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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인권활동가가 참여한 인권옹호자 회의

지난 6월 말 2박 3일 일정으로 국가인권위와 인권재단 사람이 주최한 ‘2023 인권옹호자 회의’에 다녀왔다. ‘인권옹호자 회의’는 2018년부터 국가인권위가 개최해오던 행사였다. 인권업무 담당 공무원, 지자체 인권위원 등이 참석해 인권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올해는 ‘인권재단 사람’과 공동주최를 하게 되면서 인권위 직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인권활동가들도 다수 참석하는 자리가 되었다. 

 

구술로 듣는 인권이야기, 제주 그리고 기후위기

이전 사랑방 활동가이기도 했던 인권기록센터 사이의 유해정 님이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면서 ‘인권’에 새롭게 눈뜬 한국의 인권활동가들의 이야기부터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국가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노역생활을 해야 했던 서산개척단의 비극적 경험, 세월호 참사 이후 팽목항을 지키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각자의 이야기들까지 그동안 만나왔던 이들이 온몸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인권운동이 귀 기울이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이 무엇이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행사가 제주에서 열리는 만큼 제주의 인권현안과 고민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도 열렸다. 여러 지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지자체 인권조례 제정과 관련된 여러 어려움들부터 ‘예멘 난민’ 대거 입도 이후 제주 사회가 경험했던 이주민들과의 관계, 현재 진행형인 4.3에 대한 기억투쟁까지 여러 고민들을 던져주는 자리였다. 특히 4.3은 최근 극우세력들이 당시의 학살을 정당화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었다. 숙소 바로 옆에 있는 ‘4.3 기념관’에는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백비’가 누워 있다. 4.3이 항쟁, 폭동, 학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 채, 여전히 자기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비석이다. 백비는 해방 이후 국가 건립을 둘러싸고 치열한 투쟁이 벌어졌던 한복판에서 일어났던 ‘4.3’에 대해서 한국사회가 여전히 역사적-사회적 기억을 만들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기후위기, 차별대응, 인권교육, 지역인권을 주제로 한 현안별 모임자리도 열렸다. 사실 나는 사랑방 활동가로 참여요청을 받은 게 아니라, ‘기후위기’ 세션을 발표요청을 받은 ‘기후정의동맹’ 활동가로 참가했다. 주최 측의 무리한 배치로 참가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활동가들이 현재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동시에 이런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바꿔갈 수 있을지에 대한 막막함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후정의동맹이 출범한 지 불과 1년 남짓이지만 그동안 기후위기를 겪는 우리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할지 힘차게 외쳐왔다. 기후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이자 실패라는 것, 기후정의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우리의 중요한 원칙이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바로 그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활동과 대중적 요구들을 만들어가야 할 때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 자리였다.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과 함께 보낸 2박 3일

인권활동가와 인권옹호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글자 그대로 ‘인권’이 아니라 ‘활동가’와 ‘옹호자’의 차이다. 인권담당 공무원과 인권위원 등이 참석하던 대회가 ‘활동가대회’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권활동가는 인권운동이라는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이다. 지금 사회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정부나 기업과는 독립적인 ‘사회운동’ 말이다. 이 힘으로 정부와 기업을 압박하고 종국에는 체제라는 구조를 바꿔내어,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힘이자 관계인 ‘인권’을 만들어내는 게 인권활동가가 바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년 열렸던 ‘인권활동가대회’와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음에도, 40여 명의 인권위 직원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은 여전히 어색했다. 인권위 직원들이 인권현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활동가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고민들을 알게 되는 것은 ‘직원 개인’들에게는 유익한 경험일 수 있다. 바라보는 곳이 동일하다면 협력관계를 만들어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인권위는 인권운동이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동시에 비판하고 견제해야 하는 ‘국가기관’이기도 하다. 인권위가 공동주최자로 행사 전반을 책임졌던 ‘인권옹호자 회의’가 ‘인권활동가대회’가 될 수는 없는 이유다. ‘인권활동가대회’는 ‘사회운동’으로서 ‘인권운동’이 만들어야 할 전망과 과제를 함께 궁리하고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분명 ‘인권활동가대회’에 다녀온 느낌인데도 가시지 않았던 어색함의 이유는 바로 ‘인권옹호자 회의’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