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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터뷰-민중외교훈련프로그램 집행위원장 조세 라모스 호르타

"유엔이 진정한 인권보호를 위한 장이 되도록 민간단체 노력 필요"


편집자주:호주에서 진행중인 민중외교훈련프로그램(DTP)에 참석했던 이성훈 씨가 <인권하루소식>을 위해 창립자이자 강사인 동티모르 조세 라모스 호르타와 지난 2월 4일 DTP 사무실에서 인터뷰한 것입니다.


조세 라무스 호르타(46)씨는 동티모르 저항운동평의회(CNRM)의 공동의장으로 1975년 12월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무력침공하기 3일전에 극적으로 탈출하여 당시의 동티모르 정부대표로 유엔을 무대로 활발한 국제외교운동을 펼쳐왔다. 그의 뛰어난 외교감각과 능력은 인도네시아 정부를 여러 번 곤경에 처하게 하였고 유엔총회와 인권위를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동티모르 문제가 항상 국제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89년부터는 자신의 국제연대 및 외교경험을 동티모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민중운동단체와 나누기 위해 민중외교훈련프로그램(Diplomacy Training Program;DTP)을 창설하였다.


◇먼저 바쁘신데 <인권하루소식>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제5회 DTP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는데 주요 진행자이자 강사로서 먼저 간단히 이번 프로그램을 평가해 주십시오.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DTP를 통해서 아시아 태평양의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유익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참가자들이 열심히 참가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여기서 배운 것을 토대로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유엔인권위 등 여러 국제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저희 DTP 는 능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후속작업을 지원할 것입니다.


◇많은 참가자들이 많은 것을 배웠지만 자신이 속한 단체와 관련하여 어떻게 배운 것을 활용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DTP의 후속작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DTP를 마친 참가자들이 갖게 되는 고민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단체마다 상황이 달라 뭐라고 일반화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후속작업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유갑스럽게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이곳 시드니까지 와서 배우기에 재정적으로 시간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요청이 있으면 각 나라를 직접 방문해서 약 1주일내지 2주일 정도 일정으로 핵심적인 부분만 추려서 DTP를 실시합니다. 그동안 네팔, 태국 등지에서 이러한 현지연수를 실시했고, 올해 5월에 태국에서 버마 인권운동가를 위해서 단기연수를 할 계획입니다. DTP 참가자 가운데 일부는 돌아간 후에 저희를 초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직접 제네바에서 열리는 인권위원회나 인권소위원회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서 도움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89년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DTP를 시작했는지 그 배경을 설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동안의 과정도 간단히 설명해주시죠.

-제가 75년 조국 동티모르를 탈출하여 다음날 곧장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 도착했을 때 사실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몰랐습니다. 단지 조국의 급박한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 저의 안중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습니다. 사전에 유엔에 대해 공부한 것도 없어 모든 것을 몸으로 부딪히면서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제3세계,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온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도 저와 똑같은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언을 하고 능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도움을 주곤 했지만 그럴수록 보다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마침 호주 시드니의 뉴 사우스 웨일즈대학과 법과대학 교수인 Garth Nettheim씨가 저의 구상에 적극 지지를 보내주셨고, John Scott- Murphy씨가 실무를 자원하여 법과대학 부설로 지금의 DTP가 정식으로 89년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조금씩 내용과 방법이 변화하였는데 올해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내년에도 약간의 조정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년 3월의 방콕대회와 6월의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를 통하여 많은 한국 인권활동가를 만나셨는데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그리고 앞으로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인권운동발전을 위해 한국인권운동이 해야할 역할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국인권운동은 지난 20-30년 동안 군사독재와 지난한 투쟁을 쉼 없이 해온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그러한 경험을 가진 나라는 흔치 않습니다. 이제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인권운동이 작년 방콕과 비엔나대회를 계기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한국처럼 풍부한 운동경험을 가진 나라가 많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도 방콕과 비엔나대회에서 한국 참가자들의 단결된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작년 11월 말, 마리 알카티리 씨가 한국을 3박 4일간 방문하여 동티모르 연대캠페인을 하였는데 알고 계셨는지 그리고 현재 동티모르 문제가 국제무대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간단하게 소개를 해주십시오.

-뒤늦게나마 미리 알카티리 씨의 한국방문동안 협조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알카티리 씨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최근 동티모르 이슈는 국제사회 특히 유엔 인권위를 중심으로 다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인도네시아 정부의 압력 때문에 항상 인도네시아 입장을 지지했던 아시아의 국가들도 작년 유엔 인권위에서 처음으로 미국, 호주와 함께 인도네시아를 비난하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일부는 기권을 하였습니다 작년에 유엔 인권위 한국대표를 만났는데 동티모르 이슈에 호의적이었고 제가 알기로는 기권표를 행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최근 저희는 아시아지역에서 동티모르 지원캠페인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으며 마리 알카티리 씨가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 것도 그러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아시겠지만 올해 5월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시아의 동티모르 지원단체들이 모두 모이는 대규모 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2월 4일 DTP가 끝나서 제50차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여하기 위해 제네바로 가시는데 이번 회의에서 동티모르와 관련된 주요의제는 무엇입니까?

-알다시피 그 동안의 줄기찬 노력의 결과 작년 인권위원회에서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정책을 비난하는 결의안이 극적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사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과거의 관행에 젖어 방심한 탓도 있습니다. 작년 결의안으로 동티모르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인도네시아 정부와 유엔에서의 외교전쟁이 이제 본격화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올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막강한 외교력을 바탕으로 자국에 유리한 결의안을 통과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할 것입니다. 물론 저희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인권위원회에서는 작년 결의안 통과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정부의 동티모르 정책에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폭로하려고 합니다. 자세한 전략은 비밀이라 현재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그동안의 줄기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인도네시아 정부가 기존의 입장을 변경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은데 동티모르 이슈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아닙니다. 최근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변화된 국제정세와 동티모르 독립운동의 계속된 저항에 직면하여 과연 동티모르를 지금처럼 점령하고 있는 것이 국익에 유리한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하르토가 고령으로 이번의 대통령 임기가 마지막이므로 임기중에 어떤 형태로든 동티모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최근의 유엔 개혁논의에서 인도네시아는 일본과 함께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하는데 자국의 인권상황과 동티모르 문제는 당연히 자격시비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었듯이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인권탄압이 매우 심각한 상태이고 과거처럼 서방국가들이 자국의 군사,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여 무조건 인도네시아 정부의 인권탄압을 묵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아마 동티모르는 3-5년 안에 독립하지 않을까 예측합니다.


◇3-5년이라고요? 개인적인 견해입니까, 아니면 동티모르 저항평의회의 공식의견입니까? 너무 낙관적으로 사태를 보는 것이 아닙니까?

-미래에 대한 견해를 공식화할 수는 없지만 저항평의회에서도 저와 마찬가지로 3-5년후면 독립의 기회가 오리라 예상하고 그에 따른 준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는 모든 것을 종합해서 판단할 때 그다지 과장된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질문인데 최근 유엔이 결국 인권보다는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외교무대이고 모든 결정이 국력에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예로 들며 유엔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민간단체(NGO)들이 적지 않게 있는데 유엔 활동 경험이 많은 조세 씨는 유엔을 인권의 입장에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려 회의론을 피력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상당부분 긍정합니다. 저도 유엔을 무대로 18년을 일해 오면서 좌절감을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은 정당한 근거를 가진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전세계의 많은 인권문제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당한 영향을 끼쳐왔고 앞으로도 계속 제도로서 존속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유엔기구를 각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주체적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유엔에 대한 극단적 편향, 즉 유엔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라는 환상, 또는 유엔을 대상으로 시간과 돈을 쓰기에 얻는 것이 하나도 없고 유엔 자체가 무용하기에 폐지해버려야 한다는 과격입장을 모두 극복해야 합니다.

유엔은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접하는 많은 제도와 기구처럼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United Nations이 아니라 United Government라는 표현이 상징하듯이 유엔이 각 나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가 모여 협상하는 외교의 장인 것임이 분명 사실이지만 유엔헌장에 나타났듯이 국제적 인권증진을 목표로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제가 많이 경험했듯이 유엔에 있는 국제공무원과 각 나라 대표단 가운데에 인권에 대해 순수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과 협력, 연대해서 어떻게 유엔의 정책을 몇몇 강대국의 이익이 아니라 약소국가의 이익과 보편적인 인권이 증진되도록 만들어 가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많은 유엔관계자들은 NGO가 유엔인권관련 전체일의 70%를 차지한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NGO의 참여 없이 UN의 많은 사업, 특히 인권관련사업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가 없습니다. 보다 많은 NGO가 유엔에 대해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엔이 단순하게 국익에 기반한 외교의 장으로 전락하지 않고 인권보호와 증진의 도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모든 NGO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알다시피 DTP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입니다.

*주; 동티모르 독립운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에서 발행한 자료집 ꡔ동티모르 독립운동의 어제와 오늘ꡕ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