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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제9차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가 우리에게 남긴 것…

13일부터 19일까지 서울 감리교여선교회관에서는 아시아 19개국 60명의 해외 참가자를 포함, 160명이 참가한 제9차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Migrant Forum in Asia, 아래 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는 지난 94년 대만에서 열렸던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 참가자들이 그 회의 명칭을 딴 네트워크를 결성한 이래, 아시아에서 이주노동자 문제에 응답해온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향후 전망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96년에도 제3차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당시는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막 사회적 조명을 받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94년 1월 경실련 강당에서 있었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산재보상 요구 농성에 이어 95년 1월 13명의 네팔 연수생들이 명동성당에서 진행한 농성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아시아 사회에도 충격을 준 바 있다. 국내 이주노동자 유입의 초기에 있었던 이 두 농성은 한국의 경제발전 이면에 세계 최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한국의 노동자들뿐 아니라 노예 같은 삶을 강요당하는 외국인이주노동자가 있음을 폭로했다. 이와 함께 이주노동자들의 농성과 투쟁을 조직적으로 지원, 연대하며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해 온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 또한 각국 활동가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 시기에 있었던 96년 3차 회의는 아시아, 미주, 유럽 등에서 105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회의가 되었다. 그 후 2004년 9월 서울에서 다시 열린 제9차 회의는 아시아 19개국 160명이 참가한 사상 최대 규모의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로 다시 기록되었다.


여성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해답 모색

'개발을 위한 이주와 이주노동의 여성화과정'을 주제로 열린 이번 회의는 빠르게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 한가운데 있는 이주노동자, 특히 대규모로 늘어나는 여성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ILO 보고에서와 같이 매년 80여만 명의 아시아여성들이 해외취업에 나서는, 이른바 '이주노동의 여성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공격적인 경제자유화정책 앞에서 대부분의 인력 송출국은 자국의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보호와는 관계없이 타국 노동시장에서 더욱 유연하고 길들이기 좋으며, 비공식 영역에 가두어놓기 편한 여성들을 정책적으로 '수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욱이 9.11 테러 이후 테러방지를 명분으로 한 테러방지법, 적법 절차 없는 이주노동자 강제구금과 강제퇴거 등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법령과 제도가 늘어나는 데 대한 대응은 무엇인가?


'서울 성명' 발표도 이어져

이에 대해 이번 회의 참가자들은 '서울 성명'을 발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법령 폐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와 연수제도 철폐 △외국인가사노동자와 연예인들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법 적용·보호 △노동력 송출국과 고용국간의 이주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양해각서와 쌍무 혹은 다자간 협정 체결 △인력 송출업체에 대한 규제와 감시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인신매매 방지 노력 △성차별을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배제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받을 권리 보장 △출국 전 교육을 포함하여 이주노동의 전 과정을 통해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저축프로그램과 대안투자와 귀환 프로그램 실행과 훈련 제공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서남아시아지역협력체(SAARC) 등과 같은 아시아 지역 기구를 통한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를 위한 실행 등을 촉구했다.


'선언'을 넘어 '행동'으로

회의에 이어진 이틀간(15-16일)의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 총회에서 네트워크 회원단체들은 이번 회의결과를 토대로 각국에서 실행할 행동계획을 구체화하고 이를 담당할 태스크포스팀 구성까지 마쳤다. 또한 이 회의의 후속회의로 내년에 서울에서 여성이주노동자 관련 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대부분의 국제회의는 구체적인 실천에 대한 계획 수립 없이 '성명 발표'에만 그치는데 반해 아시아이주노동포럼은 '구체적인 실행'을 계획하는 것이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은 회의를 통한 문제 조명과 해결방향 제시뿐만 아니라 바로 현장에서 또 각국 정부뿐 아니라 아시아 차원에서 필요한 조사, 연구, 로비, 캠페인, 투쟁 등 다양한 행동계획을 수립·실행함으로써 10년이라는 기간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는 결성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다. 여기에는 참여 회원단체들의 성실한 연대활동이 가장 큰 힘이 되었음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0년간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해온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의 사례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와 지원단체간의 깊이 있는 논의와 구체적인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실한 연대를 통해 국내 이주노동자의 인권 상황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미선 님은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집행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