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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10,729명이 선언한다! 차별금지법을 국정과제로!

지난 5월 말 대선이 시작되기 전부터 대선을 마친 6월 14일까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새정부 국정과제로 삼으라는 1만인 서명을 진행했습니다. 특이하게 대선 전부터 시작해서 대선이 끝나고 한참 뒤까지 서언 참여자를 모으는 방식으로 기간을 설정한 것인데요. 어떤 대통령 후보라도,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더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시민의 의지를 모아내고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서명에 참여한 10,729명의 시민들도 그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것 같습니다.

 

사회를 퇴행시키는 흐름은 진행형

새정부가 들어서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 게 필요할까 고민했을 때 바로 떠올린 것은 국정과제였습니다. 한국 사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차별금지’라는 인권 원칙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보수 정권에 속하는 박근혜 정부조차 형식적일지언정 차별금지법을 국정과제로는 설정했으니까요. 그 이전에 이명박 정부에서는 차별금지법 추진을 위한 체계를 법부무 산하에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부 차원의 노력을 삭제한 대통령은 문재인입니다. 2017년 촛불 광장 덕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데요, 사회적 합의를 핑계 대며 보수개신교 세력에 굴복하고 차별금지법을 공약에서도, 국정과제에서도 포함시키지 않았죠.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서 윤석열 대통령도 손쉽게 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를 확산시키면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책임 방기를 정치적 입장처럼 떠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를 용인하며 침묵하는 국가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서서히 침식시켜왔는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집단을 방치해 온 결과가 무엇인지를 윤석열 정권에서 극우 세력의 결집이라는 결과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사회를 퇴행시킨다고 우리가 그런 사회에서 계속 살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결국 윤석열 탄핵 광장에서 차별금지법 하나 없는 나라에서 못살겠다는 외침은 낯선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광장의 시민이 바라는 사회대개혁’의 과제로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바로 ‘차별금지·성평등·인권·소수자권리’(25.9%)였습니다. 그럼에도 광장 시민의 덕을 두 번이나 보면서 정권 교체와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은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후보 시절 대선 토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방향은 맞다면서도 갈등을 심화시켜 새롭게 할 일을 못 하게 만들기 때문에 추진이 어렵다는 인식을 다시 드러냈습니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정치의 등장을 바라며 윤석열을 끌어 내린 시민들의 바람을 다시 밀어낸 것입니다. 퇴행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재명과 민주당의 태도를 묵과할 수 없는 1만 명의 시민들은 차별금지법을 국정과제로 삼으라는 요구에 함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1만 인의 목소리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재명 대통령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의 방향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새롭게 들어선 이재명 정부에 필요한 것은 정치적 결단입니다. 더는 정치가 극우 세력에 굴복하는 무능을 사회적 합의 부족이라고 핑계 대지 않고, 직접 구체적인 제정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0,729명의 선언에 담긴 의지를 모아 6월 17일 용산 대통령실 앞으로 모였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새정국 국정과제로 요구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기자회견

당일 기자회견에는 차별금지법의 요구가 왜 필요한지 다양한 단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김태환 님(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은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강해야만 하고, 각종 폭력에 침묵해야만 하며, 돌봄을 타인의 일로 여기게 만든 이 사회에서 남성들 또한 주어진 역할에 갇혀왔”다고 말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남성도) 폭력의 언어가 아닌 돌봄과 연대의 감각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혜정 님(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역시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말하며 “한국 사회에서 이주여성들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차별을 경험”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외국인 유학생, 결혼이민자 가족, 외국인 근로자의 배우자에게 저임금 노동 착취와 차별을 정당화” 하는 서울시와 법무부의 시도를 규탄했습니다. 아직도 고공에서 농성 중인 박정혜 님(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은 “차별금지법은 더 이상 소수자의 문제가 아님”을 언급하며 “이제는 우리 모두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서 차별금지법의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구미에서 목소리로 전해주셨습니다. 최선혜 님(한국여성의전화)은 여성 폭력 문제가 “성차별, 여성혐오 등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뿌리 깊게 내린 차별, 혐오와 그 맥을 함께 한다”고 말하며 “차별금지법은 이를 근절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법”이라 말했습니다. 우정 님(이화생활도서관)은 젠더퀴어를 비가시화 하는 여자대학의 현실을 지적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이런 차별적 세계에서 인식을 바꿔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한희 님(무지개행동)은 “혐오와 차별에 대한 단호한 대처 없이는 극우의 준동을 막지 못한다”며 성소수자 시민의 지지에 차별금지법으로 응답하기를 촉구하였습니다. 다양한 자리, 서로 다른 현장에서 너무나도 절실하게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를 공통으로 나눈 이번 기자회견은 차별금지법이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 즉 민생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키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실에 10,729명의 서명을 전달하는 모습

 

차별금지법이라는 민생

1만인 서명을 받기 위해 일주일 동안 거리 선전전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누군가는 반갑게 와서 서명하고 동행인이 서명하도록 권유도 합니다. 또, 누군가는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주춤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서명에 참여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중 제가 가장 아쉬운 마음으로 지나 보냈던 분들은 서명 받는 저와 눈을 마주치며 지지의 눈빛을 보내지만 참여하지 못한 분들이었습니다. 짐작컨대 직장의 동료들과 지나가는 길이라 참여하지 못해 아쉬운 듯한 제스처만 보낸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런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거든요. 물론 대화를 나누어 본 것이 아니라 말씀드린 대로 저만의 짐작입니다. 하지만 그런 눈빛들을 마주치다 보면 ‘이게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인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의견이든 지향이든 정체성이든 그게 무엇이든 드러내도 차별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더 자신을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더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나를 위협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광장을 채우고, 정권을 교체하는 힘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새 정권은 이 기대를 외면하고 아직도 차별금지법은 민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권 아래서 다시 5년을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이번 정권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하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1만인 서명으로 새정부에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행보에 나섰으니, 사랑방 후원인 여러분들도 앞으로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더 많은 관심과 힘 보태어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