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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최종견해'가 남긴 교훈

부족한 이해가 낳은 미흡한 권고,
한국정부에 책임있다


지난 22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이하 위원회)는 한국정부가 제출한 제11차, 12차 이행보고서에 대한 심의결과를 담은 최종견해를 발표했다. 이번 최종견해는 지난 8일과 11일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열렸던 한국정부 보고서에 대한 심의회의 결과 나온 것이다.


"법제도 개선됐지만 실효성 의문"

최종견해에서 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고용허가제 입법 영주체류자격(F-5) 신설 난민지위심사제도의 개선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단일민족성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의 태도와 인종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률이 없는 점 등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인종차별 피해자의 진정이나 사법적 대응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보고서에 누락돼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관련 입법의 부재, 사법구제방법에 대한 인식 부족, 또는 관련당국의 기소 의지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밖에도 위원회는 산업연수생 미등록노동자의 다양한 권리들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외국인여성 인신매매 문제 국내적 구제조치와 협약 제14조에 규정된 개인청원절차에 대한 접근성과 홍보의 부족 정부의 이행보고서와 최종견해 배포에 있어서의 문제점 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가 법 제정이나 제도 마련 부분에 있어서는 만족할 만한 진전을 보여주었지만, 이에 비해 인종차별문제에 관한 한국사회의 명확한 인식이 부족하고 인종차별의 현실을 시정할 만한 실효성있는 법제도의 운용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위원회의 전체적인 평가라고 볼 수 있다.


한국현실 제대로 이해했나 의문

이번 최종견해는 한국사회가 그 동안 인종차별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요한 요소였던 '단일민족'이라는 맹목적인 관념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외국인여성 인신매매 문제를 언급하며 여성이 직면할 수 있는 다중적인 차별의 양상을 제기하고 인종차별문제에 성인지적 관점을 도입해야 한다는 커다란 인식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최종견해에 백정(白丁) 문제가 언급돼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위원회가 한국의 인종차별 이슈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협약의 올바른 이행을 위해 필요한 실질적 사항을 권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구체적 차별시정조치 권고했어야

산업연수생제도에 대해서도 심의과정에서는 고용허가제 입법시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지 않은 이유에 관해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도, 최종견해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우려의 표시나 폐지 권고가 누락되어 있다. 또한 위원회의 최종견해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이슈들, 즉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의 비준 촉구와 난민 신청인에 대한 사회적 처우 개선 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위원회가 지난 회기까지 관심을 보여 왔던 혼혈인에 대한 차별문제, 화교의 정치참여권 문제 등도 누락되어 있어 매우 큰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번 위원회 회기동안 영국, 이란 등 인종차별문제가 심각한 국가들의 이행보고서 심의가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점, 18년 동안이나 이행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라오스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긴급절차 결정 등 중요한 사안들이 많아 위원회가 한국의 인종차별상황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갖고 심의에 임했다는 점 등의 사정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우려사항에 대한 적극적인 시정권고를 내놓기보다 관련 정보를 차기 이행보고서에 포함시키라는 정도의 외교적인 문체로 최종견해가 작성되었다는 점은 매우 실망스럽다.


한국정부의 형식적 태도가 문제

이렇듯 위원회가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 데에는 심의회의 당시 한국정부가 위원들에게 한국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하고 형식적인 태도로 일관, 위원들이 제기한 많은 질문들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않은 책임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또 구체적인 현실을 제시하지 않고 관련 법조문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친 정부의 보고서도 비판의 대상에서 빗겨날 수 없다.

한국의 민간단체들 역시 그 동안 인종차별협약의 이행에 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한국의 상황을 위원회에 올바로 알리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못한 점도 반성해야 할 지점으로 남아 있다.


한국정부 앞에 놓인 과제

정부는 이번 최종견해에서 언급된 우려와 권고사항들을 단지 문자 그대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심의회의에서 제기되었던 위원들의 질문과 논평을 다시 한번 종합적으로 살피고 그 배경과 목적을 잘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위원회가 긍정적이라고 지적한 사항에 대해 자화자찬하기보다는 위원회의 우려와 권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이행해 나갈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특히 위원회가 권고한 바와 같이, 앞으로 이행보고서를 작성함에 있어 민간단체들과 협의함으로써, 이행보고서의 작성과 심의 과정이 한국사회에서의 인종차별 현실을 실제로 점검하고 건설적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과정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