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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당사자와 함께 오래 운동하기 위한 말과 속도를 고민하는

형진 님을 만났어요

“기후위기를 둘러싼 담론틀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억지로 욱여넣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우리의 운동이 곧 기후운동이라고 선언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지난 3월 말에 열렸던 <기후정의포럼>에서 형진 님의 토론문이 제 마음에 유달리 남은 이유는, 멀게만 느껴지는 운동과 당사자의 구체적인 일상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해온 그의 분투가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이번 후원인 인터뷰에는 형진 님을 모셔보았습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2018년부터 <홈리스행동>에서 상임 활동을 하는 형진이라고 합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홈리스 당사자분들과 함께 빈곤 현장에 밀착해서 움직이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먼저 ‘홈리스 인권 지킴이’를 소개하자면, 매주 거리 현장으로 직접 가서 당사자분들에게 상담이나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는 동시에 인권 침해를 감시하는 활동이에요. 실제로 저희 대응 활동 대부분이 현장에서 만난 당사자분들의 제보나 피해 호소에서 비롯돼요. 그렇게 서로 얼굴을 익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함께 움직이는 데까지 나아가기도 해요. 매년 봄과 가을에 여기 아랫마을에서 열리는 ‘홈리스야학’도 당사자분들이 모이는 일종의 거점으로 역할하는 게 커요.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배움을 해결하기도 하고, 빈곤의 문제를 권리의 관점에서 함께 이야기해보는 장소인 거죠.

당사자분들이 수급신청 같은 걸 할 때 행정관서에 ‘동행’하는 활동도 있어요. 핸드폰이 없거나 인터넷 접근이 힘들면 자신을 위한 복지 제도나 시스템이 무엇인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신청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기부터가 어렵잖아요. 그러다 보니 당사자분들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없어지는 거죠. 또 주민센터나 서비스 기관의 직원으로부터 부당한 이유로 지원을 거절당하거나 차별적인 발언을 듣고 모욕감을 느끼게 되는 일도 많이 있어요. 활동 초기에는 이런 지원 활동이 부수적인 거라고 잠시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당사자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함께 직면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과정 자체가 홈리스행동 활동가의 중요한 역할이다 싶어요.

형진은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일단 홈리스행동에서 매달 발행하고 있는 <홈리스뉴스>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사를 준비하고, 직접 배포하기도 해요. 당사자분들에게 홈리스 관련한 이슈들을 잘 전하고, 나아가서는 당사자의 여론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2020년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사태 관련한 대응 활동도 해왔어요. 아시겠지만 홈리스 관련한 거의 모든 영역, 뭐 의료나 급식, 주거, 일자리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잖아요. 가령, 홈리스는 의료급여를 받기 위해선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공공병원만 이용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처럼 기능하게 되면서 아파도 적절한 진료를 받기가 힘들어진 거죠. 대부분 민간·종교기관 주도로 운영되던 무료 급식소들이 우후죽순으로 문을 닫기도 했고요. 또, 정부 주도의 ‘코로나19 극복 희망일자리사업’에서 배제된 걸로도 모자라 기존의 홈리스 대상 공공일자리 조건까지 악화되는 일도 있었죠.

저는 이게 코로나19 때문에 새롭게 생긴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당사자분들에게 어려움이 증폭된 건 사실이겠지만, 진짜 책임은 코로나19 이전에 설계되었던 홈리스 정책이나 지원체계의 기조에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도 된다는 차별적인 인식이 당사자분들의 삶의 조건들에 꾸준히 영향을 미쳐온 거죠.

주거를 예로 들자면, 고시원이나 쪽방처럼 자가격리를 절대 할 수 없는 공간에서는 정부가 말하는 최소한의 방역 수칙조차 지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애초에 감염병에 적절히 대처하기 힘든 열악한 상황인 거죠. 저희가 코로나 이전부터 계속해서 비판하면서 개선을 요구했던 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정책간담회 같은 걸 아무리 해도 이런 문제 제기를 인정하는 제스처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지금은 다시 또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흐름이에요. 어쨌거나 최근 2-3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개선되는 게 하나도 없는 느낌이 들죠. 여전히 홈리스 복지는 시설 중심으로 논의되는 면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이전 방식을 오히려 강화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겠고요. 그래서 내년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 많은 상황이에요.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최근에는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이 꾸려졌잖아요.

임대주택이 홈리스 당사자분들에게 고질적인 문제이고, 그 핵심은 항상 ‘공급량’이었어요. 저는 이 공공임대주택이 주거권을 보장하면서 주거 불평등을 조정하는 중요한 공공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거복지의 근간이라고 보거든요. 그런데도 여전히 공급에 있어서 굉장히 인색한 거죠.

배분에 있어도 마찬가지인 게, 신청하고도 거의 1-2년을 기다려야 하거든요. 애초에 공급량이 넉넉하지 않은 탓에 여러 자격조건을 달아놓고선 사람들을 줄 세우니까요. 그때까지 당사자분들은 여전히 집다운 집이 아닌 곳에 머물러야 하는 거죠. 저번에 ‘1017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 때 어떤 당사자분이 발언하시면서 이런 표현을 쓰셨거든요. “기다리는 이 늙어 죽겠다.” 그게 진짜… 어떤 마음인지 너무 와닿더라고요.

지금 정권이 겉으로는 계속 ‘약자복지’를 강조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 내용이 적정 주거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냐 했을 땐 전혀 아니거든요. 결국에는 행정 권력이 상상하는 ‘약자’는 그네들의 정책 홍보를 위한 도구로 쓰일 뿐인 거죠. 삶의 조건이나 필요를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는 무관하게요.

가령, 주거 불평등 관한 정책 공약에서 거주민이 적정 거처로 빨리 이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 내세운 게 고작 융자 지원이잖아요. 또 종합부동산세를 깎아주는 걸 ‘적정화’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던데, 저는 이게 ‘주거 불평등 심화’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말을 참... 문제없어 보이게 잘 지어낸다 싶어요. 그걸 또 양당들이 통과시키는 걸 보면, 집이 투기 대상이 되고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는 현실에는 조금의 문제의식도 없는 것 같고요. ‘비정상’ 거처라는 이상한 표현도 자주 쓰던데,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짓이라고 생각해요. 뭐 정책적으로 그렇게 규정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

사랑방에서도 #내놔라공공임대 손바닥 챌린지에 참여했는데요, 저는 이 ‘내놔라’라는 표현이 특히 인상 깊더라고요.

실제로 저희 주거권 집회에서는 자주 쓰는 표현이에요. 좋은 집 내놔, 집다운 집 내놔. 전 이런 문제들이 당사자분들의 손에 잡히게끔 잘 공유해서 사회적으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게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런 맥락에서 저도 농성 이름에 ‘내놔라’가 들어가서 좋았어요. 예를 들면 보장하라, 규탄한다, 사실 이런 구호들이 어쩔때는 시혜적인 위치를 상기시키는 구호이기도 한 것 같거든요. 반면 ‘내놔라‘는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구호라고 느꼈어요. 결국엔 같은 내용일지라도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요구할지에 따라 말을 만들어가는 문제인 거겠죠.

비슷한 맥락에서 요새 드는 생각이 있는데요. 함께 목소리를 내기 이전에 말을 잘 거는 게 필요하고 또 중요하죠. 이걸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챙기기가 참 힘들어요. 활동가 입장에서는 당사자분들의 현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나 정책에 대응은 해야겠고, 동시에 그런 기술적인 내용을 당사자분들에게 잘 번역해서 함께 직관적인 요구도 만들어내야겠고 하니까... 마음이 엄청 바쁜 거죠. 코로나 때가 특히 이 모든 걸 잘 해내기 벅찼던 시기였거든요. 정신없이 빠르게 뛰어가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당사자분들은 저 멀리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결국 속도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이런 고민들을 풀어보는 시간을 잘 가져보는 게 중요하다 싶어서, 최근에는 반상근으로 전환하기도 했어요.

당사자분들과 함께 움직이는 경험이 형진에게 엄청 중요한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음. 이건 뿌듯하거나 좋다기보단… 아픈 기억이긴 한데요. 2016년, 제가 홈리스행동 비상임 집행위원을 할 적부터 용산역에서 현장활동을 했었어요. 당시만 해도 용산역이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았어요. 신라 면세점에 육성급 관광호텔이 들어서면서 물리적인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죠. 거기 좌판 노점상 분들이랑 홈리스 분들이 많이 이용하던 보행교인 구름다리가 있었거든요. 원래는 철도시설공단, 그러니까 공공이 관리했던 다리를 2017년에 개장한 서울드래곤시티 호텔과 이어버린 거예요. 밖으로 나가려면 호텔을 꼭 지나게끔 만든 거죠. 그리고 구름다리 관리 책임이 호텔에 넘어가면서 양쪽 입구에 경비원이 배치되는 바람에 좌판 노점상, 홈리스 분들이 다 쫓겨나셨어요.

거의 3-4년을 만났던 분들과의 관계가 한순간에 완전히 끊어졌거든요. 어디로 가신지 모르겠는데, 뭐라도 어떻게든 해보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 5-6일을 그 자리에서 죽치고 당사자분들을 수소문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그분들이 완전히 쫓겨난 날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도시재생 어쩌고 하면서 맥주 페스티벌 포스터가 쫙 붙었는데… 어찌나 역겹던지, 아직도 생생해요. 그렇게 공간의 공공성이 줄어들면서 자본과 얽힐 때마다 가장 먼저 쓸려나갈 표적이 되는 사람들은 항상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정말 뼈저리게 느꼈던 이때 경험이 제가 활동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이 아닐까 싶네요. 이후로는 지더라도 좀 잘 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남겨야 할까, 하는 고민을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형진과 홈리스행동을 이어준 오작교가 사랑방의 자원활동이라고 들었어요.

사회운동을 해야겠다, 사회운동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은 했거든요. 근데 방법은 정말 모르겠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대학교에 다녔던 2000년대 중후반에는 사실 학생 운동이라는 게 없었거든요. 끝물이라 할 것도 없고, 그냥 완전히. 게다가 그 당시에 대학교가 신자유주의화된다는 진단이 많았어요. 제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보수화가 큰 이슈이기도 했고. 저로서는 고민이 많은 시기였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이론만 막 파다가… 뭔가 저처럼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빨리 만나서 활동 좀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어요. 바꾸려는 사람들 지금 다 어디에 있지? 사회운동 어디서 어떻게 하지? 그걸 물어볼 곳을 찾다가, 인권운동사랑방에 전화하고 자원활동을 하게 되면서 사회운동에 접속이 된 거죠. 그게 2011년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사랑방에 팀이 나눠져 있었거든요. 저는 사회권팀에 들어가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활동을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가 한참 한국철도공사의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가 문제 되던 시기였어요. 원래는 상시 개방이었던 대합실에서의 야간 노숙을 금지하겠다는 거였죠. 이후에 여러 단체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는데, 그걸 홈리스행동이 주관했어요. 전 사랑방 자원활동가로 거기 회의도 가고 역할도 맡다가, 매년 동짓날 열리는 ‘홈리스 추모제’를 준비하는 자리에도 자연스럽게 결합하게 되었어요. 이 행사가 거리나 쪽방, 고시원처럼 열악한 거처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홈리스행동이 한 해 동안 했던 사업들을 총화하는 의미도 있거든요. 그렇게 몇 년을 추모제 실무에 참여하다가 2015년 즈음에 야학 교사를 해보면 어떻겠냐, 다음에는 인권지킴이도 해보겠냐… 그렇게 홈리스뉴스, 회계까지 맡으며 한발씩 가까워지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마지막으로 사랑방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어쨌거나 저한테는 사랑방이 약간 사회운동의 초입 같은 곳이긴 해요. 사회운동을 거기서 배웠다, 이렇게 딱 얘기할 수는 없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활동가들을 만나고 사회운동과 접속되는 첫 문이었던 건 맞으니까요. 또 지금 제가 홈리스행동이라는 늪에 빠지게 되었던 계기이기도 하고요(웃음). 저한테는 그 상황과 경험이 되게 중요했어요. 지금도 그렇고.

또, 홈리스 운동을 하다 보면 여기 의제에만 딱 집중하게 되는 게 있거든요. 노동 운동이나 기후정의 운동도 그렇고, 다른 사회운동을 돌아보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제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 고민될 때 사랑방이 쓴 글이나 하고 있는 활동을 많이 참조하기도 해요. 실제로 사랑방이 제안도 많이 주셨어요. 지난 3월 말 열렸던 기후정의포럼에서 <다른세계로길을내는활동가모임>과 함께 한 섹션을 준비해보기도 하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꾸렸던 평등 정책 TF에도 짧게나마 참여했었죠. 이 경험들이 지금의 저한테 많은 고민들을 확장할 수 있던 계기였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사랑방이 많은 사람들과 인권운동과 사회운동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거점이자 연결통로로서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기대를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