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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참 바쁘게 살아야 하는 올해

3월 들어서면서 참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아가는 생이지만 올해는 그래도 좀은 여유 있게 생각도 하면서 일하고 싶었는데, 올해도 지난해들의 반복이 될 것 같네요. 그런데 지난해들과는 달리 올해는 좀 부담되는 일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 1월말에 <참세상>이라는 인터넷 언론을 통해서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을 제안했거든요. 이런 제안에 대해서 인권운동사랑방을 비롯한 몇몇 단체들이 논의를 숙성시켜서 일을 진행하고 있어요. (가칭) 사회운동포럼 조직위원회를 만들자고 간담회부터 가져가는 상황인데, 이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으라고도 하고, 제안에서 제시하였던 합의회의를 추진하자고도 하고, 사이버 대선후보 운동도 이것과 연동되어서 맡아달라고도 하고요. 평택투쟁의 불씨를 되살려서 반전평화운동의 새로운 주체들을 형성해보자고 해놓고는 여기저기 분주하게 연락하고 사람들 만나고 있고요. 이러니 다시 사랑방 일에는 신경을 제대로 쓸 겨를이 없네요. 1주일에 한번 돌아오는 밥 당번도 대충 후딱 해치워야하고, 특히 주번 일할 때는 다 못하니까 다른 활동가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요.
지난해 이맘때에 저는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습니다. 지난해 3월 15일, 대추리 들판 포클레인 작업을 저지하기 위해 포클레인 위에 올라갔다가 잡혀 구속이 되었지요. 그 일은 내 자신에게도 그리고 인권운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 ‘인권운동’은 지난해 3월 6일 법원의 대추분교 행정대집행을 교문 앞에서 연좌 시위한 한 것으로부터 급격하게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인권교육을 하고, 공부방을 운영한다고 하면서도 어딘가는 한발 물러서 있던 처지에서 적극적인 주체로 서게 되었지요. ‘평화적 생존권’을 평택 투쟁에 대입했고, 불복종운동, 인권옹호자의 권리를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직접적인 행동으로 공권력에 저항하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공명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7월초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한 때에 ‘평화야, 걷자!’ 행진을 하다가 두 번째 구속을 당하기도 했지요.
인권운동단체연석회의는 이 투쟁에 적극 결합하면서 서울지역에서 서울대책회의를 결성하여 광화문에서 촛불문화제를 이어갔고, 여름나기 프로젝트 등의 행사도 치러냈습니다. 빈집 철거 들어올 때는 인권지킴이 집을 지키다가 인권활동가들이 연행되기도 했지요. 3월에서 5월까지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연행되고, 구속되고, 재판까지 받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평택투쟁의 중심적인 단위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로부터 인권운동은 빈전평화운동에 대한 고민들을 키워나가게 됩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올해 대추리 주민들이 정부와 이주협상을 한 뒤 다른 단체들은 투쟁을 접자하고, 뒤로 빼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평택투쟁을 한 단계 발전시켜서 반전평화운동을 확대하려고 기도하고 있지요. 인권단체연석회의 내에 반전평화팀을 만들어서 평화적 생존권을 구체적인 투쟁과제로 만들어내려고 하는 거지요.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참으로 많은 고민들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 운동은 이처럼 지리멸렬할까? 대중들을 감동, 감화시키지도 못하고, 차벽 속에 갇혀서 집회하는 것도 우리끼리 만의 집회로 끝나고, 합법주의에 매몰되어 있고요. 큰 사안이 벌어지면 사안을 따라서 우르르 몰려갔다가 그 투쟁의 끝을 책임지지도 못하고 또 다른 사안으로 투쟁을 옮겨가고요. 인권운동의 입장에서도 전체 진보운동이 이렇게 지리멸렬하는데 혼자만 잘 한다고 해서 될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그러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었지요. 각자는 각자의 장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고, 진보운동의 위기에 대한 고민들도 참으로 많더라고요. 그런데 운동의 위기를 말하면서도 이것이 대안이다 하고 내놓는 것이 없었지요. 한미FTA 저지를 위한 민중총궐기를 한다고 해놓고는 실제 그 이름에 값하는 위력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것도 없었고요. 이래서 진보운동의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가를 고민하게 되었지요. 한쪽에서는 한국진보연대를 만든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진보전략회의를 만들어서 진보적 담론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것저것 모두 다 대안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요.
그런 고민의 끝에 저는 진보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대책이라는 것을 제안서 형식으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운동지형을 바꾸어보자는 제안인데요, 지금까지 민중운동진영, 시민운동진영에 속하지 않는 작은 단위들을 묶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보니 인권운동, 평화운동, 생태주의운동, 여성주의운동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운동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것이 분야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 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보편적인 가치들이 상식이 되는 사회를 향해서 진보운동은 같이 굴러가는 것인데, 이런 운동들과의 대화가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던 거지요. 이런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운동들은 제도권에 들어가 있지도 않으면서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이기도 하고요. 이런 운동들이 서로 대화를 해서 서로 각자 부족한 것을 다른 운동들에서 보완하고, 배우고, 같이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 운동은 한 걸음 전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요. 그런 속에서 ‘합의회의’를 갖고 그 합의회의에서 100대 실천과제들을 합의하고, 합의된 의제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다시 모여서 점검하고, 보완해가는 그런 운동을 기획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민주집중제 식의 조직방식으로는 절대 안 되고, 누구도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조직이 창의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조직형태여야 하므로 그것은 네트워크로 엮여져야 하고요.
사람들은 저의 제안이 새로울 것도 없고, 또 구체성도 없고, 뚜렷한 경로도 밝히고 있지도 않다고 비판하더라고요. 저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이지요. 저 한 사람이 고민해서 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만약 제가 이 제안에서 진보운동의 방향이 무엇이라고 규정하고, 이것으로 모이자고 했다면 이전의 운동과 뭐가 다를까 생각합니다. 참으로 많이 분화된 운동, 그 분화된 운동이 자기들의 장점을 살려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연대를 실천할 수 있으려면 처음부터 그야말로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운동의 기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지요. 각자의 운동이 옳기 때문에 나를 따르라고 주장하는 그런 운동으로는 진정한 연대를 이룰 수 없다는 것, 그 올바르다는 가치를 서로의 대화와 실천의 과정에서 확인해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제안을 진지하게 읽어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지요. 그런데 이런 저의 제안을 참으로 자기들의 입맛대로 맘대로 해석하니까 어처구니가 없을 때도 많아요. 결국의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저의 제안을 이용해서 나를 중심으로 단결하라고 하는 단체와 사람들도 있는 거지요. 그래서 그런 오해에 대한 저의 답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좀 덜 바쁘게 살고 싶다고 말하니까 그런 제안을 해놓고는 어떻게 덜 바쁠 것을 생각하냐고 핀잔을 줍디다. 뭐, 할 밀이 없지요. 그게 제 운동하면서 사는 방식인 걸, 어쩝니까. 그래서 올해도 참으로 바쁜 나날을 지낼 것 같고, 그 바쁨으로 인해서 주위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도 못하고 살 것 같아요. 이제는 체력도 달리고, 보는 이마다 간이 안 좋냐, 피곤해 보인다 하는 걱정도 많이 듣고요. 그래서 올해는 체력을 다지는 운동에도 시간을 지속적으로 내려고 하는데, 그런 일도 참 안 되네요. 술도 줄이고, 담배도 줄이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올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죠. 한미FTA 체결,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20주년, 대통령선거,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등등 너무도 큰일들이 기다리고 있지요. 우리의 삶을 규정할 엄청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그런 속에서 평화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을 구체화하고 하는 일들을 잘 했으면 합니다. 부담은 더욱 크겠지만, 조금은 덜 바쁘게 생각할 여유도 가지면서 살고 싶지요. 정말 올해는 어디 며칠이라도 여행 한번 꼭 다녀오고 싶습니다. 감옥은 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