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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문중원 기수를 떠나보낸 자리에 남은 노동자라는 이름

모든 권한을 쥔 한국마사회, 故 문중원 기수 죽음에 책임져야

“문중원이가 죽었어요?”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문중원 경마기수를 기억하는 이를 마주쳤다. 문중원 기수가 마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51일, 공기업인 마사회와 정부의 책임을 물으며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한지 2일째였다. 몸자보 문구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 편의점 점주는 오랜 세월 경마장을 오간 사람이었다. 그에게 문중원은 2005년 부산경남경마공원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봐왔던 기수, 상위권의 실력을 가지고 나름 유명했던 기수였다. 서울, 부산, 제주 3곳의 전국 경마장에서 흩어져 일하는 120여 명, 경마산업 종사자 중에서도 소수직군인 기수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문중원 기수를 포함해 지금까지 부산에서만 기수와 마필관리사 7명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기수, 마필관리사, 조교사 등 경마산업 종사자의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편의점 점주는 당연하다는 듯 “마사회는 비리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왜 말을 타는 일이 죽음과 저울질될 수밖에 없는지 알기 어렵다.

벗어나기 어려운 부당함

문중원 기수가 남긴 유서에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조교사와의 갑을 관계, 마사회의 불공정한 마방(馬房) 임대, 사람들의 죽음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선진경마’ 시스템에 대한 고발이 이어져있다. 불안하고 답답한 자신의 미래를 변화시켜보려 나름대로 분투했으나, 마사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배경에는 마사회와 마주-조교사-기수와 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가 있다.

마사회는 ‘조교사’에게 면허를 발급하고 마방(마구간)을 임대한다. 이후 조교사는 마주(馬主)로부터 경주마 위탁을 받고, 말을 훈련시키고 관리하는 마필관리사를 고용한다. 그리고 훈련 및 경주를 위해 말을 탈 기수와는 기승계약을 맺는다. 조교사와 기수는 모두 개인사업자로 동등한 계약관계처럼 보이지만, 조교사는 기수의 출전 선택권, 경주의 작전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조교사의 부당한 작전지시로 인해 경주 도중 위험에 처하거나 경마 부정비리로 연결될 수 있음을 짐작하면서도 조교사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면 말 훈련이나 출전에서 배제되고 이는 생계 위협으로 이어진다. 문중원 기수가 조교사 면허를 따고 마사회로부터 마방을 임대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조교사의 전횡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힘,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마사회

문제는 마사회의 역할을 단순히 마방을 임대하고 경주를 시행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경마산업에서 마사회의 권한은 압도적이고 세밀하다. 기수와 마필관리사, 조교사와의 관계에서 특히 그렇다. 마사회는 기수 육성, 기수의 면허 발급 요건, 면허의 갱신·정지·취소·징계를 포함한 제재, 조교사 면허 발급을 비롯해 마방 대부사업 전체, 게다가 기수 임금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상금의 책정과 배분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기수와 마필관리사뿐만 아니라 조교사 모두 마사회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마방 임대는 마사회의 절대 권력에 가깝다. 마방을 많이 임대받을수록 많은 말을 훈련시킬 수 있고 높은 순위에 오를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조교사 면허증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누구에게 마방 운영 권한을 줄 것인지, 몇 개의 마방을 배정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하지만 조교사 자격을 취득한 연차나 트레이닝 경력, 마방 운영 계획 등이 아니라 마사회 간부와 친분이 있어야만 마방을 배정받을 수 있는 불공정한 구조는 문중원 기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처럼 마사회가 막대한 권한을 독점하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서게 된 배경에는 1993년 시행된 ‘개인마주제’가 있다. 이전에는 마사회가 모든 말을 소유하는 ‘단독마주제’로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 모두 마사회에 고용된 직원이자 노동자였다. 하지만 승부조작 등 경마비리 해결책으로 개인마주제가 제시되면서 경마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고용관계가 변화하게 된다. 마사회법은 마주의 등록에만 초점을 둔 채, 기수와 조교사의 면허, 마필관리사에 관한 모든 규정을 마사회가 알아서 정하도록 했다. ‘개인마주제’라고 하지만 마사회와 마주와의 관계는 말을 매개로 한 투자자와 기업의 관계와 비슷한 것이다.

기수와 마필관리사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생계를 보장받고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 해고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고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 같은 조건에 놓인 동료들과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뭉칠 권리 등은 마사회-마주-조교사 사이에서 어디에도 가 닿지 못한다. 순위와 상금으로 스스로를 입증해야 하는 우승열패의 세계, 불공정이 무능력으로 둔갑하는 세계에서 마사회의 책임은 사라지고 개인으로서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2019년 11월 29일 문중원 기수의 죽음 이후에도 마사회장이 2019년을 ‘국민신뢰 회복을 위해 꿋꿋이 정진한 한 해’로 평가할 수 있었던 뻔뻔함에는 이유가 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와 자존감을 하찮게 만들어버리는 거대한 이윤이 마사회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직장이 어디 있는지…’

정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마사회의 총매출액은 7조 5,376억 원이다. 이 중에서 70%가 넘는 5조 3,082억 원이 화상경마장(장외)이 올린 매출이다. 경마장에서 벌어지는 경마보다 스크린으로 중계하는 화상경마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사회는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서 누가 1등으로 들어오는지만 확인할 수 있다면 악천후에도 경마를 멈추는 일이 없다. 심지어 문중원 기수의 죽음으로 취소된 경주에 대해 보전경주 계획을 발표했을 정도다. 기수 면허의 발급과 갱신, 조교사 면허 교부와 마방 임대 등 마사회가 가진 권한은 ‘기수를 썼다 버리는 일회용 취급’할 때만 발휘될 뿐이었다. 하지만 비가 오든 태풍이 불던, 안개가 가득 찬 날에도 말위에 올라가야만 했던 기수들의 노동을 떼어놓고 마사회와 경마산업을 생각할 순 없다.

문중원 기수의 죽음을 계기로 ‘선진경마’라 불리는 마사회 내부의 경쟁성 상금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기수 및 마필관리사 동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1~3위에 순위상금의 대부분을 집중시키며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기수들의 기본적인 생계와 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마사회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경마공원의 경우 출전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거나 순위에 들지 못한 기수들에게도 상금의 일정 부분을 나누어 고정급처럼 돌아갈 수 있도록 ‘부가순위상금’ 제도를 이미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마사회의 관심은 오로지 경마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내는 데 집중되어 있다. 2017년에도 이미 부가순위상금을 축소해 2020년까지 폐지한다는 계획을 발표해 반발을 산 바 있다. 게다가 한 달 가까이 문중원 기수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와중에도 온라인 마권발급 제한을 풀어 경마장 밖에서도 마권발매를 가능하게 하는 마사회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왔다. 경마는 본질적으로 경쟁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고, 기수 역시 스스로 상금을 둘러싼 경쟁에 뛰어든 개인사업자라고 강조하는 마사회는 아파도 다쳐도 말을 훈련시키고 경주에서 말과 함께 달려야 했던 노동자의 모습을 지우기 급급하다. 마사회가 매출의 16%에 해당하는 큰 금액을 정부에 세금으로 내기 때문일까? 경마산업 독점기업으로서 마사회가 져야 할 책임과 공공성을 강화해야 하는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경마의 경쟁적 성격은 바로 도박과 같은 사행성 산업인 경마산업의 특징이다. 하지만 경쟁의 결과를 경마산업에 종사하는 기수와 마필관리사에게 강요하는 것은 경마에 돈을 건 이들의 ‘리스크’를 경마산업 노동자들에게 엉뚱하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노동자의 권리로 묻는 ‘책임’

기업에서 노무비용 절감을 위해 이루어진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직접적인 고용관계를 근로용역계약의 형태로 변화시키면서 ‘이상한 사장님’들을 대거 양산했다. 그 사이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택배노동자, 대리기사, 방송작가,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개인사업자 계약관계는 노동시장에서 점점 더 일반적인 형태가 되어왔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은 충분히 그 기여와 가치를 인정받지 못 하고, 이들의 노동을 통해 이윤을 쌓는 기업의 책임은 사라져갔다.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름을 얻는 데까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경마산업의 기수처럼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의 내용이나 성격이 무엇인지, 일터와 맺고 있는 관계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는 노동이 있다. 우리는 그 삶을 조금이나마 짐작하며 경마장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구체적인 얼굴들을 떠올려보게 되었을 뿐이다.

경마의 순위상금처럼 노동자의 권리는 경주에서 이긴 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아니다. 자신을 노동자로 자각했지만 노동자임을 인정받을 수 없는 부당한 조건 속에서 조교사가 되는 것 외에 문중원 기수에게는 가능한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새롭게 모이는 기수들의 목소리는 ‘공정한 계약’에 대한 요구를 넘어선다. 지난 1월 20일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기수들이 경마기수노조 설립신고를 하며 스스로 ‘당당하게 노동자의 대열에 합류함을 선언’했다. 그것은 부당한 지시에 대한 선택으로 ‘어쩔 수 없이 지금처럼 그냥 탄다’거나 ‘조교사로 전향한다’고 답할 수밖에 없게 하는 자본관계의 힘을 노동자의 권리를 통해 변화시키겠다는 열망이다. 마사회의 눈치가 보여 동료의 분향소조차 찾지 못하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같은 조건의 노동자들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싸움 속에서 동료를 잃지 않고 계속 동료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유서에는 ‘세상에 이런 직장이 어디 있냐’는 비관이 가득하지만, 문중원 기수는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을 자신의 ‘일터’로 여기며 15년을 넘게 일했다. 마사회는 7명의 기수 및 마필관리사의 죽음, 수많은 ‘개인사업자’들의 노동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렛츠런(LetsRun)’이라는 새 브랜드로 도박임을 감추는데 혈안이 될 게 아니라, ‘노동자’가 아니어서 그 수고와 노동조차 부정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름과 권리를 되찾으려는 협상테이블에 성실하게 마주 앉아야 할 책임이 있다. 현재 공공운수노조와 진행 중인 집중교섭을 애써 협의로 치워버리려고 하는 마사회로부터 책임을 끌어내기 위한 ‘노동자들’이 있는 한 그 책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