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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대결 조장하는 인권보고서

휴먼라이츠워치 연례보고서 발표


미국의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아래 워치)는 13일(현지시각) 세계 각국의 인권상황을 담은 연례보고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워치는 이 자리에서 북 인권 상황에 대해 "일상적으로, 그리고 터무니없이 거의 모든 국제인권기준을 위반하고 있다"고 평했다. 보고서는 북을 철권통치와 개인숭배로 통치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권이라고 규정하면서, △난민 △구금시설과 고문 △사형제도 등 주로 그간 논란이 되어온 문제들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어떠한 인권단체도 북 인권상황을 조사·연구하기 위한 직접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탈북자 및 수용소 탈출자들과의 면접을 통해 나락 같은 북 인권상황을 기록해왔다"며 '실증자료'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진실과 추측의 경계가 모호하다. 탈북자의 증언이 중요한 역할을 할지라도 신뢰할만한 증언과 그렇지 못한 진술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인데, 증언 외에 확인할 수 있었을 객관적 사실들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보고서는 송환탈북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북 정부가 2004년 형법 개정을 통해 이탈주민들에 대한 처벌을 '경범죄' 수준으로 낮추었다는 것, 즉 다른 나라의 출입국관리절차 위반 수준으로 처벌수위를 완화했다는 변화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한 서방인, 특히 선교사들의 북이탈주민 접촉은 '기획탈북'의 문제 속에서 섬세하고도 분석적으로 파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정적인 폭로에 그치고 있다.

또한 한국과 미국 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 "북의 정치범 숫자를 20만 명으로 추산하고 1990년대 기아사태 이래 최대 200만 명이 아사했다"는 부분도 보고서의 신뢰성을 의심케한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의 정치범 숫자를 발표한 적도 없으며, '200만 아사론'은 그야말로 그럴 것이라는 추측일 뿐 신빙성 있는 사실로 입증된 적은 없다.

워치의 이번 발표는 이외에도 사회권이나 발전권 등을 포함하여 인권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을 보여야 할 '인권보고서'로서는 많은 흠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 인민의 인권에 가장 시급한 문제인 '식량권'에 대한 언급이 어디에도 없다. 카리타스 홍콩 등 국제원조단체는 북의 식량난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아직도 국제적 도움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북이탈주민들의 이탈 동기가 '정치적 박해'만이 아닌 '경제적 동기' 등으로 다양하며, 그 중 식량난에 의한 이탈문제는 북 인권 중 핵심적인 부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워치는 이에 침묵했을 뿐이다.

워치의 보고서가 위험스러운 것은 북 정권을 적대시하는 대결구도 속에서 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제기해 온 미국 정부의 입장과 차별성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보고서 말미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천명'하는 미국의 북인권법을 국제행위자의 핵심 중 하나로 언급하고 있어 미국의 일방적이며 패권적 개입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의 의견을 균형 있게 청취한 흔적도 이 보고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고립과 압박을 통한 인권개선은 불가능하며, 조건 없는 인도적 지원을 통해 북 인민의 생존권 보장을 도와야 북 인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의 신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은 무시했다. 명망 있는 국제인권단체가 아닌 미국정부의 대변인이라는 오명을 들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인권보고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