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우리, ‘결사(結社)’할 수 있을까요?

지난 5월 정부에서 ILO핵심협약 중 그간 비준하지 않은 4가지 중 3가지, 결사의 자유 협약(87호, 98호)과 강제노동금지협약(29호)을 비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ILO 기본협약과 사회구성원의 권리행동은 어떻게 이어져 있나> 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발표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토론회를 계기삼아 사랑방에서도 ILO협약 비준의 의미와 고민을 정리해보자고 이야기하며 참석을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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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주최 측의 요청 중 가장 고민되었던 질문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임을 만들고, 가입하고, 활동하는 일과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하고, 활동하는 일 사이에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은 저 역시 공단 노동자를 만나며 늘 고민하지만 뭐라 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원인은 분명합니다. 기업과 국가가 나서서 노동자의 결사를 가로막기 때문이겠죠. 문제는 노동자의 결사를 가로막아온 역사가 반복되면서 노동자조차 노동조합이라는 말만 들어도 반갑기는커녕 거부감이 드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일 텐데요. 그래서 토론회에서 준비한 내용은 노동자의 결사 자체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 결사를 특별히 가로막고, 훼방하는 국가와 기업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기적으로 자기 이익만 챙기는 노동조합, 그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회사에서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결사의 자유의 의미를 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결국 결론은 어떻게 지었냐고요? 노동조합하면 그려지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결사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면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이유에 대한 고민을 담아보려고 했습니다. 사실 누구나 혼자서 고민하면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잖아요. 나아가 선택지만이 아니라 권리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차별이 깔려 있는 문화에서 나 혼자만 불편한 것인지 자신을 의심하며 넘어가게 되거나, 부당한 명령을 받으면 거절할 수 있다는 감각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이 감각이 달라지는 순간은 결국 타인과의 대화, 특히 동료와의 대화를 시작할 때가 아닐까에 주목했습니다. 결사는 여기서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묘하게도, 토론회 자리는 이심전심의 자리였습니다. 사랑방에서 고민한 내용이 결국 다른 발표를 하신 분들과 큰 틀에서 같은 고민을 담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방송국 스태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까지, 대학생들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를 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 노동권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청소년 노동의 현실에서, 문화예술인이 노동자를 자처하는 과정까지. 다양한 현실에서 변주되는 결사의 경험은 권리를 권리로 인식하는 과정이자 권리 확장의 과정에 놓여있음을 확인하게 만들었습니다.

토론회는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저의 고민은 거기서 끝날 수 없더라고요. 혼자서는 권리를 인식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이야기는 제가 활동하고 있는 반월시화공단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공단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일을 시작해도 며칠 동안은 이름도 물어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사람들과 관계를 쌓는 일 자체가 불필요한 과정으로 여겨지는 게 현실인 것이죠. 이런 현실 속에서 공단 노동자들과 만나고 모이기 위해서는 결사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론 턱없이 부족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조금 사후적인 해석을 보태서) 월담이 올해 계획한 활동 중에 직장 내 괴롭힘 제보를 받고, 상담을 하는 활동도 배치되어 있습니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괴롭힘은 임금 체불 같이 숫자로 드러나는 문제와 달리, 개념부터 현실에서 드러나기까지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문제입니다. 그만큼 괴롭힘을 당하는 당사자는 회사나 상사의 문제라기보다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고, 동료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일도 어렵게 만드는 것이죠. 이런 문제일수록 회사나 부서 내에서 관계를 형성하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외부에서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창구가 열려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안에서부터 결사가 어렵다면 밖에서라도 말을 걸어줄 수 있어야 할 테니까요. 게다가, 공교롭게도 올해 ILO 총회에선 직장 내 괴롭힘 금지 협약을 채택했고, 한국에선 미약할지라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7월부터 시작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움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말 걸기는 꾸준히 시도하지만 저희가 건네는 말이 공단 노동자가 권리를 인식하는 데 보탬이 되고는 있는지, 월담이 당사자들에게 어떤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지... 여전히 불안하지만 이 시도를 여기서 멈출 수는 없겠죠? 일단은 지금 활동을 잘 시도하고, 잘 평가하면서 꾸준한 고민과 활동을 이어가며 새로운 소식으로 또 찾아오겠습니다.

 

<ILO 기본협약과 사회구성원의 권리행동은 어떻게 이어져있나> 토론회 자료집 링크

https://www.sarangbang.or.kr/writing/72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