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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의 인권이야기] 만국의 여행자여 단결하라!

“우린 지금 늘 일어나는 ‘예정된 일’을 얘기하고 있어요.”
“왜 공을 잡았죠?”
“떨어질 테니까.”
“확실해요?”
“네.”
“그러나 떨어지지 않았죠. 당신이 잡았기 때문에요. 발생하지 않게 하려는 어떤 일이 발생할 일에 영향을 주진 못해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중에서

지금 세계 각국의 활동가들이 G8회담을 반대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몇몇의 활동가들이 이미 일본으로 향했는데 들려오는 소식이 심상치 않다. 정상회담에 대응하는 국제포럼의 발표자라는 이유로 일본 공항에서 10시간씩 억류되었다 석방되는가 하면, 18시간이나 억류되었다 강제출국된 활동가도 있다.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성명에 따르면 그 활동가는 지난 3월에 홋카이도에 가서 G8 관련 반대활동에 참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바 있는데, 이런 활동이 일본 정부의 표적이 되어 이번에 일본 재입국이 불허되었다고 한다.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성명서는 아래 관련 사이트를 참고하라.)

권리를 제한하는 입국심사제도의 확산

일본의 입국심사대

▲ 일본의 입국심사대

일본은 2007년 11월부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양손 검지의 지문을 스캐닝하고 얼굴사진을 촬영하여 입국관리국의 데이터베이스(블랙리스트 : 국제 형사 경찰기구와 약 14,000명의 일본 경찰 지명수배자, 과거 강제 퇴거된 80만 명 외국인 지문과 얼굴 사진이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아래 관련자료 참고)와 대조하는 입국 심사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서 범죄자나 과거에 강제추방 이력이 있는 외국인의 재입국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이에 따르면 아마도 출국조치된 활동가의 경우 지난 3월에 방문했을 때 지문 정보가 일본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번에 일본에 왔을 때 G8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경력이 있으니 찍어뒀다가 아예 못 들어오게 막겠다는 것이다. 그 활동가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와 권리는 일본 내에서 원초적으로 말살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입국 심사 시스템은 미국의 시스템과 거의 같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새로운 국경통제 프로그램, 유에스 비짓(US-VISIT)을 시작했는데 이 시스템은 지문 스캐닝(2007년 11월 29일부터 10지 지문 채취)및 얼굴 사진 촬영과 같은 생체 정보 수집 및 분석을 거쳐서 테러리스트, 범죄자, 불법이민자로 간주되는 인물들을 추적하기 위한 감시리스트(watch-list)와 대조한다. 시행초기에는 사증(VISA) 소지자에게만 적용하던 것을, 현재는 모든 입국 외국인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한국 역시 미국과 일본이 하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다. 지난해 11월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을 통해 인천공항 시범 운영을 시작으로 ‘희망자’에 한해 생체 정보 기반의 자동출입국 심사제도를 운영하겠다는 안을 내놓아 인권단체들이 반대의견을 낸 일이 있다. 조만간 입국 심사의 ‘간편화’와 이주노동자 ‘관리/통제’ 등을 이유로 일본, 미국과 유사한 입국심사제도를 도입할지 여부를 타진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으로 봐서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정부도 유사한 정책을 도입하려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미국과 일본의 시스템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 지문을 통해 입국 전에 테러리스트를 잡겠다는 것은 이미 테러리스트의 지문을 확보하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즉 전 세계의 테러리스트들이 미 국토안보부나 일본 입국관리국에 지문을 등록해 놓고 테러활동을 시작했을 경우에나 가능한 계획이지 않은가? 그래서 테러리스트들의 자발적 지문 등록 유도에 실패한 미국은 현재 이라크의 길거리에서 무고한 인민들의 지문을 수집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입국심사대

▲ 미국의 입국심사대


생체정보의 수집, 프라이버시 침해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

또한 미국은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조건으로 생체여권도입(얼굴정보 내지 지문정보-선택적-를 담은 RIFD칩이 내장된 여권)을 내걸면서 이미 가입되어 있던 27개국의 법을 고치게 만들고 생체여권을 도입하도록 만들었다. 한국 역시 비자면제프로그램에 가입하기 위해 여권법을 개정해 생체여권의 도입을 추진해 올 8월부터는 생체여권이 발급될 예정이며 2010년부터는 지문까지 수록된 생체여권이 발급된다. 그리고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다음 날,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드디어 미국과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을 했다. 이제 미대사관 앞에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편리’를 얻는 대신 미국에 지금보다 많은 개인정보를 넘겨주게 된다. 이에 따르면 테러방지를 목적으로 양측과 유관 정부기관은 테러리스트 및 테러리스트 혐의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할 의향이 있다고 되어있다. 즉 한국인의 어떠한 정보들이 미국과 공유된다는 의미다.

테러방지를 목적으로 한 생체정보의 수집은 미국을 시작으로 EU, 일본, 한국 등 전 세계적으로 시스템이 구축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각국의 국민관리시스템과 법/문화 기반이 너무나 다르기에 그 정보들이 공유되기는 힘들었겠지만 이제는 생체인식기술과 테러방지라는 명분에 의해 전 세계적인 인간 관리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과한 것일까? 이런 일련의 흐름을 놓고 봤을 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보인다. 따로 번호를 부여하거나 하지 않아도 만국 공통의 식별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생체정보다. 관리자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얼마나 편리한가? 어떤 여행자의 인증도 색출도 아주 간단해 보인다. 이 모든 정보가 네트워크만 잘 된다면 말이지. 민주노총 활동가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G8반대 시위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일본 입국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촛불시위 때문에 연행되었던 사람이 거의 천 명에 육박하는 지금 이 사람들이 미국에 갈 일이 생긴다면 감시리스트에서 걸려 입국 자체가 거부될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쇠고기가 싫다는 골수 반미 위험 분자들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9.11 테러를 계기로 테러/범죄와의 전쟁은 미 정부의 편리한 정치적인 수사가 되었다. 9.11테러이후 통과된 애국법(PATRIOT Act)의 공식명칭은 ‘테러활동의 차단과 방지에 필요한 적정한 수단을 제공하여 미국을 결속하고 강화하기 위한 법’이다. 외부의 미지의 적을 상정해 두고 내부의 공포를 이용해서 결속하고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미국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광우병의 문제가 미국과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로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미국이 점점 영향력을 행사하고 각국 정부가 동조하고 있는 전 지구적 안보시스템의 구축계획은 전 지구적 통제 시스템의 구축문제가 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보면 지문 및 얼굴 정보를 위시한 생체정보, 즉 우리 신체의 일부를 정보화하는 것은 개인정보 결정권이나 프라이버시 문제만으로 이야기 할 수 없다. 단지 내 정보를 제3자에게 넘기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정보를 제3자에게 넘길 것인지 말 것인지’ 식의 기존 프라이버시 논의 틀로 보면 지문은 이미 ‘정보’로 가공되는 것을 전제하는 논의가 된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규제 문제만이 우리의 선택지로 남게 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신체의 형질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을 특정 방향으로 정보화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신체는 사회적 형성물이다. 신체가 표현하거나 접속하는 모든 것들, 사회, 사회적 장치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형성된다. 그럼에도 생물학적인 접근을 통해 그 정보를 객관적인 양 신체에서 분리 추출했을 때 이것은 태생적으로 고유하고, 유일하며, 고정적이고 유전적인 변할 수 없는 형질처럼 취급된다. 그렇게 정보가 취급되었을 때 이것은 차별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고 낙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프라이버시 보호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문화적 시스템이 변화할 수 있는 문제로까지 바라봐야 한다.

차별의 자동화에 저항하라

생각해보라. 미국의 감시리스트(watch-list)에는 누구의 지문이 저장되고 있겠는가? 중동 인민들의 지문이 저장되며, 무슬림들의 지문이 저장되고 있다. 광화문의 미 대사관에서 미국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한국인들의 지문도 저장되고 있다. 지문을 통해 테러리스트를 색출해낸다는 계획은 인류를 종교와 피부색에 따라 구분하여, 차별을 자동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서 신체의 자유, 프라이버시의 권리, 무죄추정의 원칙 등 세계 인권규범들이 옹호해 온 인권의 원칙들을 어기고 있음은 더 말해 무엇하랴. 어떤 인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이기에 사전에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간의 생체 정보를 추출하여 인간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너무나 위험하다. 이러한 정보들은 2차, 3차의 정보로 가공되어 새로운 편견과 차별 인종주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형질을 가진 사람은 이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말이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현재 무슬림은 테러범이라는 식으로 인식되는 것이 바로 이런 사례다. 국내에서도 백인이 아닌 이주노동자는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라는 편견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것이 실제 통제 시스템과 결합하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눈에 선하다.

그리고 생체정보 기반 통제 시스템의 구축은 큰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서서히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여행이라는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지문이나 얼굴 사진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그 나라에 입국이 거부되느니, 조금 참고 입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도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때 그때 사람들은 어떤 불쾌감을 느끼지만 할 수 없다는 식으로 그들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협조하게 된다. 따라서 일련의 과정들 - 입국관리심사에서 생체정보의 요구 및 생체정보가 담긴 여권의 발급을 통해 우리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제, 관리하는 시스템들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연대가 절실하다.
덧붙임

달군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