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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삼성이 파괴한 것은 노조만이 아니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삼성의 노조파괴, 어떻게 가능했나

삼성 노조파괴의 구체적 방법들이 담긴 문서, '서비스 안정화 마스터플랜'이 공개됐다. 문서가 공개된 후, 삼성전자서비스는 8000명 하청 노동자를 직고용하고, 노조를 인정하겠다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 합의했다. "무노조 80년이 깨졌다", "파격적인 행보"라고 연이어 보도되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삼성의 노조파괴 문건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3년 이미 정의당 심성정 의원이 'S그룹 노사전략'을 공개했다.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삼성 노동자들이 겪었던 숱한 일들도 그간 폭로된 바 있다. 이 문건에는 삼성 노동자들이 겪어온 현실 그 자체가 담겨있다. 그러므로 파격적인 삼성의 행보를 주목하기에 앞서 80년 무노조가 어떤 현실 속에서 유지되어왔나를 살펴야 한다.
 
뭉치면 죽이는 회사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은 시작부터 도전이다. 삼성은 노동자의 일상적인 동향을 파악해 노동조합 활동에 나서면 감시와 미행을 서슴지 않았다. 노동조합 활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노동자를 문제 사원으로 분류해서 직장 내에서 따돌리고, 노동자 간의 갈등을 조장했다. 징계와 해고, 일감 배정 조절로 생계를 위협하며 노조에서 탈퇴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이 모든 노조 파괴의 배경에는 삼성 전체 조직의 헤드라고 불리는 미래전략실이 나선 정황들도 밝혀지고 있다. 결국 삼성의 감시와 탄압으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조합원 중 일부는 탈퇴를 선택하거나 아예 퇴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를 견디다 못한 두 명의 조합원은 자살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삼성의 탄압이 미친 영향은 노동조합 조합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당한 처우를 받은 노동자도, 자신의 권리를 외치려고 마음을 먹었던 노동자도 동료가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침묵을 강요받는다. '먼저 이야기 했다가 해고될까,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을까' 쉬쉬하고 침묵하는 분위기 속에서 노동조합 가입은 기대보다 감수해야 할 부담이 많아진다.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창구가 점점 막혀가는 것이다.
 
일은 시켜도 사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는 대화하고 협상할 상대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제품을 설치, 수리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간접고용 노동자다. 그 말인즉슨 자신의 노동조건을 책임져야 하는 주체가 삼성전자서비스라는 사실부터 입증해야 노사 간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A/S는 삼성"이라는 삼성전자의 판매전략 아래 삼성전자서비스는 노동자의 수리시간을 초 단위까지 체크하지만, 그들은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책임지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려 해도 삼성전자서비스센터(협력업체)는 자신은 권한이 없다는 식으로 빠져나가고, 본사(삼성전자서비스)는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이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는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청하고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도 제기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위장도급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며 논란을 빚었다. 재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있는데 사장이 없는 현실은 노동조합이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조차 시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말 그대로 노동조합을 '고사'시킨다. 

'불법'노조 만드는 공권력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행동에 나서면 공권력은 오직 삼성의 편에서만 움직인다. 삼성의 감시를 폭로하든, 위장 폐업을 규탄하든 공권력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수갑을 채워가며 노동자들의 외침을 틀어막았다. 노조에서 파업만 시작하면 경찰은 불법 딱지를 붙이며 강제 진압으로 일관했고, 검찰과 재판부는 집시법 위반, 업무방해죄, 일반교통방해죄로 기소하고 처벌했다. 파업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노조법은 무용지물이었다. 반면, 노동자에게 엄격했던 공권력은 삼성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너그러웠다. 2013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나왔을 당시 노조 파괴의 증거가 분명했지만 검찰은 삼성을 무혐의로 처리했다.

공권력이 노동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단체행동 하지 말 것. 회사에 맞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말 것. 거리로 나오지 말 것. 공권력은 권리를 외치는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았다.

 삼성이 파괴한 것은 노조만이 아니다

공단에 가서 최저임금 준수 캠페인만 펼쳐도 "노동조합 한다고 될 것 같냐"는 냉소를 보내는 노동자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공단 안에 위치한 식당 사장도 "노조하는 것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큰소리로 떠들어 댄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전략과 '마스터플랜'이 삼성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확인하는 풍경이다. 무노조 80년은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도록 압박해온 80년이었다. 삼성의 문건들은 혹시나가 역시나로 확인된 대한민국 노조할 권리의 축소판이다.

내가 일을 할 때 몇 시간을 일하고, 언제 쉴 것인지 결정할 권리. 내가 일을 하다 다치면 치료비 걱정 없이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 동료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누구와 이야기 나누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을 권리. 노조할 권리는 노조를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요구이자 함께 살기 위한 방식이다. 삼성과 국가는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이 모든 권리들을 무노조라는 이름으로 파괴해온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노조할 권리를 부정하는데 앞장섰던 삼성은 8000명 직고용으로 무마하려 해서는 안된다. 무노조 경영전략이 범죄이자 인권침해였음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국가 역시 철저한 재수사를 통해 삼성과 공권력의 그간의 잘못을 밝히고 처벌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사회에 노조할 권리가 '권리'로 인정받게 만드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