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이후, 겨울과 봄 두 계절을 꼬박 광장에 모였던 우리는 대통령만 바꾸지 말고 세상을 바꾸자 함께 외쳤다. 윤석열이 ‘반국가세력 척결’을 운운하며 내란을 시도할 수 있었던 데는 차별과 적대를 통치의 수단으로 삼아온 정치가 있었다. 민주주의 체계 안에서 시민의 권리를 위해 쓰라고 위임받은 권력을 기성정치는 제 것인 냥 부리며 기득권을 지키고 상대를 제압하는데 써왔다. 거대양당 간 적대적 행보를 이어가면서 정치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우리 삶의 위기였다. 윤석열을 끌어내리는 것 넘어 윤석열들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자던 외침은 불평등한 한국사회에서 이미 계엄상태와 다르지 않던 위태로운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였다.
윤석열 파면 이후 집권세력이 된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빛의 혁명’, ‘K-민주주의’라 광장을 참칭할 뿐, 광장에 넘쳤던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자는 요구를 실현해 가는데 관심이 없다. ‘실용주의’와 ‘성장’을 내세우며 주식시장의 룰을 공정하게 만들 테니 모두 투자자가 되라고 부추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면서 생태적 한계를 무시한 채 AI와 반도체를 미래의 보증수표로 포장하며 산업을 키우는 데만 골몰할 뿐이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말하며 오히려 민주주의의 요구를 왜곡한다. 성평등이란 말은 되살렸지만 ‘역차별’ 조사를 지시하면서 성평등 요구를 여성과 남성이 대립하는 문제처럼 취급한다. 혐오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각종 제도적 조치를 쏟아내지만, 평등한 사회의 지향을 확인하는 차별금지법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청와대로 대통령실 이전을 앞두고 위헌결정으로 사라진 집회금지장소를 되살리는 집시법 개악으로 민주주의의 역사를 써온 집회의 권리를 가로막으려 한다. 내란청산이라는 명분으로 국가기구를 길들이는 시도를 ‘개혁’이라 이름 붙이면서 여러 비판과 우려를 뭉개고 밀어붙이는데 여념 없다.
광장에서 우리는 계엄 이전으로의 복구에 그칠 수 없는 ‘다시 만날 세계’를 함께 그렸다. 내란을 획책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무너뜨리려 한 자들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상계엄 이후 민주주의를 다시금 세워가야 할 과제는 단지 내란정당 국민의힘 규탄에 그치지 않는다. 적대정치의 토양을 함께 키우며 공론장에서 우리 삶의 요구를 밀어낸 더불어민주당의 성찰과 변화 또한 ‘완전한 내란청산’의 과제에 포함된다. 12.3 비상계엄 1년은 광장에서 우리가 요구했던 내란청산과 사회대개혁의 의미와 방향을 확인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기록기념위원회’의 이름으로 열리는 자리에 집권세력인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민주주의를 지켜낸 주인공처럼 등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멈춰서있는가를 더 직시해야 할 과제를 확인케 한다. 삶을 위태롭게 내모는 부당해고와 불안정노동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이, 우리도 인간이다, 시민이다 외치며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장애인들과 이주민들이, 광장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존엄과 평등을 이야기했던 수많은 존재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써나가고 있는 민주주의의 시간을 기억한다.
12.3 비상계엄 1년, 민주주의는 아직 당도하지 않았다. 대통령만 바꾸지 말고 세상을 바꾸자던 광장의 외침을 기억하는 우리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열망을 포기한 적이 없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기성정치에 의탁하지 않고 우리가 써나가겠다는 다짐을 다시 새긴다. 우리는 존엄과 평등을 이정표로 다시 민주주의를 세워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5년 12월 3일
인권운동사랑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