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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형사소송법 개정 이렇게 (끝)

국제인권기준과 헌법을 적극 수용해야

형사소송법은 "형법에 기초하여 발생한 국가형벌권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필요한 법적 절차를 규율하는 법률"이다. 형사소송법은 이런 국가형벌권의 실현과정에서 국가권력의 행사를 제한하게 된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형사소송절차는 발전하였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은 "한 국가의 정치와 법문화의 발전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고 말한다. 독재체제에서는 정치가 반법치적으로 왜곡되고, 민주화될수록 법치주의는 실현되기 마련이다. 이는 우리 나라 형사소송법의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유신독재가 청산되지 않은 형사소송법

우리 나라 형사소송법은 1954년 공포·시행된 이래 8차례의 개정 과정을 거쳤다. 1973년 1월 3차 개정은 유신 정권 치하의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이때 구속적부심제가 폐지되고, 긴급구속 요건이 완화되었으며, 재정신청이 제한되는 등의 후퇴가 있었다. 그러다가 1988년 2월 6차 개정에서는 구속적부심사 청구에 관한 제한규정이 삭제되고, 형사피해자의 진술권을 보장하는 등의 개선이 이뤄졌다. 1995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하고 1997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7차 개정 법률에서는 체포영장제도를 도입하고, 긴급구속을 긴급체포로 바꾸고, 특히 구속전피의자심문제도(영장실질심사제도)를 신설하는 등 획기적인 개선 내용이 담기게 되었다. 그렇지만 1997년 11월 국회에서 통과한 8차 개정 법률에서는 구속전피의자심문제도를 제한하는 방향의 후퇴가 이뤄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무부와 대법원, 보다 적극적인 자세 필요

새 정부 들어와 대법원과 법무부는 각각 형사소송법의 개정 작업에 착수하였다.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정치적 격변을 거치는 과정에서 출현한 권위주의 정부의 권력남용과 전횡 앞에서 사법부와 형사재판은 종종 무기력한 채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진단하고 있다. 대법원과 법무부는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 작업이 '국제인권기준과 헌법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법무부는 올해 정기국회에 구속전피의자심문제도의 전면 확대와 변호인입회권을 규정하는 방향의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고, 이후 단계적으로 개정작업을 지속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런 정부와 대법원의 노력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정도에 머물러서는 국제인권조약과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권 기준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장애인단체들이 보조인 제도의 확대나 진술권의 보장을 요구한 것에 대해 법무부가 난색을 표명하였다는 보도는 형사소송법 개정 작업을 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본지 6월 2일자 기사>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는 마당에 과거 독재정권의 잔재를 깨끗이 털어 내야 할 것이고, 사회적 약자들의 실질적인 보호를 위한 장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 유엔자유권위원회에서 지적받은 바 있는 과도한 기소전 구속일수(일반 사건 30일, 국가보안법 사건 50일)의 축소와 고문 등을 부추기는 자백 위주의 수사관행 등이 근절되도록 하는 대책이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 내용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아동이나 성폭행 피해자 등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사람들과 증인에 대한 보호 규정도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법무부와 대법원은 애초 개정 취지와 달리 소극적인 방향으로 논의를 모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룬 민주화가 적극적으로 형사소송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인식과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