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울지 않을 방법을 찾을 것이다

"...... 무서웠어요." 아이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영화 <카운터스>에 나오는 재일조선인의 증언 장면이다. 아이가 엄마의 만류를 뿌리치고, 혐오 선동 세력에 항의하겠다며 그들의 집회에 다녀온 이야기였다. 영화는 재일조선인 혐오를 선동하는 세력에 맞서는 여러 대항행동을 보여주고 말미에 혐오표현금지법이 제정되는 반가운 소식까지 전해준다. 부산에서 열린 <한국사회 혐오표현 진단과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다녀오면서 영화를 떠올리게 된 이유다.

법이 제정된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혐오는 사라지지 않았고, 혐오를 선동하는 세력은 여전히 집회를 연다. 그러나 아이는 더이상 울지 않았다. 그는 혐오세력의 집회 맞은편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말하며 항의할 수 있게 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법 제정 이후 일본의 몇몇 도시는 혐오선동세력의 회합을 위해 공공기관의 건물을 빌려주지 않는 등의 내용을 담은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혐오에 대항하는 역할을 사회가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혐오표현의 문제를 제기하면 법제도만 검토하다가 그것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는 논의가 놓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표현 너머의 혐오를 진단해야

 

한국은 딴판이다. 반동성애 세력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여는가 하면, 성소수자 체육대회나 토론회 같은 행사는 장소가 불허된다. '일베'의 '혐오표현'이 사회를 놀라게 하고, 그것이 일부 집단에 문화적으로 공유되는 문제 이상임을 사회가 자각하게 된 지도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혐오표현이 '문제'로 다뤄지고 그것이 차별로부터 비롯되는 동시에 차별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점도 누누이 확인되지만 차별의 현실에 변화가 없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혐오표현에 대한 진단이 표현된 결과만 조명하기 때문이다. 혐오가 마치 표현의 자유와 쟁점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여성혐오를 반영하는 표현, 반동성애 적대를 선동하는 표현,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모욕하는 표현, 5.18항쟁의 왜곡하는 표현 등이 모두 '혐오'라는 주제어로 엮이다 보니 '표현'이라는 공통점만 남게 됐다. 그래서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

최근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열 대학생들이 비하와 자조를 섞어 '문과충'이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어떤 집단에 '벌레'라는 뜻의 '충'을 붙이는 수많은 신조어들에는 혐오의 감정이 배어 있다. 그러나 에이즈혐오와 비교해보자. 사람들은 에이즈를 이유로 한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웃과 같이 가까운 곳에 에이즈환자가 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차별이 혐오로 드러날 때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문과생에 '충'을 붙여도 친구 되기를 피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떠올리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여성혐오도 이와 다른 맥락에 있다.

표현을 통해 공통점을 찾을수록 문제 해결의 방향을 헛짚게 된다. 5.18항쟁 피해자에 대한 모욕과 역사왜곡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통해 진실과 정의를 이루며 대항해야 한다. 여성혐오는 성차별구조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며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갈 때 대항할 수 있다. '가짜뉴스'의 경계를 오가며 선동되는 성소수자혐오나 인종혐오, 무슬림혐오 등은 차별에 대한 감각과 인식을 높이면서 사회가 그것에 맞서기로 할 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유독 후자에 관해서는, 아무도 대항하지 않는다.

혐오표현 규제 방안을 검토하면, 해외 입법례도 있고 규제의 필요성도 있으나, 규제 위주의 접근은 한계를 가진다는 결론이 반복된다. 그래서 아무런 대응책도 찾지 못한다. 앞서 소개한 영화에서 아이가 울지 않게 된 것은, 혐오표현을 금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입법이 혐오에 함께 대항하겠다는 사회의 약속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선언이 되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혐오선동세력에 밀려 침묵에 갇혀 있는 한국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수적이다.

 

혐오를 다루는 방법을 익히기

 

'표현과 규제'라는 익숙한 접근을 내려놓고 나면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이 보인다. 혐오는 개개인의 편견과 오해를 교정‧교화하는 것으로 해소되지 않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뿌리를 갖는 현상이다. 혐오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사람들조차 벗어나기 어렵고, 어쩌면 영영 그럴 수도 있다. 혐오를 축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혐오를 잘 다룰 줄 알게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혐오의 표적이 되는 집단 구성원들은, 영화에 등장했던 아이가 고백했듯 무서움과 무력감을 경험한다. 혐오선동세력의 주장이 진짜냐 가짜냐, 그들의 태도가 공격적이냐 유화적이냐('동성애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탈동성애를 도우려는 것'이라는 주장 같은) 등은 중요하지 않다. 무서움과 무력감은 혐오선동세력보다 그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아무도 표적 집단의 편에 서지 않으며, 그래서 말이 칼이 되어도 아무도 개의치 않을 것이라는, 즉 나와 우리의 존재는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감각이야말로 두려움의 원인이 된다. 반복되는 증오범죄를 겪은 나라들에서 '대항적 말하기(counter-speech)'가 강조되는 이유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사회가 혐오를 다룰 줄 모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5.18항쟁 희생자와 피해자에 대한 모욕에 사회는 함께 맞섰다. 학자들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썼고 시민사회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힘쓰고 있으며 정부와 국회에서도 역사왜곡을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5.18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시선으로 함께 쓰고 만들어가겠다는 약속이야말로 혐오를 무력화하는 강력한 실천이 된다.

성소수자나 난민, 무슬림을 향한 혐오를 다루기 위해서도 같은 실천이 필요하다. 소수자를 향한 모욕과 사회적 배제에 함께 맞서야 한다. 학자들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더 많이 말해야 하고 시민사회는 이들의 편에 함께 하는 더욱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부와 국회의 중요성은 두말할 것 없다. 제도권의 침묵과 회피야말로 혐오의 가장 큰 자양분이 되고 있음을 각성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논란' 때문에 어렵다는 핑계, '나중에'라는 전략 아닌 전략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혐오를 편 들게 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표현만 문제 삼으면 혐오는 자유로워진다. 누군가 증오를 선동하는 것까지 표현의 자유로 보장되지도 않지만, 표현이 사라지는 것으로 혐오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혐오가 표현된 결과로서의 혐오표현보다 혐오를 표현하는 행위로서의 혐오표현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행위로서의 혐오표현은 적대를 방치하고 차별을 묵인하는 행위와 연결되어 있다. 혐오에 맞서기 위해서는 커뮤니티의 대항 행동이 중요하다. "Act!" <혐오와 싸우는 열 가지 방법-커뮤니티 문제 해결 가이드>(Souther Poverty Law Center, 미국)에 제시된 첫 번째 제안이다. 무언가 하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혐오는 지속될 것이므로.

 

대항하라! 행동하라!

 

혐오는 나쁘다. 그러나 혐오가 나쁘다는 지적으로 세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반동성애 세력이 "우리는 혐오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말합니다."라고 하는 정도가 변화라면 모를까. 오히려 혐오가 일부 집단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모두 연루되어 있는 문제임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다르게 말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논란을 유발하려는 혐오세력과 논쟁하기보다 실제로 중요한 과제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한다.

얼마 전 자유한국당은 퀴어문화축제를 문제 삼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시비의 대상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스스로 입을 닫았다. 문제는 퀴어문화축제가 아니라 그것을 문제 삼는 자유한국당의 수준이라고 말해야 한다. '동성애'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라는 자유한국당의 주장 자체가 논쟁할 가치가 없다는 점을 짚어줘야 한다. 퀴어문화축제가 더욱 자유롭고 안전하게 열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과제이며, 이와 같은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이 긴요하다고 밝혀야 한다. 이렇게 되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보는 것은 집권여당의 몫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혐오 규탄을 넘어 실질적 변화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혐오가 반복될 때 규탄만 반복하는 굴레를 벗어나자는 취지다. 그 첫 번째 도전으로, 집회 등에서 혐오선동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고 있다. '대항적 말하기'의 의의를 과장하지 않되 우리가 스스로 대항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살피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 위한 작업이다. 오랫동안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해 힘써 온 '공권력감시대응팀'과 함께 하는 작업이라 더욱 든든하다. 아마도 우리는, 더 이상 울지 않을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