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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혐오 조장 세력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이 말은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인 2014년 15회 ‘퀴어퍼레이드’의 표어이다. 최근 들어 이 말을 곱씹게 되는 상황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반동성애 등을 내세운 사람들이 서울시 인권헌장 제장에 반대한다며 낸 신문 광고를 보며, ‘일베’의 광화문 폭식 투쟁을 보며, 서북청년단의 부활을 선언하는 사람들을 보며. 언제부턴가 혐오 표현이 공공의 장소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조직적으로 혐오 표현을 공공의 장소에서 노출하는 움직임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분산적으로 혐오 표현이 표출되었던 것과는 그 범주가 다르다는 점에서 결코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다. 


우리의 관계맺음을 훼손하는 혐오 표현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은 종종 ‘내 개인적 감정 표현인데 마음대로 말도 못하냐’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혐오는 개인적이기보다 사회적이다. 혐오는 대부분 사회적 관계의 위계 속에서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혐오의 근거로 내세우는 말들도 사회적인 학습을 통해 이루어진다. HIV/AIDS를 이야기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범죄를 이야기하며 이주민을 혐오하고, 범죄와 게으름을 이야기하며 홈리스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점차 조직화되고 공론의 장으로 쏟아지는 혐오 표현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혐오 표현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대상을 사회적으로 배제하거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도록 강요하고 지우려는 방향으로 나간다는 점이다. 혐오 표현은 단순히 누군가가 싫다는 감정을 넘어 그들이 공공의 장소에서 사라지거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강요한다. 동성애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탈)동성애를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인 흐름이다. 혐오 조장 세력들은 ‘차별하면 안 된다’는 형식적인 선언에는 동의하면서도 정작 사회적 약자들과의 관계 맺기, 소통은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사회를 획일화시키려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성소수자를 비롯한 혐오 표현의 대상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긍, 삶의 가치를 부정당하게 되고 공공의 장소에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쉽다. 결국 혐오와 차별이 확산될수록 우리의 관계 맺기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두’와의 관계 맺기가 되기 어렵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와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에 혐오와 차별의 시선이 끼어들수록 우리의 관계는 온전한 것이 될 수 없다. 

정치적인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는 혐오

혐오 표현을 조장하는 세력들이 점차 세력 불리기를 하는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혐오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혐오는 불안을 먹이로 자라난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될수록 이주민에 대한 혐오 표현과 폭력이 점차 확산되는 유럽처럼,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여겨지는 이주민과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혐오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회적 불안이 커지면서 성소수자를 ‘자신들의 가족’을 파괴하는 이들로 간주하는 것도 이러한 경향이다. 그러나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 등의 사회적 불안은 결국 그러한 체제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본가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회적 약자일 수 없다. 그러나 소수의 기득권들은 ‘혐오’를 동원하여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도리어 그 책임을 사회적 약자로 돌리고 이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위 사진:분과토론 중 성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토론 진행자(오른쪽)가 반인권적인 발언이라고 경고했으나, 성소수자 인권에 반대하는 한 시민(왼쪽)이 이에 항의하고 있는 모습.[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최근 혐오 조장 세력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자리마다 조직적으로 나타나 훼방을 놓고 있다. 성소수자들의 자긍심 행진인 퀴어 페레이드에서 난동을 부린 이들이 다른 단체로 옷을 갈아입고 세월호의 온전한 해결을 요구하는 농성장, 지자체에서 인권헌장 등을 논의하는 자리를 난장판을 만들려 하고 있다. 저들은 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자리를 난장판으로 왜곡시킴으로써 다른 이들의 참여를 막고 외면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 이처럼 저들은 수구 세력의 선동대를 자처하면서 점차 공적인 지위를 꿰차고 자신들의 지분을 늘리고 있다. 공공의 장소에 조직적으로 나타나는 혐오 조장 세력은 결국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만이 아니라 대안적인 삶의 가능성마저 지워내고 있다. 혐오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힘을 키우는 저들 혐오 조장 세력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것이다. 


아직 지켜지지 않는 인권을 위해 더 나아가야 할 때

지난 17일 서울시 인권헌장 강북 권역 간담회에 참여한 혐오 조장 세력들이 한 목소리로 한 말이 있다. “나는 동성애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없음을 그들도 안다. 동성애를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어오던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동등한 인권을 누려야 함을 수십 년간 주장하여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저들은 이러한 인권적 성취를 다시 무너뜨리려 한다. 나아가 사회적 문제를 특정 집단 때문인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기득권의 이익을 지키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혐오를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이 아닌 우리의 문제임을 더욱 분명히 하고 저들에 맞서야 한다.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려는 저들에게 그들의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모든 관계 속에서 우리 모두의 인권을 지키는 일임을 확인하고 함께 싸워가야 한다. 서울시 인권헌장을 무력화시키려는 저들에 맞서 서울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혐오가 아니라 사랑임을,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서울시임을 확인하는 우리의 행동이 지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