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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촛불시민은 신데렐라가 아니다!

안식휴가를 쓰던 3월 27일, 공권력감시팀 대화방에 다급한 메시지가 떴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야간시위에 관해 결정을 하니, 헌법재판소로 와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6년이 지난 이제야 야간시위에 대해 위헌여부를 결정하다니, 좀 어처구니가 없기는 했지만 일말의 기대를 품고 헌법재판소로 향했습니다. 2009년 9월 24일 헌법재판소는 야간집회에 관해 사실상 위헌결정을 했습니다. 야간집회가 위헌이 나왔듯이 야간시위의 위헌성도 곧 밝혀질 것이라고 법조계는 진단했지요.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여지없이 기대를 깨고 ‘한정위헌’이라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자정 24시 이전의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지만, 자정 이후의 시위를 금지할지 여부에 관해서는 국회가 판단할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국회에는 집시법 10조(절대적인 시감금지) 삭제를 포함한 집시법 개정안(대표발의 이상규 의원)과 0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집회시위를 금지하도록 한 집시법 개정안(대표발의 윤재옥 의원)이 발의되었습니다. 그러나 국회에서 집시법 개정안 논의는 진전이 없었고,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재판은 시작되었습니다. 재판에서 경찰이 작성한 정보상황보고서(경찰이 집회를 감시하면서 시간대별로 집회상황을 정리한 것)가 증거로 채택되었고, 검사는 집회에 참여한 사실이 무슨 중범죄인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반면, 피고인들의 무죄 주장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법정을 울렸어요. 촛불시민들에게는 집시법 10조 야간시위와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가 적용되어 50만원에서 300만원에 이르는 벌금형이 선고되었습니다.

 

현재 민변이 진행 중인 촛불변론은 약식기소 사건 250건, 정식기소 사건 56건 등 총 306건이며 피고인 수로만 945명에 이르고 있습니다.(민변 촛불변호인단 집계). 이들은 2008년 촛불집회가 진행된 청계광장, 종로, 광화문 등 집회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연행, 기소되어 무려 6년 동안 재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촛불시민들 중에는 인권침해 감시단을 하다가 또는 의료지원 활동을 하다가 연행되어 기소된 경우도 있었고, 집회참여자가 아닌데도 현장에서 연행, 기소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가, 집회 촬영 중 연행되거나, 인도에서 이동 중 색소가 묻었다는 이유로, 귀가 중에 우연히 집회장소 인근을 지나다가 연행되었답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지요.

 

검찰은 24시 5분에 연행된 사람도 기소하였고, 새벽에 연행된 사람들에게는 그 이전부터 시위를 했을 것으로 간주하여 기소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검찰은 24시 이후 시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 자르듯 24시를 기준으로 기소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고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주어 벌금형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신데렐라’도 아니고 자정 24시가 지나면 무조건 시위를 하지 말아야 하나요? 우리가 바꾸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자정24시가 지나면 무조건 중단해야 하나요?

 

재판을 보면서, 2010년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 조진형 의원이 발의한 야간시위금지법안(집회를 밤 22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도록 잘 싸웠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구나’라는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경찰은 2008 촛불집회로 약 1,649명을 입건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2009년 헌법재판소가 야간집회에 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자 검찰은 일부 사건에 관해서 공소를 취소하기도 하고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기도 했지만(대략 700건으로 24시 이전에 연행된 사례들) 나머지 900여 사건(24시 이후에 연행된 사례들)은 야간집회시위를 제외한 일반교통방해 등의 혐의로 공소를 유지하거나 야간시위로 공소장을 변경하여 공소를 유지해왔습니다. 촛불시민들을 어떻게 하든 단죄하겠다는 검찰의 숨은 의지를 잘 보지 못했던 거지요.

 

▲12월 2일 자정이후 촛불시위를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내리는 규탄 기자회견이다.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참여연대, 민변, 한국진보연대가 함께 했어요. 

2008 촛불시민의 노고로, 이제는 문화제라고 우기지 않아도 저녁이나 밤에 집회가 가능합니다. 2010년 7월 1일 야간집회가 처음으로 청계광장에서 진행했을 때 감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조중동을 포함해 야간집회가 가능해지면 당장이라도 이 사회가 폭력으로 쓰러질 것처럼 난리를 피웠던 그들에게 묻고 싶어요. 과연, 촛불집회로 이 사회가 불안해졌냐고! 지금도 경찰은 온갖 자료를 동원해서 야간에 하는 집회와 시위에 '불법과 폭력‘의 딱지를 붙이고 있답니다. 불법과 폭력을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공안세력인 듯 합니다.

▲12월 10일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2008년 촛불집회 토론회-헌법적 관점에서 본 현행 집시법, 일반교통방해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개최하였답니다. 

6년이 지나 재판이 시작되자,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는 촛불시민들로 북적입니다. 아이 엄마가 된 시민을 비롯해서 어느새 직장인이 된 시민, 촛불집회 참여를 계기로 지역사회운동으로 전업한 시민 등 시간이 흐른 만큼, 사연도 다양합니다. 국가는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으나 저는 촛불시민들이 거리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4년마다 혹은 5년마다 대표를 뽑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일상과 실천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거리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몸으로 체험한 촛불의 힘은 2008년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등록금집회, 희망버스,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 추모와 진실을 밝히기 위한 힘으로 이 사회를 밝히고 있습니다.g, by 인권운동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