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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87년 허정길을 아십니까?

6월항쟁 주역, 살인죄로 10년째 복역


87년 6월항쟁의 주역이 ‘파렴치범’으로 몰려 10년째 안타까운 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주인공은 87년 당시 대전에서 리어카 야채상을 하다가 항쟁에 참가했던 허정길(41) 씨. 그는 87년 6월 19일 밤 대전역 앞 시위도중, 전경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해 시내버스를 몰고 가다 전경 1명을 사망케 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으로 허 씨는 살인 및 살인미수, 집시법 위반죄 적용을 받아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전주교도소에 수감중이다(수인번호 2002번).

그러나, 당시 목격자의 진술 등에 따르면, 사고는 우발적으로 발생했을 뿐 허 씨의 고의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한다. 그 날 허 씨가 시위대와 대치 중이던 전경 저지선 쪽으로 버스를 몰아가고 있을 때 갑자기 버스를 향해 최루탄이 난사되었고, 버스유리창을 깨면서 최루탄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이때 날아든 최루가스로 인해 허 씨는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이에 당황하며 가속페달을 밟은 것이 전경들을 덮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현장 목격자로서 허 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바 있는 박영기(기념사업회 부집행위원장) 씨는 “버스의 앞뒤 유리가 최루탄에 의해 박살이 나고, 버스 내부가 최루가스로 범벅이 되는 등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발생한 불가항력적 사건”이라며 “살인죄 적용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동료의 사망에 격분한 경찰들이 조사과정에서 허 씨의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고문을 자행한 끝에 ‘의도적 살인’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허 씨 석방대책위 구성

벌써 10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는 그의 사연이 알려지게 된 것은 「대전충남 6월 민주항쟁 10주년 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 산하 「허정길 석방대책위원회」(위원장 이명남 목사, 대책위)를 통해서다. 대책위는 “허 씨가 파렴치한 살인자가 아닌 암울한 한 시대의 희생자”라며, 6월항쟁 10주년 기념사업과 동시에 ‘허 씨의 석방과 명예회복’을 위한 탄원운동을 본격화할 것임을 밝혔다.

대책위는 지난 9일 “6월 민주항쟁 10주년을 기해 모든 양심수를 석방해야 하며, 여기에 허정길 씨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오는 6월 10일 6월 항쟁 1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허정길 씨 석방을 위한 거리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거리서명운동을 통해 허 씨 석방문제를 여론화시키고 9월경 청와대와 법무부 등에 탄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극심한 죄책감 속에 옥살이를 하면서도 허 씨는 “10년의 옥살이가 억울한 게 아니라, 파렴치범으로 낙인 찍혀 부당하게 대접받고 평가받는 것이 억울하다”는 심경을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10년간 교도소 내에서 자신을 시국사범으로 분류해 줄 것을 요구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교도소 당국과 마찰을 빚어, 서울․대구․김해․부산․원주․대전․강릉교도소를 거쳐 현 전주교도소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기념사업회의 심규선 사무처장은 “박종철, 이한열 열사를 죽인 자들마저 이미 석방된 상황에서 6월항쟁의 참가자인 허 씨에 대한 명예회복과 석방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석방 탄원이 수용되지 않으면, 대책위에서 재심청구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