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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제58차 유엔인권위 소식 (8) 유엔인권위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 초안통과, 한국은 반대

고문의혹 구금장소 불시 방문 허용

지난 22일 유엔인권위는 지난 10년동안 논의되어 온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 초안(E/CN.4/2002/L.5)을 통과시켰다. 이 선택의정서 초안은 △독립적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위원회 설립 △고문의혹을 받고 있는 구금장소에 대해 정부의 동의 없이 무제한 방문 허용 △국내적으로도 동일한 감시기구 구성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코스타리카가 제안하고 유럽과 일부 중남미 국가가 지지하여 상정된 이 결의안에 대해, 쿠바는 논의 자체를 반대하는 '불처리동의안(no-action motion)'을 제출해 원천봉쇄를 시도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결의안에 대한 표결에서는 중국, 쿠바, 리비아, 말레이시아, 나이지라아, 사우디 아라비아, 시리아 등 강성 인권후진국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비슷한 의사를 가진 그룹(LMG)' 국가들과 합세해 한국과 일본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부분 유럽, 중남미국가들이 찬성표를 던져 결국 찬성 28표, 반대 10표, 기권 14표로 선택의정서 초안이 통과되었다.

국제앰네스티는 표결 직후 발표한 성명서에서 "고문의 사후조치가 아닌 예방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하면서, 기존의 고문방지협약이 실질적으로 집행될 수 있게 하는 강제력을 부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이집트, 중국, 쿠바 등의 국가들이 계속적으로 선택의정서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한국과 일본이 선택의정서에 반대표를 던진 데 대해 한 전문가는 "한국과 일본이 인권후진국들과 대열을 나란히 한 것은 놀랍고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법무부에서 파견된 한 한국대표단은 "국제기구가 자국의 구금시설을 불시에 방문, 사찰하는 것은 국가주권의 침해"라고 반대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한 활동가는 "한국이 구금시설 내에서의 인권상황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번에 통과된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는 올해 이어지는 경제사회이사회와 유엔 총회에서 검토 후 통과되면, 정식 국제조약이 된다. 그리고 다시 20개국 이상이 의정서에 가입을 하고 나면 발효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결의안 통과, 국가인권위․인권단체, 유엔에 직접 자료제출 가능

지난 23일 유엔인권위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관한 결의안을 표결없이 통과시켰다. 이날 크로아티아가 결의안을 상정하면서 '표결 없이 전원합의'로 통과할 것을 제안하자, 아무 국가도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아 결국 표결없이 통과됐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인정하지 않아 비난을 받아 온 한국과 싱가포르도 아무런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것은 결국 결의안에 찬성한 것으로 간주된다.

결의안에서는 지난 1998년 인권위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권으로 인정한 결의(E/CN.4/Res/1998/77)를 상기시키면서,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이 각국 정부, 국가인권기구, 국제기구, 민간단체 등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잘 이행되고 있는 사례'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 혹은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의 관련상황을 인권고등판무관에 보고해야 하며, 인권단체들도 관련 자료를 제출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지난 98년과 2000년에는 싱가포르 등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반대하는 일부 국가들이 표결 이후에 "전체적 합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반대의사를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발뺌하는 내용의 '의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보낸 바 있다. 이 서한에 한국은 98년에는 서명했으나, 2000년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싱가포르가 주도해 다시 발뺌하는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알려져, 한국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 지 주목되고 있다.


유엔 사회권 포럼 올해부터 열리게돼, '반세계화 투쟁'의 장내투쟁 교두보 기대

지난 5년동안 인권소위원회가 설립을 주장해 온 유엔사회권포럼이 결국 인권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지난 22일 인권위원회는 올해부터 인권소위원회 회기 이전에 2일간 '사회권포럼'을 열기로 결정했다.

사회권포럼에 관한 논의는 지난 1997년 '인권과 소득분배'에 관한 특별보고관이 처음으로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애초에 경제적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주제를 IMF, 세계은행, WTO 등 국제경제기구와 각국 정부, 전문가, 그리고 '폭넓은 민중의 참여'를 통해 논의하기 위한 장을 마련하기 위해 제안됐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계속 인권위원회의 반대에 부딪혀 오다가, 결국 올해 실현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사회권포럼에 관한 결의안은 지난 몇 년간 영국의 주도로 계속 부결되거나 연기되어왔다. 올해도 영국이 '인권소위 회기기간 동안 개최한다'라는 수정안을 제출했으나, 쿠바 등이 강하게 반발하여 회기 이전 2일 동안 개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캐나다, 일본, 영국은 반대하였고, 한국과 대부분 서방국가들은 기권표를 던졌다.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유엔사회권포럼은 사실 포르토 알레그레의 세계사회포럼 이전에 제안돼 왔으나 이제서야 열릴 수 있게 되었다. 시애틀, 제노아 등에서 터져나온 반세계화 운동이 세계사회포럼을 통해 보다 체계화되었고, 유엔사회권포럼을 통해 '장내투쟁'으로 전화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패거리투표, 표거래 만연

회기 초반부터 뚜렷이 드러난 서구선진국 대 이슬람 혹은 개발도상국 간의 대결양상은 회기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결의안에 대한 표결이 시작되자 더욱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지난 19일 진행된 국가별 인권상황에 대한 결의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로 비난받는 국가들이 서로를 비난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협력하는 작태가 연출됐다.

이날 최근 짐바브웨에서 일어난 선거유혈사태와 고문, 비사법처형, 불공정재판 등에 대해 특별보고관의 관심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상정됐다. 그러자 마치 작전이라도 수행하는 듯 나이지리아, 중국, 시리아, 콩고민주공화국 등이 차례로 짐바브웨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서, 결의안 상정 자체를 거부하는 불처리동의안을 제출했다. 결국 아프리카, 이슬람, 저개발국가 들의 협력으로 짐바브웨 관련 결의안(E/CN.4/2002/L.23)은 논의도 되지 못하고 부결됐다. 비슷한 상황은 체첸의 인권침해 관련 결의안(E/CN.4/2002/L.29)의 표결과정에서도 반복됐다.

한편 세계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결의안(E/CN.4/2002/L.44)은 파키스탄이 이슬람국가기구를 대표하여 상정했으며, 유럽연합과 한국, 일본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개발국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됐다. 이 결의안은 기존에 진행돼 온 특별보고관의 보고를 계속할 수 있게 승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투표양상에 대해 한 전문가는 "짐바브웨는 다른 아프리카의 인권침해 국가들의 로비로 결의안에서 빠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들 국가들이 서로 인권침해의 비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표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뿐만아니라 "파키스탄도 세계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패거리정치를 벌이고 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한 민간단체 대표는 "각국 정부가 유엔인권위에서 서로의 인권 침해를 감추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쓰는 동안, 아프리카의 민중들은 지금도 군인과 경찰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