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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형사소송법 개정 이렇게 ③ 인신구속 제도의 개혁

'원칙'이 '예외'가 된 불구속

형사소송법에서 피의자와 피고인의 구속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와 함께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로 매우 엄격히 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규정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에는 불구속 재판으로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2002년 검찰 기소당시 구속된 피고인의 비율이 40%(전체 208,506명 중 86,266명)가 넘는다는 통계(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 회의 2004.1)는 형사소송법의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을 무색케 한다. 더욱이 이들 8만 여명은 기소당시의 구속 인원일 뿐, 2002년 수사단계 구속자는 9만9천명이 넘는다. 물론 구속자의 절대수와 그 비율은 해마다 감소추세에 있지만,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천명하고 있는 불구속 재판 원칙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는 외국과 비교하면 더 확연히 드러난다.

입건범죄수 : 구속인원 : 범죄1천건당 구속자수
한국 : 934,933 / 118,576 / 126.8
일본 : 2,086,735 / 101,790 / 48.8
독일 : 6,586,165 / 19,900 / 3.0
<97년 구속관련 자료- 사법개혁위원회 보고 2004년 1월> (단위 명)


인식구속은 권리의 제한과 박탈로 이어지기 때문에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 피고인이라 하더라도 도주·증거 인멸 등의 위험이 아니면 변론을 위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권리보장 측면에서 '불구속의 원칙'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구속'이 '범죄에 대한 처벌 수단'으로 인식·운용되면서 불구속 수사·재판의 '원칙'이 '예외'가 돼버렸다.


뒷걸음친 영장실질심사 제자리에 놓기

인신 구속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로 95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라 97년 도입됐던 영장실질심사제도는 형사절차상 인권보장의 일대진전을 이룬 조치로 평가된다. 체포이후 최초로 판사를 대면한 피의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진술을 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 영장실질심사제도는 구속 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혁신적 조치로 기대됐다. 대한변협 『1997년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영장실질심사가 시행된 97년 한해 동안 구속자수는 11만8천583명으로 96년 14만3천68명보다 17.1%가 줄어들었고, 구속영장 기각률도 96년도의 7.4%보다 높아진 17.7%에 이른다. 영장실질심사제도가 구속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러나 97년 검찰의 형사소송법 개정 추진으로 영장실질심사제도는 피의자의 요구 여부에 따라 심문이 진행되는 '임의적 심문'으로 축소됐다.

인권사회단체의 비난 속에 개정된 영장실질심제도는 인권보장의 후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유엔 자유권위원회에서도 지난 99년 한국정부에 대해 모든 피의자에게 '신속한 판사 대면권' 보장을 권고한 바 있다. 대한변협도 지난해 6월 국회에 제출한 <형사소송법개정에 관한 청원>에서 "영장실질심사제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편의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영장주의의 실효성을 확보하여 피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므로 신청에 의하여 좌우되어서도 안되고 그 심문의 여부를 법관의 재량에 맡겨서도 안 된다"며, "국제인권규약상 영장실질심사제는 48시간 이내에 법관에 의한 필요적 심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또 피의자의 진술을 듣지 않고 수사기관의 자료만으로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국제인권규약에 위반되는 것으로, 영장실질심사제도를 필요적 심문제도로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영장실질심사단계에서 보석 확대

한편 법무부 검찰개혁자문위원회와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는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 논의에서 보석확대를 통한 인신구속제도의 개혁 논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소송법의 필요적 보석의 제한사유에서 '상습범·주거부정' 등을 삭제하고 보석 허가시 보증금 이외에 '신뢰할 수 있는 자의 출석보증' 등의 조건을 두어 보석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석확대는 구속적부심사와 함께 이뤄지는 것으로 '영장단계의 보석 허용'은 아니다. 한양대 이은모 교수는 『형사법 연구』제19호(2003 여름)에서 최초 구속이 결정되는 영장실질심사단계에서의 보석허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교수는 "비교법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한 대개의 선진국가인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공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제도"라며 "가능한 한 신체구속의 초기 단계에서 보석이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의자 심문절차에서의 보석을 통해 구속을 줄여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기소전 구금

구속제도의 인권침해적 요소를 개선하는데 있어 구금기간 단축도 빠질 수 없다. 일반사건의 경우 30일(경찰 10일, 검찰 20일),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 50일(경찰 20일, 검찰 30일) 동안 피의자를 구금하는 것에 대해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과도한 기소전 구속"이라며 "구금의 정당한 근거 부족은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9조의 이행에 의문을 갖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유엔의 해당법률 개정 권고는 이미 5년 전의 일이지만, 법개정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소전 구금일수에 대한 논의는 특히 경찰과 검찰의 힘 겨루기가 아닌 인권보장의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

수사와 재판, 형의 집행을 위한 '구속'은 불가피한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 형사절차에서 구속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형사소송법 개정에서 △필요적 영장실질심사 △기소전 보석확대 △기소전 구금일수 축소 등을 시급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