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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손종규씨 손배소송 관련 자료> 제3자개입금지 국가상대 손배소송 제기

유엔 인권이사회 결정문 공시도 요구

<편집자주> 지난 7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전 금호노동조합위원장 손종규(40)씨의 제소에 대해 한국 정부가 유엔 자유권조약 제19조 2항 표현의 자유를 위반한 것이라고 최종결정을 내렸다. 손씨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26일 국내 처음으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첫 국가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민사지법에 제기한다. 아울러 법무부장관에게 유엔인권이사회의 최종권고를 기사화했던 5대 일간신문에 결정문의 주요내용을 요약․공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손씨의 소장 제출에 맞춰 민변과 민주노총(준)이 정리한 자료를 소개한다.

제3자개입금지와 관련, 91년 「연대를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회의」(연대회의)를 구성하여 활동하였던 당시 주식회사 금호노동조합위원장 손종규 씨는 92년 7월7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자유권조약) 및 그 선택의정서에 따라 인권이사회에 통보(개인제소절차)하였다. 인권이사회는 손종규 씨가 위 사건을 통보한 이래 약 3년에 걸친 심리 끝에 95년 7월19일 대한민국이 대우조선 노조의 파업을 지지한 연대회의 사건에 대해 제3자 개입금지규정으로 손종규 씨를 처벌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자유권조약 제19조 제2항을 위배한 것이라는 최종견해를 채택하였다(<인권하루소식> 9월15,16일자 참조).


정부, 국제사회에 무책임한 거짓말

이 최종결정문에서 인권이사회는 한국정부가 “손씨에게 금전 배상을 포함한 실질적인 구제조처를 제공하고 제3자개입금지규정을 재검토하여 장래에 이러한 위반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9월19일 “한국정부가 유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91년 4월 비준한 상태로 우리 정부의 조치내용을 전달할 도덕적 의무는 있지만 이를 따라야 할 법적 구속력은 없다”며 제3자개입금지규정의 개정의사가 없음을 발표했다.

그러나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아니된다”는 국제법의 원칙(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Treaties, 1980.1.22. 조약 제697호)과 국제법을 지키는 것이 헌법의 기본정신의 하나라는 점, 비준․공포하여 효력이 발생한 조약을 위반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인 동시에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인권이사회의 권고를 무시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어느 모로 보아도 법적 의무를 위반하는 것임이 명백하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그동안 인권이사회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The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에 대한 답변에서 “대한민국의 국회 등 국가기관은 위 국제규약 등 국제법과 위반되는 법률을 결코 제정할 수 없으며 국내법은 국제규약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국제법이 국내법보다 상위에 있거나 특별법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인정해 왔다.


ILO등 노동법 개정 요구 묵살

그러므로 위와 같은 노동부의 발언은 세계화를 앞세우면서도 한국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무책임한 거짓말을 늘어놓았음을, 그리고 노동권을 탄압할 때는 ‘도덕적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한국정부의 이중적인 잣대를 자인하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단병호 전 전노협의장과 윤재건 현대중공업노조위원장이 제3자 개입금지규정으로 구속된 바 있고, 권영길, 양규헌 민주노총(준) 공동대표, 박용선 대구노동조합연맹의장 등이 위 규정으로 수배중이며 그밖에도 제3자 개입금지 규정으로 인한 구속이 잇따르고 있는 사실은 스스로 받아들인 법적 의무를 위반하는 한국정부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이러한 현실은, 노동권에 제3자 개입금지규정을 둔 국가가 전 세계적으로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몇 개국 등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국제적으로 대부분의 국가들이 보장하고 있는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임을 입증한다. 이에 따라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이미 여러 차례 한국의 제3자 개입금지규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결사의 자유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을 밝히고 이를 개정하라고 한국정부에 권고했다. 최근에는 한국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지난 9월14일, OECD 산하 노동조합자문기구 역시 한국의 노동법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그 밖에도 저명한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의 권고 등은 한국의 노동현실이 국제사회에서 어느 수준인지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준비위원회」에서는 “손씨에게 금전 배상을 포함한 실질적인 구제조처를 제공하고…”라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한국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는 바이다. 그리고 이 청구소송을 통해 다시 한번 한국의 노동악법개정과 제3자 개입금지규정으로 인한 구속자들의 석방과 수배자들의 수배해제를 촉구하는 계기를 마련코자 한다. 비준이라는 법률행위를 통하여 받아들인 국제조약들을 성실하게 집행할 법적 의무가 있는 정부가 더이상 국민과 국제사회를 속이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한국정부는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지지하고 지원하려는 일체의 움직임을 ‘제3자 개입’이라는 이름으로 처벌하고 또 ‘불순한’ 행위로 선전, 매도하는 제3자 개입금지규정을 즉각 폐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