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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불 탄 공장에도 봄이 올 때까지

옵티칼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며

지난 4월 26일, 전국에서 출발한 수십 대의 버스가 경북 구미로 모여들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옵티칼)의 불 탄 공장을 지키며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고용승계로 가는 옵티칼 희망버스’가 다다른 그곳에는 어느덧 500일을 앞두며 최장 고공농성이라는 슬픈 기록을 쓰고 있는 박정혜와 소현숙, 그리고 이들을 지키며 지상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배현석, 이지영, 이희은, 정나영, 최현환이 있었다. 이들은 불 탄 공장을 핑계로 정리해고한 회사에게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투쟁을 하고 있다.

 

“노동자는 쓰다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옵티칼 구미공장의 노동자들은 LCD(액정표시장치)의 핵심 부품인 편광필름을 만들어왔다. 원재료를 규격에 맞게 재단하고, 미세한 불량을 잡아내는 등의 작업을 12시간씩 2교대로 꼬박 10년, 20년을 해왔다. 2022년 10월 4일, 공장이 화재로 전소했다. 하루 사이에 일터가 사라진 노동자들에게 회사는 공장 재가동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한 달만 기다려달라 했다. 그러나 한 달 뒤 회사는 본사인 닛토덴코가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며 위로금을 받고 나가라 하고, 이를 거부한 노동자들에게는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소현숙 씨의 말대로 “노동자가 소중한 인적 자원이라던 닛토덴코는 노동자를 물건 버리듯 길거리로 내몰았”다. 어떠한 미안함, 책임감도 보이지 않는 회사의 태도에 배신감과 서글픔을 느끼며 7명의 해고노동자들은 2022년 11월 4일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옵티칼 노동자들은 일회성 보상이 아니라 평생 해왔던 일을 오랜 세월 함께해온 동료들과 이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을 회사에 요구했다. 방법이 있다. 우선 화재 보험금으로 받은 1300억 원으로 충분히 공장을 재가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닛토덴코는 사업 청산을 결정하며 200여 명의 노동자들 삶을 내팽개쳤다. 그러면서도 물량은 포기하지 않았다. 닛토덴코는 본인의 또 다른 자회사인 한국니토옵티칼(이하 니토옵티칼) 평택공장으로 그간 구미공장에서 생산해온 물량을 이전시켰다. 물량이 늘어난 만큼 일손이 필요한 상황이니 노동자들은 ‘고용승계’를 요구했지만, 닛토덴코는 둘이 별개 법인이라 법적 의무가 없다며 외면했다. 그런 와중에 평택공장에서 156명의 신규 인력이 채용된 사실이 밝혀졌다(2025년 3월 기준).

구미 옵티칼과 평택 니토옵티칼 두 곳 모두 본사인 닛토덴코의 관리 아래 실질적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점에서, 고용승계는 닛토덴코의 결단에 달려있다. 고용승계가 불가능하거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기에 중앙노동위에서 노사 간 화해를 권고하기도 했지만, 회사는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부당해고를 다투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사업 청산을 결정하고 공장 철거를 시도했다. 2024년 1월 8일, 철거를 막기 위해 오른 옥상에서 불 탄 공장을 지키며 계절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막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노동자들에게 압박을 가하면서도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에는 무시로 일관하는 회사에 맞서, 노동자들은 지금도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자본에 면죄부를 쥐여주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분명히 명분도 방법도 있음에도 옵티칼 노동자들이 이토록 일터로 돌아가기 어려운 데는, 자본에 무책임을 허용한 정치의 책임이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을 이유로 온갖 세제와 입지 혜택을 제공하며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이를 성과로 내세워 왔다. 옵티칼도 2003년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공장을 설립하며 50년 토지 무상임대, 법인세와 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았다. 기업 운영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경쟁적으로 해외자본을 유치함에 따라 많은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에 노동자들이 고용되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일자리 ‘중개자’ 역할을 했던 정부와 지자체는 정작 해외자본의 일방적 철수로 인해 노동자들이 겪는 피해에 대해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아왔다. 자본에 책임을 묻는 데 한없이 소극적인 법제도, 그리고 정치라는 조건 속에서 산켄전기의 한국산연, 덴소의 한국와이퍼 등 노동자들의 해고 사태가 반복되어 왔다. 닛토덴코 역시 이러한 구조 위에서 구미 공장과 평택 공장을 서로 다른 법인으로 운영하며 이윤은 극대화하고 고용 부담은 지지 않을 수 있었다.

국회에도 책임이 있긴 매한가지다. 옵티칼 노동자들과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희망뚜벅이’를 구미에서 서울까지 이어온 김진숙 지도위원은 올해 3월 7일 우원식 국회의장과의 2차 면담에서 “참담한 고공농성 기록 경신”의 책임을 국회에 물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가 부당해고 복직투쟁의 주체였던 2011년 한진중공업 고공농성 희망버스 당시 국회의 행보에 비해, 지금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기업인 닛토덴코를 상대로 해야 하는 옵티칼 투쟁에 있어 국경을 넘나드는 교섭의 장이 열려야 하는 상황이기에 국회의 적극적인 중재와 행보가 긴요하다. 그러나 국회는 닛토덴코 본사와 대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나서겠다고 하면서 질의나 서한 전달 이상의 대응에는 미흡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자의 권리를 언제나 뒷전으로 여기는 국가의 태도다. 옵티칼 노동자들에게 문제 해결을 약속하면서 동시에 국회에서는 기업과 자본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입법을 우선하고 있다.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의 투쟁을 왜곡하며 탄압하는 움직임도 여전하다. 법원은 옵티칼 노동자들이 공장을 지키며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아랑곳 않고 사측의 편에서 공장 철거 방해금지 판결을 내렸고, 이 때문에 하루 950만 원의 간접강제금이 쌓이고 있다. 

그간 자본의 유치에만 몰두하고 노동자의 피해는 외면해온 정치의 무책임 위에 옵티칼 투쟁이 놓여있다. 자본의 책임을 분명히 따져물어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정치를 요구하며 ‘니토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대책이 함께 제안되고 있다. 외투기업 유치에만 초점을 두어온 ‘외국인투자촉진법’은 고용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기업의 부당행위가 있는 경우 혜택을 환수하며 재친출 시 제재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요구되고 있다. 그간 법제도적 한계로 짚어져온 것들의 변화도 물론 필요하지만, 자본에 책임을 묻는 정치의 시작은 무엇보다도 옵티칼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실현하는 일일 테다. 국가는 닛토덴코에 대한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압박하며 실질적인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 정치가 끝까지 자본의 책임을 묻는다면, 지금 옵티칼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무책임의 구조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거다. 

 

불 탄 공장에도 봄이 올 때까지

옵티칼 희망버스에 함께하며 마주했던 공장 옥상은 생각한 것보다 낮았다. 이날의 희망버스는 금방이라도 가닿을 수 있을듯한 이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현실을 우리가 ‘희망’이 되어 바꿔내자는 약속의 시간이었다. 다 펼친 깃대 끝에 박정혜와 소현숙의 손이 닿으며, 희망버스 탑승객들이 공장 벽면에 붙이고 있던 꽃 스티커가 전해졌을 때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기어코 고공농성 500일이 되기 전에는 함께 봄을 맞이하자는 약속이 그 장소를 가득 채웠다. 다음 날 새벽, 건강 악화로 소현숙이 고공농성을 중단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너무나도 길어진 투쟁으로 약해진 노동자의 몸은 아직 봄이 아득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곧바로 ‘우리가 싸움을 이어갈 테니 걱정 말고 회복하라’는 응원과 연대의 말이 이어졌다. 불 탄 공장을 지키는 이들의 싸움은 옵티칼 노동자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고공과 그 아래에서 함께 싸우는 노동자들이 함께 봄을 맞이하는 과제 역시 우리 몫으로 남아있다. 

이보다 앞서 고공농성이 300일을 맞이했을 때, ‘옵티칼로 가는 연대버스’ 자리에서는 해고노동자들이 ‘노동의 꿈’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흘린 땀이 누군가의 이윤이 아닌 내 꿈의 방향으로 가기를”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이들의 고용승계 투쟁은 수십 년간 공장을 채웠던 노동자들의 땀, 관계, 젊음, 희망을 기억하며 존엄을 지키려는 투쟁이기도 하다. 그 위에서 우리는 책임을 회피하는 자본, 책임을 묻지 않는 정치에 맞서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테다. 그 길에 함께하자. 이들이 이겨 마침내 땅을 딛는 봄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