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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자원활동가의 일기]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

이번 ,공공부문 간접고용 실태조사 사업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가 공공부문에서조차 비정규직을 조장하고 있는 참여정부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저임금?용역노동의 문제점과 각종위법 사례를 부각시키고자 기획되었다. 그래서 국공립대학, 병원 정부출연 연구기관, 공영방송사, 지하철 등 공공부문을 조사대상으로 정했다. 민주노동당, 공공연맹,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과 결합하여 사업을 진행했다. 조사원은 약 열 대여섯명 가량되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인권운동사랑방 사회권팀이었다.

나는 이번 조사 사업에서 정부출연 연구기관 쪽을 맡았다. 항공우주연구원, 에너지기술 연구원 등이었는데 우선 각 연구원의 노조측과 연락을 해서 그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분을 섭외해 달라고 부탁한 후 그 노동자분과 약속을 하고 주로 근무시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조사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노조측에서 노동자분을 섭외하는데 꽤 어려움을 겪었다. 사용업체에 워낙 종속적으로 매여있다보니 괜시리 근로조건에 문제제기하는 조사사업에 협조했다가 혹시나 사용업체 관리자와 마찰이 생길까봐 혹은 다음 고용재계약에 문제가 생길까봐 선뜻 조사에 응해주시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내가 맡은 과기노조같은 경우에는 노조에서 비정규직을 잘 파악하고 있고 같은 사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연결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철도쪽 같은 경우에는 노조에서 비정규직에 접근조차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라서 조사를 진행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이런 저런 난항 끝에 내가 조사하기로 했던 네 개의 조사사업장 중 하나를 제외한 세 개의 사업장 조사사업을 무난히 마쳤다. 주로 연구원의 사무 보조로 일하고 있는 분을 조사했다. 이 경우에 겉으로 보기엔 다른 직종의 간접고용 노동자분에 비해서 근로조건이 괜찮아보였다. 왜냐하면 처음 연구원에 들어섰을 때 넓고 깨끗한 연구원 내부가 좋은 인상을 주었고 사무보조 하면 그다지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얘기를 들어보니 그들이 느끼는 모멸감이나 소외감은 매우 컸다. 우선 경제적인 문제였다. 약 80만원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었는데 절대적인 액수가 엄청나게 적을뿐더러 동일노동을 하는 정규직 사원과의 차별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연구원 원장의 사무보조는 정규직인데 경력이나 학력, 능력, 노동강도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직원은 무려 두 배가 넘는 임금을 받았다. 또한 대부분의 사무보조 쪽의 간접고용은 파견법에 합법적으로 고용되어 있다. 이 경우에 2년 이상 근속하면 직접고용을 해야하는데 사측은 이를 교묘히 피하기 위해 2년까지만 재계약을 하고 그 다음해에는 재계약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 처음 조사한 해양연구원의 사무보조분은 처음 고용될 때는 이년뒤에 해고된다는 어떤 얘기도 듣지 못하고 입사했다가 입사한 후 얼마 뒤 그것을 알게 되고 어떤 대응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해 하며 하루하루 일을 해나가고 있다고 하셨다.

간접고용 노동자분이 사업장에서 겪는 설움은 낮은 임금이나 고용불안 같은 경제적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체육대회 같은 행사를 하면 직원으로서 그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행사 뒤치닥거리만 해야 한다. 식당조차 같이 사용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비정규직은 여성휴게실이 개방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비정규직만을 위한 휴게실이 있는 것도 아니다. 퇴직금도 사측 마음대로 분할 지급하기도 하고 보건휴가나 월차휴가를 마음대로 못쓰게 하기도 한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본에 의해 ‘2등 신민’으로 규정되었던 것처럼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을 ‘2등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사실 경제적 차별은 참아낼 수 있지만 이런 인격적인 차별, 자존심 문제는 쉽게 참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사회학 수업에서 교수님은 사회계층은 기능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의 학자들이 생각하는 보수의 개념을 설명해 주셨다. 이 보수에는 경제적 물적 보상도 있지만 자존심이나 자아 확장에 기여하는 보상도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번 조사사업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에 깊은 회의가 들었다. 모든 사회구조가 물질에 의해서 배치되고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책임의 정도나 직무수행에 필요한 능력에 따라 보상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인격적인 부분인 자존심이나 자아확장에 기여하는 보상까지 차별적으로 지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정부의 경영혁신추진지침이라고 하여서 비정규직을 양산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노동유연화를 조장하는 이런 ‘경영혁신’은 경제자유구역법이나 FTA자유무역협정등과 같은 세계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본다. 이번 사업을 통해서 반 세계화 투쟁에 더욱더 가열차게(?) 참여하자고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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