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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대의제가 민주주의의 전부라는 환상을 버려!

국민발의권·국민소환권 토론회 열려

4년에 한번 대표자를 뽑는 권리만 허용하는 가짜 민주주의를 넘어 더 많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7일 '국민발의권·국민소환권 쟁취를 위한 네트워크'와 평화인권연대 등 인권단체들이 개최한 '이것이 민주주의다!'가 그것. 이날 토론회에는 2백 여명이 참석, 국민발의제와 국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의 구상이 탄핵정국과 총선 시기에 떠오르는 '핫 이슈'임을 실감케 했다

토론회의 발제자로 참석한 인하대 이경주 법학교수는 "대의제는 국가정책을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결정하지 않고 대표자를 선출해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라며, "국회 구성권과 정책결정권을 분리하는 것이 그 본질"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대의제는 근대혁명기에 봉건적 정치구조를 무너뜨린 부르주아 세력이 정치무대에서 민중들을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제도"로, 민주주의와는 대립적으로 형성된 역사적 산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제까지 대의제는 현대사회의 '바람직한 민주주의'로 포장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반면,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구상들은 '모든 국민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도 없고, 그런 자질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는 논리로 부정돼왔다. 이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배경내 활동가는 "그러한 논리에는 국민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깔려있다"며, "이는 국민이 대표를 뽑는 대의제의 존립 근거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제도로써 제안된 것은 국민발의제와 국민소환제. 이경주 교수는 국민발의권과 국민소환권이 현행 헌법의 원리와도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행 헌법은 헌법개정에 대한 국민투표를 규정하고 있는데다가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에게 유권자의 뜻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명령적 위임'을 명문으로 금지하고 있지도 않다. 이 교수는 "발의권과 소환권은 헌법이 보장한 참정권으로 이해돼야 하며, 나아가 해당 국적을 가진 국민의 권리가 아닌 이주노동자 등에게도 인정되는 '인간의 권리'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독일, 스위스, 미국 등지에서는 국민 혹은 주민 발의·국민소환제가 실시되고 있다.<관련기사 2004년 3월18일, 20일자 참조>

더군다나 최근 부안의 주민투표는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더욱 가깝게 열어 보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부안군대책위 조태경 연대사업국장은 "2백일 동안 핵폐기장 백지화 촛불집회에 참가한 수만명 군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철저하게 무시된 부안의 상황은 이 땅 민주주의의 실종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였음을 지적하면서, "이런 현실을 딛고 치뤄진 주민투표는 주민 스스로 삶의 터전을 지켜내는 자치민주주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시킨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부안에서는 군수퇴진, 예산감시, 자치강화운동 등이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직접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됐다. 배경내 활동가는 "국민발의제와 국민소환제 등을 통해 얻고자 하는 인권의 신장은 제도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시민들의 정치적 의식 성장과 권력관계의 역전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다.

직접민주주의가 열어 젖힐 정치적 공론의 광장은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대립관계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정치적 의식의 성숙과 소통을 통한 연대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장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