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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혐오감’에 기댄 혐오표현 대응이 달라져야만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은 혐오의 문제에 다시 불을 지폈다.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고 비판했던 이재명 대통령은 또다시 봉하마을에서 벌어진 ‘일베 인증샷’에 조롱과 혐오 표현을 규제할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일상에 깊이 스며든 혐오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 긴박한 과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강력한 대응을 내세우기에 앞서 혐오가 반복되고 확산하는데 그간의 대응이 어떻게 빗겨났던 것인지를 되짚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혐오의 문제가 어떻게 설정되고 어떤 대응이 이루어져 왔는지를 돌아보는 것에서부터다.

혐오표현에 대응하는 이유

혐오가 사회적 문제인 이유는 어떤 대상을 싫어하는 개인적 감정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혐오는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라는 사회적 구성물에서 비롯된다. 혐오표현은 단순히 싫음을 드러내는 ‘나쁜 말’이 아니며, 특정 집단을 향한 적대감이 실질적인 위협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경계에 놓여 있다. 혐오표현은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지역, 인종,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어떤 개인·집단에게 모욕, 비하, 멸시, 위협, 또는 차별·폭력의 선전과 선동을 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표현이다.(2019년 국가인권위 혐오표현 리포트) 혐오표현을 사회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이유는 혐오를 드러내는 표현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그것이 초래하는 부정적 효과와 해악이 크기 때문이다.

혐오표현은 특정 소수자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나 고정관념에 기대어 차별과 배제의 태도로 이어진다. 혐오표현은 그 표현을 직접 접한 개인을 넘어 해당 집단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학교나 일터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일상적인 생활과 관계가 위태로워진다. 특정 정체성을 이유로 한 적대는 그 정체성을 지닌 개인과 집단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게 만든다. 나아가 혐오표현은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며, 표적이 된 집단을 공론장에서 밀어냄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혐오표현 대응의 목적은 소수자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차별로부터 보호하며,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보장하고 증진하는 데 있다. 혐오의 문제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는 구조적 차별과 맞물려 있기에 다각적인 경로 속에서 대응이 모색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혐오표현 대응은 혐오의 문제를 다루는 방향성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혐오를 표출하는 집단과 표현만 문제로 삼고 그에 대한 법적 규제를 중심에 두며 이루어져 왔다.

혐오를 발산하는 집단과 드러나는 표현의 문제?

우리 사회에서 혐오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것은 2010년대를 거치면서부터다. 2013년 광주항쟁 희생자를 모욕하는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게시물이 논란이 되었다. 그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존재하던 혐오의 문제가 부각되며 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어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투쟁을 조롱하며 일베의 ‘폭식투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발화와 행위는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났다는 사회적 분노를 촉발하였고, 일베는 혐오의 진원지라는 상징이 되었다. 어떤 차별의 구조에서 혐오가 작동하는지 살피기보다, 혐오의 문제를 일베 같은 ‘일탈적’인 집단의 문제로 여기면서 이들을 어떻게 제지할 것인지에 초점을 둔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접근 속에서 혐오표현 대응은 혐오가 드러나는 표현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입법조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번 논란으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를 금지한 조항에 추가로 부인, 비방, 왜곡, 날조, 조롱 등을 열거하며 금지되는 표현의 범위를 확대하는 5.18특별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이른바 ‘일베금지법’이라 부르며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조롱·혐오 정보를 불법정보 항목에 추가하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대응은 혐오표현의 확산 이유를 현행법의 ‘사각지대’에서 찾으며 혐오의 문제를 표현의 문제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렇게 혐오표현의 양상만을 주목하며 규제 범위를 넓히는 접근은 정작 이같은 혐오표현이 어떤/왜 문제인지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기회를 차단한다.

혐오를 발산하는 집단과 드러나는 표현에만 중점을 두면서 정작 혐오표현이 무엇인지, 왜 사회적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에서 함께 공유해야 할 이야기는 사라졌다. 혐오의 문제를 일탈적인 이들의 비도덕적 행위로 다루면서 혐오표현이 뿌리 내리고 있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지워졌다. 혐오표현 대응의 원칙과 기준 없이 문제가 되는 집단과 표현을 제어하는 데만 골몰하면서 표적 집단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하고 증진할 것인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차별과 배제를 낳는 사회구조적 조건을 외면한 채 규제와 처벌을 앞세운 대응을 반복하면서 혐오표현을 줄이는 데에도, 혐오표현의 표적이 된 집단을 보호하는 데에도 실패해왔다.

진영화된 정치, 방치된 혐오의 자리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탱크데이 논란은 여야가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선이 되었다. 민주당은 스타벅스 출입금지령을 내리며 불매운동에 동참했고, 국민의힘은 이를 마녀사냥이라 비판하며 ‘커피 한잔의 자유’를 내걸었다. 스타벅스 논란을 선거 승패를 가를 변수로 여기며 정쟁화하는 구도 속에서 혐오의 문제는 진영의 문제로 뒤바뀌었다. 일베 게시물이 사회적 논란이 된 2013년 19대 국회에서는 “인종 및 출생지역 등을 이유로 사람을 혐오한 경우” 처벌할 수 있는 ‘혐오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혐오를 어떻게 규정할지 명확하지 않고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임기만료 폐기되었는데, 당시 여야를 막론한 의원 49명이 공동발의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지금의 정치는 혐오를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라기보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자원으로 다루고 있다. 혐오에 대응하겠다고 말하지만, 기득권을 둘러싼 경쟁에 매몰되어 정치가 오히려 혐오가 자라나는 토양을 더욱 공고히 하는 형국이다.

한편 이번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후보의 성소수자 혐오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난해 혐오 현수막의 심각성을 이유로 정부가 마련한 ‘옥외광고물법 금지광고물(내용 금지) 적용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를 신고했지만, 선관위와 지자체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철거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어떤 것은 규제하고 어떤 것은 방치하는 선택적 대응은 국가가 일관된 기준과 원칙에 따라 혐오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온라인상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개정 정통망법이 7월부터 시행된다. “공공연하게 인종, 국가 지역, 성별, 장애, 연령, 사회적 신분, 소득수준 또는 재산상태를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차별을 선동하거나, 증오심을 심각하게 조장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현저히 훼손하는 정보”를 불법정보 항목에 추가하면서 혐오표현을 심의 대상에 포함했다. 그런데 이 개정안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보수 개신교의 반대로 차별사유에서 성적 지향은 제외되었다. 정통망법만이 아니라 현재 22대 국회에서 혐오 대응을 이유로 발의된 여러 법안들에서도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은 사유에서 빠져있다. 이는 결국 어떤 혐오는 용인한다는 메시지로 혐오표현 대응의 의미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선별은 혐오 대응에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혐오의 대상은 고정된 하나의 집단이 아니며, 표적이 되는 집단을 옮기면서 혐오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선택적이고 선별적인 대응은 혐오표현 대응의 길을 잃게 한다. 일례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인종, 지역, 직업 등을 차별하거나 이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을 이유로 이루어진 심의결정(2014, 2016, 2017년 3332건) 중 남성에 대한 혐오표현 심의 건수(536건/16.1%)가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 심의 건수(470건/14.1%)보다 많았다고 한다.(2018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혐오표현 통신심의에 대한 탐색적 고찰>) 공격적이거나 불쾌감을 주는 모든 표현을 혐오표현과 동일시한 결과다. 혐오표현을 구조적 차별의 문제로 보지 않는 이러한 접근은 차별과 권력의 구조를 가리고, 결과적으로 그 구조를 재생산하고 강화한다.

혐오표현 대응, 평등을 좌표로

혐오의 시대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시대를 함께 넘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지난 10여 년 우리 사회에서 혐오 대응은 사회적 공분이 모인 사건을 따라 ‘혐오감’에 기댄 대응이었다. 근본적인 접근 대신 논란이 된 사안을 중심으로 규제하는 방안만 반복적으로 내놓는 것에 그쳐왔다. 혐오표현 대응의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그 원칙과 기준을 세우는 기본틀로서 차별금지법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혐오표현 대응의 우선적 과제로 현재 시민사회에서 요구하는 고위공직자 혐오표현 규제가 있다. 같은 표현이라도 누가 발화했는지에 따라 그 영향력은 크게 달라진다. 혐오표현 대응에서 방점을 표현 자체가 아니라 표현이 미치는 영향력에 두어야 한다. 고위공직자의 혐오표현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에 그 책임을 더 무겁게 물어야 한다. 혐오를 정치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진영화된 구도를 강화해온 현실을 떠올릴 때, 이는 더욱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더 적은 표현이 아닌 더 많은 표현으로.” <혐오표현에 관한 유엔 전략 및 행동계획>에서 제안하는 첫 번째 핵심원칙이다. 그동안 혐오하는 집단과 표현을 어떻게 제지할 것에만 집중해왔는데, 법적인 조치 외에도 캠페인과 교육 등 다양한 비법률적인 조치들로 다각적이고 다층적인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혐오표현에 맞설 대항언어를 키우고, 소수자의 목소리가 공론장에서 더 힘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연이은 논란으로 혐오의 문제가 다시 사회적으로 떠오른 지금, 중요한 것은 분노에 그치지 않고 혐오에 대항하는 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