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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탈주자 양산하는 이주노동자 정책 개혁 서둘러야

화성 외국인보호소 탈주자 4명 붙잡혀…인권보호대책 시급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돼 있던 외국인 11명의 탈주사건을 계기로 외국인 보호정책과 강제추방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지난 27일 새벽 1시경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외국인보호소에서 강제출국 대기 중에 있던 외국인 11명은 보호소 내 창살을 자르고 함께 탈출했다. 29일 오후 현재까지 이들 탈주자 가운데 방글라데시인 2명을 비롯해 모두 4명이 붙잡혔다. 붙잡힌 이들은 다시 화성 외국인보호소로 재수용된 상태다.

무엇보다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들의 탈주 사유. 탈주자들의 대부분은 형사범이 아닌 단속으로 검거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이다. 화성 외국인보호소 관계자는 보호소내 처우에 대한 불만을 탈주사유로 꼽고 있는 일부 언론의 보도내용을 강력 부인하면서 "오늘밤부터 자세한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강제퇴거 후 재입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탈주하지 않았겠느냐"고 추정했다. 법무부 출국관리과 관계자도 "우리 외국인보호소의 처우 수준은 주변국들에 비해 훨씬 양호한 편"이라며 처우에 대한 불만이 사유일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울경인지역 평등노조 이주지부는 의견을 달리했다. 이주지부의 서선영 씨는 "외국인보호소는 오랫동안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을 범죄자처럼 다루며 폭행, 폭언을 일삼아왔고, 징벌 목적의 독방 수용이나 열악한 처우 등이 문제가 되어 왔다. 최근 개선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강제출국에 앞선 대기 장소인 외국인보호소에서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강요하는 '장기구금' 문제가 큰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출입국관리법은 강제퇴거 대상 외국인 가운데 즉시 송환이 불가능할 경우 무기한 수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임금체불이나 여행자 증명원 발급 등의 문제로 즉시 송환이 어려운 외국인들이 장기간 구금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번에 탈주했다 검거된 방글라데시인 찬드라센 씨도 5월 19일 보호소에 입소, 임금체불 문제로 4개월이 넘게 수용돼 있었다. 이주지부의 꼬빌, 비두 씨 역시 지난해 9월초 출입국관리소의 '표적단속'에 걸려 보호소에 수용됐다 21일간 단식농성과 국가인권위 진정을 거쳐 석 달 가량만에 일시 보호해제돼 풀려난 바 있다.

서 씨는 "임금체불 등의 문제로 당장 출국이 불가능한 경우 보호조치를 해체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데, 보호소측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사업주와 타협을 보게 한 다음 출국을 강요하는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부산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정귀순 대표도 "보호소측이 일시 보호해제를 적극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장기구금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보호와 강제퇴거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적법절차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해 11월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와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가 국가인권위 용역사업으로 수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심층면접에 응한 14명의 보호소 수용자 중 상당수가 서면으로 발부하도록 되어 있는 보호명령서를 본 적이 없고, 있더라도 (영어 이외에는 통역/번역이 제공되지 않아)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서명했다고 응답했다. 또 대다수는 강제퇴거에 대한 이의신청이나 보호소 내에서 일어난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인권위 진정절차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4년 미만 체류자 가운데 불법 입국자와 4년 이상 체류자를 합법화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고용허가제 역시 시급히 개혁되어야 한다. 11월 15일 이후에는 미등록자와 합법화 제외자들에 대한 대대적 단속·추방이 예고돼 있다. 정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보호소를 탈출하는 이유는 한국에 오기 위해 진 빚을 고스란히 안고 돌아가는 것이 그들에겐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호소내 처우문제는 물론, 선택적 합법화와 추방정책이 전면 재검토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