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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인권운동과 ‘사회생활’의 경계에서 돋움활동가로서 1년을 지나며

인권운동과 ‘사회생활’의 경계에서 돋움활동가로서 1년을 지나며

박석진(돋움활동가)

작년 이맘 때 쯤 상임활동가에서 돋움활동가로 새롭게 한 걸음 내딛게 됐다고 사람사랑을 통해 말했는데, 어느 덧 1년이 지났네요. 돌아보면 세월 참 빠르구나 싶기도 하지만, 또 곰곰이 따져 보면 지난 1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변화의 시간을 겪다 보니까 그 경험들이 더 다사다난했던 일로 기억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저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어찌 운 좋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되어 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이것도 나름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만, 살면서 안 그런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냥 ‘운 좋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고 또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준비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수업도 꽤 부담되는 편이고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사랑방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게 너무 아쉽기도 하고 불만이 쌓이기도 해서 그런 마음이 계속 더 커진다면 그때는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할지 다시 생각해보려고요. 사랑방 활동이든 아니면 인권운동이나 다른 뭐가 되든, 사회운동을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을 오랫동안 지키고 싶어요. 그런데 사랑방 활동을 할 시간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은 다른 일(지금과 같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과 같은)을 좀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 사랑방 활동에 대해 다른 각도로 고민해보게 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나도 함께 겪게 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또 나 자신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도, 물론 화나는 일도 많지만, 나름 흥미롭게 여겨지기도 해요. 돋움활동가가 된 지 1년, 그 시간 동안 인권운동 사회와 운동 사회 밖 ‘사회생활’(인권활동가로 생활하는 것도 물론 사회생활입니다만)의 경계에서 이런저런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경험 말이지요. 그 중에서 가장 고민되는 것 중의 하나는 ‘삶과 운동을 일치시킨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삶과 운동을 일치시킨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별로 안 좋은 활동가라서 그렇기도 한데...;; 상임활동을 할 때도 이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아주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일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삶과 운동의 일치가 거의 불가능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일단 비정규직 자체가 문제인데 비정규직 노동자로 고용되어 있으면서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있고요.(어느덧, 이거라도 어디냐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전에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캠페인하면서 무임노동을 비롯해 일터에 만연한 여러 관행들이 ‘불법이니까 상담하고 신고하라.’고 했던 것들을 정작 내가 겪으면서도 신고는커녕 상담도 못 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이 부당하게 느껴지고 화가 나기도 하는 한편, 아무 것도 하지 못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연민도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나 혼자 나선다고 뭘 할 수 있겠어.’하는 생각이 들 때는 노동조합이라도 있으면 얘기라도 해 볼텐데 하는 생각도 드는데, 비정규직이라 노동조합은 영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노동조합의 ‘노’자만 꺼내도 바로 계약 해지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전에 계약 해지를 이메일로 통보받은 적도 있는데, 해고, 정말 쉽더라고요. 그나저나 이래서야 원, 인권 활동가라고 할 수나 있을지. 또 인권운동과 ‘사회생활’의 경계에 있다는 것이 주는 애매함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인권운동 안에서 인권활동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일반적인 ‘사회생활’과는 다른 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여겨지는 것과 좀 다른 삶의 방식이 통용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인권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좀 ‘일반적이지 않아 보이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은데, 가장 크게는 일반적인 생애 주기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고 또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보통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취직을 하고(이거야 뭐, 인권단체로 취직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결혼을 한 후 아기를 낳고 키우고, 집안 행사가 많은 결혼 생활을 하고…등과 같은 일반적인 ‘공식’ 같은 게 있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인생 계획을 매우 강하게 규정하게 되는데, 인권 활동가들은 그런 공식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것이 보편화되고 강요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취직이야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쳐도, 왜 꼭 모두가 비슷한 ‘취직’을 위해 경쟁해야 하는지, 꼭 평생 회사일과 같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두가 ‘돈, 돈’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등을 고민합니다. 또 왜 꼭 결혼을 해야 하는지, 결혼은 어차피 사회가 만들어낸 제도가 아닌지, 그렇다면 안 해도 되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결혼 ‘제도’가 특정한 가족 형태만을 정상적인 것처럼 만드는 폐해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고민하며 ‘결혼하지 않는 것도 괜찮다.’ 혹은 ‘나는 결혼하지 않는 비혼의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기도 합니다. 또 결혼을 한 후에 결혼에서 이어지는 여러 이유로 활동을 그만 두게 되는 경우도 많이 봤기 때문에 인권 활동에 더 삶의 비중을 두기 위해서 결혼을 하지 않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다 사람마다 다르고 개인의 선택인 것인데, 말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인권운동 사회에서는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죠. 아기를 낳고 다사다난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에서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왜 꼭 결혼을 해야 하죠?’라는 질문 자체를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게 여자 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등을 물어보며, 나이도 찼는데 빨리 결혼하라는 식으로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서 결혼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니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되고 다른 사람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겠죠. 그런 질문들이 내게 던져질 때마다 나는 아직도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머뭇거리게 됩니다. 결혼이라는 사회제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꺼내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둘러댈 말도 별로 없고. 조금 귀찮습니다. 또 돈을 버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한데, 일반적으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가치가 됩니다. 그런데 인권운동 사회에서는 전반적으로 돈 버는 것에 초연해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초연해한다’기보다는 ‘포기했다’에 가깝겠지만요.ㅋㅋ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삶의 태도는 많은 것과 연결되는 것 같더라고요. 직장의 가치나 앞으로의 삶의 계획, 목표, 삶의 가치, 인간관계 등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인권운동 사회에 있을 때에는 내가 얼마를 버는지, 다른 사람이 얼마를 버는지, 어떤 직업이 얼마나 버는지, 무엇을 하려면 얼마나 돈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돈을 모아야 할 지 등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일단 돈을 벌자는 목표를 세우고 나니 이 일은 얼마를 주고 저 일은 얼마를 주는지, 그 사람은 얼마를 버는지, 누가 얼마나 돈을 벌고 있는지 등에 관심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스트레스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나 자신의 변화가 놀랍기도 하고 좀 신기하기도 하고 한 편으론 긴장되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결국 나도 ‘돈, 돈’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지. 뭐, 좀 더 많지만 대충 이런 변화들입니다. 이런 변화들이 아직은 나름 흥미롭게 여겨집니다. ‘아, 많은 사람들이 (아마) 이런 걸 느끼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겠구나.(사실은 다 다른 걸 느끼며 다르게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재미있는 점도 있습니다. 사랑방 활동을 많이 할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도 크지만, 아직은 이런 생활을 더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일단 돈을 좀 더 벌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도 있고요. 1년 후에는 또 어떻게 사랑방 후원인들께 인사드리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아직은 고~고~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