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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불법체류자 없어야 인권문제 해결된다고?

외국인력제도 개선안 "논평 가치도 없다" 혹평


산업연수생의 수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먼저 자국의 송출기관에 거액의 뇌물을 줘야한다. 이렇게 거액의 빚을 지고 들어온 산업연수생들은 근로기준법 등의 적용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강요되고, 특히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노동3권의 보장이 안돼 감금, 폭행 등 각종 인권유린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연수생들이 사업장을 이탈해 보다 높은 임금이 보장되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필연이다. 하지만 이를 허용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이들은 언제나 단속과 추방의 위협 속에 살아가는 불법체류의 신분이 된다. 신분노출이 곧바로 추방으로 이어지는 이들 불법체류자는 또 다시 임금체불, 비인간적 처우 등의 인권유린을 묵묵히 참으며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불법체류 상태인 이주노동자는 현재 26만6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

"논평할 가치도 없다." 평등노조 이주지부 이윤주 지부장의 첫 마디는 정부의 '외국인력제도 개선방안'(아래 개선안)의 긍정성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허황된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지난 15일 각 언론사에 배포된 개선안은 △외국인력의 합법적인 국내취업을 확대하고 △불법취업자의 발생을 예방한다는 '거창한' 취지를 밝히고 있다. 개선안에 따르면, 정부는 연수생의 정원을 현 12만7천여 명에서 14만5천여 명으로 확대하고, 산업연수생·연수취업자·불법이탈자를 모두 합해 허용된 총정원 내에서 관리한다. 이렇게 되면 '산업연수(D3) 1년 후 연수취업(E8) 2년'이라는 현행 산업연수제는 그대로 온존하게 된다.

이에 대해 이윤주 지부장은 "(개선안의) 필요성이고 뭐고를 떠나서, 계속 문제제기가 되어 왔던 반인권적인 제도를 확대·강화시키겠다는 것이 개선대책인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노총은 17일 성명에서 "(산업연수제에 의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 노동착취, 사업장 이탈과 불법체류자 급증, 송출 및 관리를 둘러싼 각종 비리가 발생하고 있음이 분명히 밝혀졌다"라며, "산업연수생 제도는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자체의 문제"라고 지금까지의 비판을 상기시켰다.

노동·인권단체의 반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안이했다.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복지노동심의관실 정하영 과장은 개선안에 대해 "산업연수제의 기본골격은 유지하고 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외국근로자에 대한 인권침해는 불법체류자 단속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라고 주장했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없애는 해결책은 문제의 원인인 불법체류자 수를 줄이는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였다. 결국 개선안은 산업연수제의 온존과 대대적인 단속강화를 본질로 하고 있다.

단속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현 불법체류자에 대한 사면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진다. 개선안은 내년 3월 31일까지 불법체류자 전원에 대해 출국조치한다는 방침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과장은 "범법자인 불법체류자는 법대로 해야 한다"라면서, "(사면을 하게 되면) 앞으로 체류질서가 엉망이 될 수 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공동대표 김해성 목사는 이러한 전원추방 정책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단언했다. 이들이 모두 추방됐을 때 발생하는 인력공백 문제에 어떠한 대책도 없다는 것. 김 목사는 "새로운 법률에 의해 연수생 제도를 폐지하고 자진신고한 사람들을 첫 번째 허가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기업의 인력공백도 막을 수 있고 추방당하는 일도 막을 수 있어 서로가 살 수 있는 길"이라며, "이들은 또한 새로운 제도가 시작되기 전의 과도기를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개선안은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의 표본"이라고 김 목사는 혹평했다.

한편, 개선안은 외국국적 동포를 대상으로 '취업관리제'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눈길을 끌었다. 취업관리제에 따르면, 오는 11월 1일부터 방문동거(F1) 사증을 발급받아 입국한 동포들은 음식점업, 청소관련 서비스업 등에서도 최장 2년간의 취업이 허용된다. 하지만 정부는 그 혜택의 대상을 △국내 8촌 이내의 혈족이나 4촌 이내의 인척이 있거나 △대한민국 호적등재자 및 그 직계 존비속으로 40세 이상인 동포로 한정했으며, 이들에 대한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문제가 제기됐다.

주로 재중동포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보이는 취업관리제에 대해 동북아신문 우성영 편집장은 "조선족 동포들이 사업장을 옮길 수가 없어 마치 노예처럼 묶일 수 있다"라며, "산업연수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우 편집장은 "송출과정이 투명하지 않으면 그 부담으로 동포들이 다칠 수밖에 없"는데 "(개선안은) 조선족 관련 단체에서 얘기해 왔던 입국비리, 송출비리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개선안은 노동·인권단체는 물론 재외동포 관련 단체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