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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사상전향제 오히려 강화

법무부, 양심수에 ‘준법서약’ 받기로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 반문명적 행위가 되풀이된다.

1일 박상천 법무부장관은 김 대통령에게 8․15 사면을 건의하면서, “양심수에 대해 ‘재범의 위험성’ 등을 실질적으로 파악하여 과감한 관용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다. 박 장관은 그러나 “최소한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유지 차원에서 ‘준법서약’은 불가피하다”며, 종래의 사상전향제도 대신 ‘준법서약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밝힌 준법서약제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비롯한 시국․공안사범을 대상으로 실시되며, 그들에게 “법질서를 준수하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문서로 서약받는 제도다. 특히 서약 이후에도 담당 검사가 서약서의 진실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교도소를 직접 방문해 확인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운영될 계획이다.

준법서약제의 도입에 대해 법무부는 “전향제도로 인한 양심의 자유 침해 논란을 배제하는 것”이라며 “준법서약은 ‘대한민국 체제․질서와 법을 인정하느냐’를 묻는 것이기 때문에, 사상의 포기를 요구하는 전향제도와는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사실상 ‘양심의 자유’를 더욱 교묘하게 침해하는 제도로 풀이된다.

기존의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의 대다수가 확신범인 이상, 그들에게 국가보안법의 인정을 요구하는 것(준법서약) 자체가 사상전향과 다를 바 없으며, 이에 따라 ‘준법서약’을 거부하는 미서약(비전향) 양심수들은 계속해서 사회로부터 격리될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특히 현재 30-40년 이상 복역중인 비전향장기수들 가운데 앞으로 시행될 준법서약에 응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그 경우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부정하는 자”라는 낙인이 더해져 사회복귀가 영원히 차단될 소지가 커진 것이다.

이러한 우려에 따라, 국내 인권․사회단체들은 “준법서약제도가 사실상 ‘양심의 자유’를 더욱더 침해하는 것”이라며 잇따라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최영도)은 “전향제도를 폐지한다는 방침은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일보를 내디딘 것으로 평가되지만, 이를 대신해 ‘준법서약’을 받는 것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향제도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민가협, 인권운동사랑방, 민주주의법학연구회도 공동성명을 통해 “인간의 내심을 표출할 것을 강요하는 그 어떠한 제도도 인권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전향제도를 무조건 철폐하고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고 주장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도 “다른 정치이념도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관용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준법서약제 시행에 반대했다.

이날 법무부장관의 보고는 기존에 전향제도가 존재해 왔음을 인정하고 전향제도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지만, 사상전향제도를 사실상 강화하는 것으로서, 향후 논란을 계속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