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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46일의 단식농성이 끝난 후, 차근차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46일의 단식농성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 뒤, 사랑방 사무실 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지난 두 달 집과 국회만 오가며 밤낮없이 지내다 보니, 고정된 사무공간에서 자리에 앉아 일정한 시간대 사이에 일하는 그 며칠이 참 안정감을 주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지금 상태, 이 마음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정 운동에 처음 발을 들였던 2007년도부터 2022년 봄, 그리고 15년을 다 합친 것처럼 압축적이었던 지난 두 달까지 마음의 타임라인이 아주 엉망진창입니다. 뒤엉킨 실타래, 주파수 안 맞는 라디오 같았던… (이런 말 하지 마까요… ^_T) ‘내가 이런데, 단식했던 미류와 종걸 두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싶은 생각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어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동료와 통화를 하며 아직까지도 정신이 없다는 말을 주고받다가 그 친구가 ‘나도 이런데…’ 하는 말을 하더라고요. 너는 어떨지,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뒤에 이어지지 않은 말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런데…’

5월 26일 단식농성을 마무리하는 국회 앞 저녁 집회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먼저 단식을 중단하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종걸과 46일 동안 단식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끝까지 힘찬 목소리를 들려준 미류까지 함께 한 자리, 짧지 않은 시간 함께 싸운 사람들이 서로를 토닥이는 손길과 숨 고르고 또 다시 힘내자는 눈빛으로 마무리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사진촬영까지 다 마치고, 미류와 종걸을 먼저 보내고, 농성장에 남아 있던 한 동료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다들 너무 고생했는데…’ 뭐라고 뭐라고 웅얼거리면서 계속 우는데, 그 순간에 엄청 위로가 되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사실 직전까지 제가 너무 울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울고 싶은 심정이 착 가라앉으면서 농담을 치고 싶더라구요. 울어준 동료 덕분에요. 순간 외롭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이어지지만 단식투쟁은 여기서 멈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절망스럽지 않았나 하면… 절망스럽습니다. 그런데 그걸 절망이라고 입 밖에 꺼내면 이 봄에 함께 한 활동가들을 비롯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래온 많은 사람들이 함께 절망할까봐, 그리고 체념으로 받아들일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아요. “정치의 실패다, 차별금지법 제정까지 끝까지 투쟁한다”는 결의가 당연히 허세는 아니지만, 또 호기로만 가득찬 것은 아니니까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국민의힘이 여당인 한국사회에서, 긴 단식에도 계획하나 밝히지 않는 더불어민주당이 원내1당으로 있는 21대 국회 하반기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을까? 의심과 회의 사이를 오가는 매일이기도 합니다.

체념은 아닌, 하지만 절망의 실체를 마주하며

그럴수록 절망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직면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는 뾰족한 수가 있고 제정으로 가는 고속도로 같은 길이 보여서 투쟁을 했나? 차별금지법에 대해 입도 벙끗하기를 모두 꺼려했고 그래서 법안이 발의조차 되지 못한 채로 지나갔던 20대 국회는 지금보다 덜 절망스러웠나? 절망의 원인이 강력하거나 뾰족한 입법 운동의 전략이 부족해서, 차별금지법에 동의하는 사회적 여론이 잘 형성되지 못해서 혹은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해서였나? (어떤 사회적 논의의 장을 더 열었는지, 운동이 충분한 대중 집단을 만났는지, 현재 정치 지형에서 필요한 대안으로서 설득력 있게 공유했는지 여전히 고민과 평가가 필요한 부분은 많겠지만)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가장 큰 힘이자 기반은 언제나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운동의 원칙이 흔들린 건 결코 아니니까요. 저 역시 그에 절망한 것은 아닙니다.

바늘구멍을 넓히는 것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그래도 내가 출발 가능하다고 여긴 조건과 위치에서 제정 운동을 해 왔지만… 2020년 차별금지법이 7년 만에 발의된 이후에 지금까지 정면으로 전력을 다해 부딪혀 본 경험을 모두 함께 처음 경험했기 때문에, 그것도 소중한 동료의 몸과 마음이 상하는 것을 지켜보며 꼭 이루어내겠다 각오했던 목표였기 때문에, 현재 한국사회 정치의 생리와 능력을 뼈저리게 확인한 지금이 절망스러울 뿐이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적인 대화와 타협조차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말로만 이용하는 정치가, 그걸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종용하는 정치가 아직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 속에서 다시 만들어갈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전망도요.

지금이야말로 차근차근

요즘은 울음을 터뜨렸던 동료, 내가 이런데 ’다들 괜찮은지’를 떠올리는 동료, 단식농성을 구체적으로 다시 돌아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그 절망스러운 심정에서 걸어 나오는 중인 듯해요.

보름 남짓한 시간이 지난 지금 친구가 한 말을 종종 생각합니다. 한 방향을 향해서 계속 숨 가쁘게 달려왔기 때문에, 그게 나에게 너무 절실하고 중요했기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지는 마음도 있을 거라고요. 제정하지 못한 현실이 목표의 실패, 운동의 한계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속도가 달라지고, 조건과 환경이 변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기 시작하면 또 다음에도 바늘구멍은 보일 거라고요. 그래서 바늘구멍을 찾아다니기보다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된다고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모두가 15년 동안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를 간절히 바래왔던 사람들일 수는 없지만, 다음에는 그 바늘구멍을 넓히는데 한 걸음 더 나설 거라고요.

그 말에 기대어서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오늘도 하루가 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