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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노동을 자신의 장소로 삼는 사회운동의 흐름을 만들어야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 모임(길내는모임)’은 분기마다 쟁점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사회운동에서 충분히 짚지 못한 채 당장 대응해야 할 과제들에 떠밀려 넘어가게 되는 쟁점들을 꺼내 토론해보자는 취지다. 첫 주제로,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반대를 넘어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 토론해보기로 했다. <사회운동 장소로서의 노동>이라는 제목을 걸고. 

 

새로운 권리체계가 필요하다

첫 발제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활동가가 맡았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여러 곳에서 비판되고 있다. ‘69시간’이라는 공세는 장시간 노동을 우선 걱정하게 하지만, 초단시간 노동자와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사업장의 노동자들까지 살피면 문제의 핵심은 극단적 노동시간 유연화다. 정부는 노동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가지는 주권 자체를 부정하려 들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규범 현대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루려는 목표다.

그러나 현대화라 부르건 뭐라 부르건 노동자의 저항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것을 노동자 착취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간 경쟁의 문제로 만든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꾸준히 언급하며 정부는 더 열악한 노동자의 편에서,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노동조합에 맞서는 위치에 자신을 놓는다.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은 전방위적인데 ‘법치’를 확립하겠다며 공정거래나 채용질서 같은 것까지 끌고 들어오는 특징도 보인다. 물론 정부가 내세운 정책 중 노조 밖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효과를 목표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질 낮은 일자리로 노동자를 밀어넣기 위해 고심한다.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은 실업급여를 축소하는 대신 기업에 인력을 원활히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주노동자를 더 많이 불러와 더 오래 일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고용허가제 개편안도 추진 중이다. 권리 없는 일자리에 더 많은 사람들을 가두는 것이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추진되는 맥락을 더 살필 필요가 있다. 자본은 이미 근대적 노동규범을 상당한 정도로 무너뜨려왔다. 제조업 사내하청 같은 꼼수도 부리지만 플랫폼노동과 같이 새로운 노동의 장소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노동시간과 장소, 임금 등의 근로계약에서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거나 노동조합이 교섭할 수 있게 하는 노동법질서는 이미 수많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미끄러져왔다. 여기에서 윤석열 정부는 ‘노동규범 현대화’라는 구호로 그나마 유지되던 노동법질서를 파괴하고 전혀 다른 원리로 질서를 세우려는 것이다. 이때 사회운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노동자의 존엄을 지키려는 투쟁의 역사는 노동법체계를 확립해왔다. 이러한 권리 보호를 확장하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기존 법체계가 유일한 권리보장 체계라는 가정도 버릴 필요가 있다. 하나의 사업장에서 근속계약을 통해 지위를 보장받는 ‘노동자’의 형상은 너무 많은 노동자들을 대표하기 어렵다. 우리는 노동자의 ‘권리’도 다시 써야 하지만 세계를 재생산하는 거대한 협업에서 배제되어 온 ‘노동’도 다시 써야 한다. 이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가 아니라, “노동을 새로 인식하고 그 권리체계를 세우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필요하다.

 

사회운동에 ‘노동’은 어떻게 있는가

두번째 발제는 플랫폼C 홍명교 활동가가 맡았다. 그간 사회운동(노동조합운동 밖의 사회운동이라는 좁은 의미로 사용)에서 노동은 또 다른 부문의 문제로 다뤄졌다. 노동운동 역시 사회운동의 여러 의제를 또 다른 부문의 문제로 여긴다. 이런 조건에서 세대, 젠더, 인종 등을 따라 노동에 대한 분할통치는 더욱 손쉽게 이루어진다. ‘노동’의 문제와 ‘차별’의 문제는 서로 다른 영역에 할당된다. 이때 사회운동이 노동을 자신의 장소로 삼는다는 것은 어떤 실마리를 던져줄까.

‘세대’는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우리 사회의 대표적 갈등 영역으로 등장했다. 윤석열 정부는 ‘MZ노조’를 강조하며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노동운동 안에서는 고임금의 정규직 노동자와 사회적 자원이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 간 갈등으로 드러난다면, 노동운동 밖에서는 ‘청년’ 정책과 청년층의 ‘혐오’ 등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런 현실을 종합적으로 살피며 유의미한 적대를 형성하는 정치적 과정이 필요하다. 사회운동은 기존의 조직 바깥에서 존엄과 권리를 찾기 위한 개별적 노력들이 연결되고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때 ‘세대’를 볼 것이 아니라 ‘세대’를 통해 무엇이 드러나는지 봐야 한다.

페미니즘은 최근 한국사회를 흔드는 중요한 힘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여전히 여성의 모습이 아니고, 여성의 형상은 노동자가 아니다. 성별임금격차는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내리는 효과를 낳지만 ‘여성이 덜 받는’ 문제로만 이해되고, 직장에서의 성적 괴롭힘과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한 불이익은 노동자가 안전하고 자유롭게 일할 권리라는 맥락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사회운동은 페미니즘 운동 자체를 강화하는 실천과 동시에 그것이 일하는 사람의 권리와 연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언제나 불안정노동을 먼저 겪은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도 페미니즘은 새로운 권리체계를 만들어가는 데 필수적이다.

윤석열은 후보 시절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류의 발언으로 저급한 인식 수준을 드러낸 바 있다. 그 정부에서 이주노동자의 취업 업종이나 쿼터를 늘리는 이유는 뻔하다. 임금이 낮거나 위험해 회피되는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로 채워서 어떻게든 기업이 굴러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논란은 재생산노동이 불가능한 노동현실과 성차별구조를 바꾸는 대신 타자화된 이주-여성에게 그 짐을 떠넘기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교차성에 주목하는 실천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변화하는 노동체제의 문제는 ‘노동’이 아닌 다른 문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노동의 문제가 여성, 이주민, 청년 등의 모습으로 등장할 때 그것은 소수자 의제에 할당되어 왔다. 노동의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은 노동조합의 장소이기만 할 수는 없다. 노동조합의 안팎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권리체계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생태적 시야에서 우리의 삶을 재생산하는 노동을 사회적으로 조직할 기획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만들어야 할 계급투쟁이다.

 

노동이라는 장소에서 우리가 만날 때

토론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온 고민을 나눠주었다.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활동가는 전통적인 조직운동이 미끄러지는 자리에서 운동이 상품화되는 현상을 짚었다. 사회운동이 노동을 자신의 장소로 삼을 때 이슈를 던지고 성과를 개별화하는 데 멈추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배달노동자가 조직되기 어려운 이유는 많지만 동시에 누구나 서로의 존엄을 챙기고 돌볼 수 있는 관계를 바란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몽 활동가는 차별금지법이 다루는 주요 영역이 고용이고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주요 세력이 경총이라는 점에서도 차별금지법제정운동에 ‘노동’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벌였던 활동들을 소개하며, ‘정체성’ 정치보다 정체성의 ‘정치’를 작동시키며 현장을 조직할 필요를 말했다. 이를 위해서 이미 서로를 넘나들며 새로운 권리체계를 만들어가려던 도전을 알아봐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민주노총 곽이경 활동가는 노동자를 개별화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초단시간 노동자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모이고 싸우며 교섭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투쟁하는 자리에서 권리체계는 계속 갱신될 것이다. 노동이라는 장소에서 서로를 가로지르는 과정은 곤란함을 낳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부딪힘을 포기하지 않을 때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장귀연 활동가는 먼저 ‘위기’를 통해 사회운동의 과제를 찾는 방식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했다. 근대성이 무너지는 과정은 대안운동의 건설 과정이기도 할 텐데 이때 기존의 노동법체계에 갇힐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법제도를 만드는 과제와 다른, 운동의 과제다. 이때 자본의 책임성을 강화하라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덧붙였다.

 

권리체계를 세워갈 새로운 사회운동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의 문제점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 하나하나를 비판하면서 그래도 민주당 정부가 나았다거나, 어차피 연속선상에 있는 정책이 더욱 노골적이고 공격적으로 추진될 뿐이라고 짚는 데서 그친다면 우리는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될 뿐이다. 집권세력이 달라진다고 노동탄압 양상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면 우리가 뭔가 근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시혜나 양보와 다른, 노동자의 권리를 세우는 일을 기존의 노동법체계에 기대는 데서 멈췄기 때문은 아닐까.

쟁점토론회는 현안을 직접 다루며 과제를 도출하는 토론을 펼친 것이 아니라 조금 막막하고 어렵기도 했다. 기존의 노동법체계를 넘어선 새로운 권리체계를 모색할 필요성이나 서로를 가로지르는 다른 운동의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것도 아니다.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당면한 투쟁에 집중하다 보면 무언가 변화시키고도 같은 자리에 있는 상황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법제도에 앞서 우리의 존엄과 권리를 세울 땅을 다져야 할 때, 그곳에서 노동이 어떻게 구성되고 조직되는지 살피는 일을 미룰 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함께 보며 싸우고 있는지 기억할 때 사회운동의 실천은 다른 길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양회동 열사 공동행동’이 구성되었다. 작년 화물연대에 이어 올해 건설노조를 지목하는 윤석열 정부의 탄압에 맞서는 일이 노동조합운동의 몫일 수만은 없다는 의지가 모였다. 그런데 약칭을 풀어쓰면 ‘양회동 열사 투쟁 노동시민사회종교문화단체 공동행동’이라는 긴 이름이다. 어쩌면 이 명칭이 지금 사회운동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노동도 시민도 사회도 종교도 문화도 서로를 포괄하는 이름이 되지 못하고 쪼개져있는 현실. 사회운동 장소로서 노동을 주목하는 것은 사회운동 스스로를 갱신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제인 듯하다.

 

 


토론회 자료집은 사랑방 자료실(클릭!)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