 사회에서 저소득층에게는 주거의 하향 이동만이 '보장'될 따름이다.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소득 수준에 맞게 임대료를 책정, 지불되고, 정부 차원에서 임대료 보조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외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우린 많은 거 바라지도 않아. 지금 살고 있는 근방에 위치해야 하고 우리 식구들 편히 발 뻗고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좋겠어. 4인 가족을 기준으로 15∼20평 정도면 되지 뭐. 보통 임대주택 경우처럼 보증금 1200∼1500만원에 월세가 13∼16만 원 정도면 뭐. 그리고 계약기간이 상황에 맞게 다양하고 영구임대도 보장되어야해."(용산 5가 철대위 ㄱ씨)


인간이 아닌 이윤을 위한 재개발

'토지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고도이용과 도시기능의 확보'(도시재개발법 제2조)를 명분으로 하는 재개발, 용산 5가 역시 '불량주택 밀집지역의 계획정비로 쾌적한 도시 환경의 조성과 장래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광역 녹지 네트워크 조성'을 재개발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환경 개선과 개발의 고려 대상에 원거주민의 요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재개발 지역이 정해지면 시공사의 선정, 재개발의 방향 등을 결정하기 위해 재개발 조합이 만들어지지만 소유주만이 조합원으로 인정될 뿐, 몇 십 년을 이곳에서 살았고 훨씬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세입자는 재개발에 관한 어떠한 참여의 권리도 없다.

서울시에서는 조례를 통해 주택재개발의 경우 재개발 용적률의 20%에 임대주택을 건립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용산 5가의 경우 준주거지역에 해당되는 도심재개발로 지정되었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용산구청은 말한다. 하지만 재개발이 처음 언급되던 10년 전만 해도 용산 5가는 주택재개발 지역이었다. 2001년 서울시에 의해 도시환경정비사업 지역으로 바뀌면서 임대주택 건립을 의무화하는 법규가 적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임대주택이 아닌 이윤 창출에 유리한 주상복합건물이 건립된다고 하니 원거주민들 특히 세입자들에게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재개발의 고려의 대상에 인간은 없다. 단지 이윤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적인 주거권의 실현을 위해

1993년 유엔 인권위원회는 "강제철거가 인권, 특히 적절한 주거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임을 선언하며, 정부는 강제철거를 없애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고, 적절한 보상과 충분한 대안적 거처나 토지를 제공할 것"(1993/77)을 결의했다. 또한 여전히 강제 철거가 자행되는 한국사회의 주거문제에 대해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두 차례나 강력한 권고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유엔 사회권위원회로부터 "주거대책 없이는 철거를 중단할 것"(1995.6.7)과 "민간 개발사업에 의한 강제철거의 피해자들에게도 보상과 임시주거시설 등의 보호를 제공할 것"(2001.5.11)을 권고 받았지만 여전히 강제철거로 인한 인권 침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는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고 있지 않다.

필리핀에서는 도시개발 및 주택법에 정당한 철거의 경우에도 주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철거를 3년간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규정을 두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불법적으로 강제철거를 자행하거나 임차가구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강력한 처벌과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철거 후의 대책에 있어 일본은 법적으로 철거 후 새로 건립되는 주택의 입주대상을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한 자 중 사업시행에 따라 주택을 상실하여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 소유주라도 외지에 거주하면 입주자격을 박탈하고 세입자라 하더라도 재개발지역의 거주민이면 입주자격을 인정한다. 한국의 경우, 불과 10∼20%의 원거주민들만이 재개발 이후 그 지역에 다시 거주하여 재개발의 명분이 무색할 따름이다.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함께 근본적으로 강제 철거가 자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재개발에 대한 관점이 변화해야 한다. 개발사업 등의 요인으로 상승한 토지 가치의 증가분을 개발이익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지난 20년간 땅값이 오르며 발생한 개발이익은 무려 1284조에 이른다. 이런 과정에서 상위층 1%에 해당하는 약 10만명은 1인당 3.2억원의 이득을 매년 확보하는데 이렇게 발생한 땅에서의 불평등은 곧바로 부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되고 따라서 부의 양극화, 주거의 양극화는 더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불로소득인 개발이익을 제대로 환수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덴마크는 개발이득세, 프랑스는 기반시설세, 네덜란드는 개발부담금, 영국은 시설정비부담금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정의차원에 입각하여 개발이익을 적극 환수하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의 남원석 연구원은 "개발이익을 세금뿐 아니라 현물(공공임대주택 등)의 형태로 적극적으로 환수하는 등 재개발을 통해 얻은 이익이 재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주거빈곤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정부가 법·제도적 수단을 강구해야"한다고 말한다.

또한 남원석 연구원은 "재개발의 고려 대상에 원거주민의 주거 안정과 복지 증진이 포함되어야 하며 재개발 이후 원거주민들의 재정착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어야"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물리적인 재개발만을 실시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역에 관한, 원거주민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 그는 "외국의 경우 철거를 통한 재개발뿐만 아니라 주택·지역의 개량을 포함하여 다양한 방식을 사회적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시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원거주민의 교육과 고용의 기회가 확대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소개하며 "이런 방식의 재개발을 한국사회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재개발 지역 내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적인 주거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개발을 통한 이윤, 개발의 현실성 등 그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인권으로서 주거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우선시해야만 한다. 투기성 수익의 기회가 아닌 본래 삶의 터전으로서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존중하는 것이 인간적인 주거권 실현을 위한 첫걸음이다.
덧붙임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신자유주의와 인권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