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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연재②> 양심수 사면 어디까지

분단의 비극 ‘남파공작원’ 초장기수 23명, 28-40년 구금


95년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45년 복역) 씨가 석방된 뒤에도 한국은 여전히 '세계 최장기수가 있는 나라'다.

2월 현재 40년째 구금중인 우용각(70) 씨를 비롯해 최저 28년 이상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초장기수'만도 23명. 이른바 '남파 공작원' 또는 '연락원'이라는 혐의로 구속된 초장기수들은 북에서 내려왔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0.75평의 독방에 바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 인권단체들은 이들 초장기수들 역시 새 정부의 사면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것은 크게 세가지 이유에서다.


고령에 중병 앓기도

우선, 초장기수들은 인간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장기구금생활을 거쳤고, 이제는 고령의 나이에 건강마저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23명의 초장기수 가운데는 김인수(76·36년 구금) 씨등 70세 이상의 고령자만도 10명이나 되며, 특히 수사과정에서 당한 고문의 후유증과 오랜 감옥생활 탓에 이들은 한두가지 씩의 질병을 앓고 있다. 불치의 골수암을 앓고 있는 신인영(70·31년째 구금) 씨를 비롯해, 중풍에 따른 안면마비와 언어장애인 우용각 씨, 당뇨와 고혈압, 신경통, 수전증을 앓고 있는 김인수 씨, 위장병과 결핵으로 고생하는 장병락(65·36년 구금) 씨 등 중병으로 고생중인 환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인간적 사상전향제도 희생자

둘째, 초장기수들의 끝도 없는 감옥살이가 '사상전향'이라는 반인간적 제도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사상전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진처우(처우분류)에서 제외되고 이로인해 취업을 금지당한다. 결국 단계별 승급의 기회를 봉쇄당함으로써 가석방이나 감형의 대상에서조차 제외되는 것이다.

또한 사상전향제도는 행형상의 차별과 비인도적 처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행 행형법상 독거수용의 최대기간은 2년6개월이지만, 이들은 70년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독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미전향자라는 이유 때문에 친족 외의 사람과는 면회와 서신조차 금지당하고 있다.


고문수사, 불공정 재판 받아

셋째, 이들은 공정한 사법절차를 거치지 못함으로써 행위에 비해 과도한 형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군사분계선에서, 또는 고향을 방문했다가 체포되는 등 뚜렷한 범죄행위보다는 북에서 내려왔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하게 중형을 선고받았다. 특히 길게는 7개월씩 수사를 받아 가며 그 과정에서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했고, 변호인도 없는 상태에서 비공개재판을 받는 등 사법과정에서의 인권마저 보장받지 못했던 것이다. 해상안내원으로 내려오다 체포당했던 김익진(69, 29년 복역) 씨는 1심재판에 들것에 실린 채 나갔으며, 한마디 발언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판결을 받기도 했다.


민족화합, 인도주의 실현 위해

천주교인권위원회 오창익 사무국장은 "초장기수 문제를 '양심수냐 아니냐'는 논쟁으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명을 해친 것도 아닌데 수십년씩 감옥에 가둬두는 것은 비인도적 처사이며, 민족의 화해와 대화합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도 초장기수들의 석방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말했다.

민족 화합과 인도주의 실현이라는 대전제 아래, 이들도 밝은 햇빛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