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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신년특집 / 한승헌 변호사에게 듣는다

잘못된 과거를 묻어둔 채 '역사의 심판'이나 '미래화'를 역설하는 것은 올바른 개혁의 길


□93년에 하신 변론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 지난해에 내가 변론을 맡았던 사건 중에서 통일운동가인 김낙중 선생과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씨에 대한 각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이 세상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젊은 변호사들과 함께 힘껏 변론했으나 두 분 모두에게 중형이 떨어졌지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추구하는 지식인들을 '죄인'으로 다스리는 현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이라든가 북한당국은 더 이상 반 국가단체일 수 없다는 논리를 법원이 거부하는 것은 이율배반입니다. 위의 두 분이 감방에서 쓴 통일문제를 중심으로 한 장문의 진술서나 항소이유서가 기억에 남습니다.


□올해 인권운동의 최대과제를 두세가지 말씀해 주십시오.

◇ 우선 1)양심수 내지 시국사범의 석방 및 완전 복권, 2)현행법령 중 인권침해 조항의 개폐, 3)국제인권규약 준수의 감시 등으로 간추려볼 수 있겠습니다.


□올해는 행형법의 개정이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80년 12월 22일에 미흡하게 개정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이번 개정방안에 대한 전망과 이를 위한 민간단체 등 인권단체들이 해야할 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 행형법은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피구금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처우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합니다. 최소한 UN이 제정한 '피구금자 최저기준 규칙'에 미달되는 부분을 고쳐야지요.


□93년 6월 비엔나 UN 세계인권대회에서 한승주 외무부장관이 연말(93년 말)까지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하겠다고 밝혔으나 해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최형우 현 내무장관이 '사상범은 잠을 안 재워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상태에서 정부의 고문방지협약 가입이 이루어질런지요. 또 고문근절을 위해 우리 주변에서 시급히 이루어져야할 것은 무엇인가요?

◇ 정부 당국자는 자기가 국내외적으로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부가 고문방지협약 가입을 미루는 것은 자칫 현정권의 도덕성에 손상을 자초할 염려마저 있습니다. 내무장관의 '사상범 고문' 발언은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처절한 고문의 피해자도 한번 집권세력이 되고 나면 그처럼 달라질 수 있는가 싶어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만일 그 발언이 본심의 발로가 아니고 단순한 실언이었다면 앞으로의 장관 노릇을 통해서 실증해주기를 바라고, 계속 지켜보고자 합니다.


□형사피의자?피고인의 인권문제 중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 무엇보다도 수사 중의 가혹행위가 근절되어야 하고 구속영장의 남발을 방지해야 합니다. 특히 시국사범의 재판에 대한 법원의 타성이 바로잡혀야 합니다. 행정부의 눈치를 보는 듯한 입헌상의 불균형도 반성해야 마땅합니다.


□94년은 '세계 가정의 해'입니다. 인권운동 분야에서 어떤 사업을 했으면 좋겠습니까?

◇ 가정 내의 폭력을 예방하고 비인간적인 남녀 차별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93년에는 국제연대활동(비엔나 UN?세계인권대회 등)이 활발했습니다. 올해 국제연대활동의 방향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십시오.

◇ 우리나라 인권활동 관계자들이 그런 세계적인 대회에 참가한 것만도 의미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현정권에서도 인권침해가 속출하고 억울한 옥살이가 끊이지 않는다면 인권의 보현성에 입각한 국제연대활동은 필수적으로 전개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인권침해나 양심수가 아주 소멸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데 대해서 국내외에 바른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청산 문제가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 현정권은 당초에는 과거청산을 전제로 하는 개혁을 내세우기에 한 때 기대를 걸어 보았으나 선별적인 사정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집권자와의 관계 여하에 좌우되는 이중성도 드러냈습니다. 잘못된 과거를 묻어둔 채 갑자기 '역사의 심판'이나 '미래화'를 역설하는 것은 올바른 개혁의 길이 아닙니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묘안을 말씀해 주십시오.

◇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법정 안팎에서 말과 글로써 주장을 되풀이해왔습니다. 남북 UN 동시가입 및 남북 기본합의서 발효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법적으로 모순됩니다. 국회가 그 법을 폐지할 때까지 국민 각계가 꾸준히 법폐지운동을 전개하는 길 외에 달리 '묘안'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변호사 님의 올해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 재판의 성실한 수행은 변호사로서의 기본적인 임무이겠지요. 그밖에 동학백주년 기념사업단체의 김대중 선생 납치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기 때문에 그 직분에도 충실하고자 합니다. 수상집도 한 권 낼 생각입니다.


□<인권하루소식>에 한 말씀해 주십시오.

◇ <인권하루소식>은 팩스 전송의 방식부터가 뉴스의 신속성을 살려주고 있으며 지금도 신문방송이 소홀히 다루고 있는 인권문제를 빠트리지 않고 매일 책상 옆에까지 전해주기 때문에 매우 유익하고 고마운 매체가 되었습니다. 넉넉지 못한 재정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많은 수신자(독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시민운동 차원의 캠페인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권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