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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저를 덜 표류하게 하는 사랑방이 있어 행복합니다

제이 님을 만났어요

이번 달 후원인 인터뷰에서는 잘하든 못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긴 호흡으로 즐기며 살아가고픈 제이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입사 3년 차부터 그만둬야지 하던 회사를 12년 만에 그만두고, 퇴사한 김에 이름까지 바꾸며 그야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제이’ 님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시죠!

 

간단하게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기업에서 회계 업무를 오래 하다가 퇴사하고, 일 년 쉬다 최근 비영리 기구로 자리를 옮겨 적응 중인 평범한 직장인 제이라고 합니다.

 

회계 일은 막연히 어렵게 느껴지는데, 적성에 잘 맞으시나요? 어떤 계기로 이 일을 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기는 아닌데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어요. 상대적으로 국어나 영어가 어렵게 느껴졌죠. 대학에 진학해 회계학을 접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이 분야에서 일한 지 18년이 되어갑니다. 적성에 잘 맞는 편이죠. 2030 시절에는 밤을 새서 일하는 것도 재밌었고, 일을 잘하고 싶어서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기도 했었어요. 지금도 일은 재밌어요. 뭐랄까. 증빙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달까요.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료되는 것 같아요. 다만 작은 디테일에 집중해야 하는 일이기도 해서 큰 그림을 보고 거시적으로 일하는 건 좀 약한 듯해요. 숫자가 표현하는 건 단순하니까요.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회계 분야의 전망이 점점 어두워진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현실에서 체감하시나요?

제 또래보다는 이 분야에 막 진입한 사람들의 장벽이 높아진 건 확실한 거 같아요. 기계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랄까요. 제가 15년 동안 다니고 퇴사했던 회사에도 이른바 고인물들로 가득했어요. 기본 경력이 10년 이상 되는 사람들만 남아있고 정규직 중에서는 과장이 막내인, 그런 상황이에요. 신입사원을 직접 고용하기보다는 대부분 정부의 청년 일자리 형태로 고용하고 보수는 열정페이 수준으로 지급하죠. 청년들이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으려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데, 국가나 회사는 그걸 되게 쉽게 소비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안타까워요.

 

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두신 건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30대 초반부터 하긴 했어요.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어서 열심히 했고 성취감도 느꼈는데, 그만큼 번아웃도 심하게 찾아왔던 것 같아요. 경력 3년 차부터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줄곧 해왔는데 그 결심을 실행하는 데까지 12년이 걸렸네요. (웃음) 제가 평소 결정이 빠르고 실행력이 좋은 편인데, 그 회사를 나오는데 그렇게 오래 걸린 걸 생각하면 퇴사라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가 봐요. 돌아보면 사회적으로 기대받는 역할을 수행하는 문제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제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른바 ‘K-장녀’로서 기대받는 역할을 해내는 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픈 가족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경제력이 필요했어요. 일을 좋아했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은 저에게 인내하는 시간이기도 했던 셈이죠. 그러다 인생이 우울하다 느꼈고, 아버지와 아끼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시간을 겪으면서, ‘회사는 나의 전부가 아니다’, ‘나를 위해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결단이 섰다고나 할까요.

 

아까 일을 관두고 1년 쉬었다고 하셨는데, 쉬는 동안 무엇을 하셨나요?

일단 개명을 했어요. 오랫동안 막연히 하고 싶던 일이었는데 퇴사가 계기가 됐죠. 일상의 환경이 바뀌니까 이름을 바꿔도 될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수영을 시작했어요. 쉬면서도 시간을 때운다는 생각이 드는 게 싫었거든요. 일종의 루틴이 필요했던 거죠. 매일 아침 9시마다 일하듯이 다녔어요. 회사 다닐 때처럼 정말 근면성실했죠. (웃음) 제가 부끄러움도 많고, 예체능은 절대 못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거든요. 특히 수영은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저한테는 장벽이 높은 운동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가기도 했었고요. 지금은 어엿한 수영 중급자입니다.

 
수영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나요?

잡생각이 없어져요. 일단 숨쉬기 바빠서? (웃음) 수영장에만 들어가면 현세와 분리가 되는 기분이 들어요. 일을 마치고 피곤하니 쉴까 하다가도 꾸역꾸역 수영장에 가서 물속에 잠기면 왜 가기 싫었는지 잊게 돼요. 수영한 날은 잠도 푹 자고요. 또 다른 좋은 점은 다양한 연령대와 섞여서 강습을 받다 보니 나 하나 느린 게 대수가 아니더라고요. 기록을 낼 필요도 없고 그냥 제 페이스대로 느리게 갈 수 있는 게 좋은 거 같아요. 느리게 가도 결국 간다는 것, 물을 겁내던 제가 물에 떠 있다는 사실을 즐기고 있다는 게 좋아요.

 

개명한 이름의 의미가 궁금한데, 현재 본인 이름에 만족하시나요?

개명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불리는’ 이름을 바꾸는 거잖아요. 그래서 개명은 저보다 상대방이 바뀌어야 완성되는 문제에 가까운 것 같아요. 나를 바꾸는 건 쉽지만 남을 바꾸는 건 어렵기 때문에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특별한 계기가 저에게는 퇴사였죠. 환경이 완전 바뀌는 시기였으니까요. 사실 개명은 어릴 때부터 생각해왔는데, 늘 흐지부지하다가 팟캐스트 <송은이와 김숙의 비밀보장>을 듣게 됐어요. 마침 개명에 대한 고민 상담 사연이 올라왔고, 개명한 걸로 유명한 가수 채연 씨를 전화로 연결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람 본명이 저랑 같았어요. 그 사연을 듣고,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바꿔야 겠다!’ 는 결심이 서게 됐어요. 그 즉시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도 서부지법으로 달려가서, 제 이름 좀 바꿔 달라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써서 판사 앞으로 서류를 접수했지요. 결정이 나는 데까지 한 달 정도 걸렸네요. 그렇게 바꾼 이름은 챗GPT와 상의해서 결정했어요. (웃음) 작명소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작명소를 가봐야 어차피 남이 골라주는 이름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하잖아요? 한자는 갤 제, 기쁠 이 합쳐서 “제이”인데 어둠이 걷히고 기쁨이 찾아온다, 정도로 의미화하고 있습니다. 실은 제가 소셜 모임에서 쓰던 닉네임이기도 해서, 기존의 관계 안에서도 수용도가 높은 편이라는 장점도 크게 작용했어요.

 

사랑방에 후원을 하시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 이후로 노동권의 문제, 최근의 내란과 탄핵 정국에 이르기까지 점점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중입니다. 제가 빵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파리바게트, 던킨도너츠 같은 데를 잘 이용했는데, SPC라는 기업 때문에 더 이상 제가 좋아하던 걸 못 사 먹게 되었어요. 이게 정말 화가 나는 지점이에요. SPC 공장에서 기계에 끼어 노동자가 돌아가셨는데 다음날 그 기계 바로 옆에서 돌아가신 분의 동료가 같은 업무를 했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을 때 정말 깊이 절망했던 거 같아요. 정말 비인간적이고 끔찍하게 잔인한 세상이라고 느꼈죠. 또, 12.3 내란은 윤석열이라고 하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잖아요. 이를 보위하는 사람들, 이를 동조하는 세력의 문제고 그저 이상한 한 사람을 막지 못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트럼프도 마찬가지고요. 전쟁이 일어나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뉴노멀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뉴노멀은 저에는 마치 종말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젊은 세대에서 극우적인 사상이 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회가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너무 걱정인데 또 저의 이런 생각이 너무 꼰대처럼 느껴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제가 아무리 정의를 외쳐도 누군가가 이를 비아냥거리거나 무시하면 그만인 사회가 되어가는 느낌이에요. 그런 사회에서 스스로 확신이 없을 때, 생각이 표류하고 자기 생각에 대한 검열도 들어가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뭔가를 정확히 안다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럴 때 사랑방의 운동은 저를 덜 표류하게 하는 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방과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솔직히 사랑방이 하는 운동을 다 관심을 가지고 챙겨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웃음) 그러나 사랑방의 운동을 깊이 신뢰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방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에 저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요. 저에게 사랑방은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같은 문제도 신중하고 깊이 있게 고민하는 단체예요. 세상의 많은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저한테 그런 기준이 너무 필요한데, 사랑방 운동을 보고 확신을 얻어간달까요? 그래서 사랑방 운동과 사랑방 활동가들을 존경하고, 사랑방을 후원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만큼 사랑방 활동가들도 건강 챙기면서 활동하시고, 늘 행복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