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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 평화행진① ] 미군기지는 평화와 평화 아닌 것의 경계

<편집자 주>

평화는 저절로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평화적 생존권을 향한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행동의 물결을 이루어 전쟁의 바다를 뒤엎을 때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필자가 지난 5월 15~17일까지 있었던 오키나와 평화행진 참석하면서 평화운동과 국제연대에 대한 경험과 생각들을 지면에 담았습니다. 2회에 걸쳐 게재할 계획입니다.

6월 2일 대통령은 한국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제주해군기지는 ‘국가안보와 제주발전’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시점인 지금, 평화를 향한 민중들의 움직임을 국경을 넘어서 살펴보는 것은 더욱 뜻 깊은 일일입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국제연대

“베에군기치 데떼이케” (미군기지 나가라)
“오키나와카라 데떼이케” (오끼나와에서 나가라)
“간코쿠카라 데떼이케” (한국에서 나가라)
“아지아카라 데떼이케” (아시아에서 나가라)

- 2009년 5월 17일 평화행진 이후 평화를 지키는 군민대회에서 한국 참가자들이 외쳤던 구호


평화행진 참가자들, 구호를 외치는 정경(좌),  평화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완시 해병대 공원에 모여 정리집회를 하는 광경(우)<br />

▲ 평화행진 참가자들, 구호를 외치는 정경(좌), 평화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완시 해병대 공원에 모여 정리집회를 하는 광경(우)


나에겐 ‘국제연대’란 유창한 영어로 정부나 NGO 대표를 만나 정치적으로 로비를 하거나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것을 의미했다. 일단 영어가 딸리니깐, ‘국제연대’하면 머리에 쥐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름다운 말잔치 뒤에 남는 허무함은 도대체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를 되묻게 했다.

그런데 오키나와를 다녀와서 국제연대에 관한 고정관념이 깨졌다. 오키나와 활동가들과 함께 했던 평화행진, 다까에의 아름다운 숲과 바다, 그곳에서 자연과 함께 살고 있는 주민들과 어울렸던 소박한 잔치, 헤노코 바다를 지켜낸 할머니들과 활동가들의 열정을 느끼면서 ‘국제연대’란 정치도 로비도 아닌 오감을 자극하는 ‘진정함’이라고 느꼈다. 그곳에서 내가 한 것이라곤 함께 걷고, 노래 부르고, 음식 먹으며, 손짓발짓 하면서 서로의 삶과 운동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일이었다. 원초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유난히 정서와 느낌에 의존하면서 지냈다. 오키나와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편안했던 이유는 억압받는 자로서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 사이에 느껴지는 정겨움과 유대감이 언어와 논리에 앞서 몸짓과 표정, 눈빛으로 교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풀뿌리를 뽑아보거나 캐어보면, 가느다란 뿌리들이 서로를 엮으면서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미세한 뿌리는 흙에 살포시 안기어 영양을 흡수하고 풀은 씩씩하게 잘 큰다. 국제연대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지금 여기서 열심히 뿌리 내리면서 다른 곳에서 뿌리 내린 사람과 만나는 것, 각자가 갖고 있는 경험을 나누고 그 가운데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얘기하는 것, 다른 경험이 있더라도 서로를 향해 개방해 나가는 것, 그 경험을 엮어서 공동의 목표를 엮어가는 것.

일본에서 오키나와의 존재

 오키나와시를 행진하고 있는 사람들(좌), 우익들이 확성기를 실은 자동차를 타고 방송을 하고 있는 모습(우)<br />

▲ 오키나와시를 행진하고 있는 사람들(좌), 우익들이 확성기를 실은 자동차를 타고 방송을 하고 있는 모습(우)


5월 17일 오키나와시. 하늘에서 뙤약볕이 내리쬐고 땅에서 아스팔트 열기가 올라온다. 일본 본토 사람들과 오키나와 사람을 모두 합해 행진 규모는 2천여 명에 가깝다. 일본 본토에서 온 사람들은 노동조합,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개는 시민들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참여한다. 오키나와가 미군정에서 벗어난 1972년 5월 15일을 기념하기 위해 일본 전국에서 온 사람들은 오키나와 각각 다른 지역에서 출발해 평화행진을 하고 있다. 오키나와 사람이건 한국 사람이건 물을 나누어 마시고, 우익이 우리 주변을 쫓아오면서 확성기로 고함을 칠 때조차 묵묵히 길을 걸었다. 한국에서는 행진할 때 박수 치고 노래도 부르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순례를 하듯 걷는다.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쉬지도 않는다. 간혹 구호를 외치기도 하는데, 한국의 운동 문화와 비교하면 정말 조용하다. 미군 기지 안에 일장기와 성조기가 함께 휘날린다. 미군들과 그 가족은 마치 휴양지에 놀러온 것처럼 편안한 일상을 경계 너머에서 누리고 있다.

지구촌 곳곳 미군이 주둔하는 곳은 경관이 빼어나다. 군사기지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곳에 미군은 식민의 역사를 만들었다. 자연과 사람의 생존을 빼앗고 파괴해놓고는 성조기를 걸고 자신의 영토임을 과시하며, 어마어마한 무기를 쟁여놓고 있다. 역설적으로 미군기지는 평화와 평화 아닌 곳의 경계가 무엇이지를 드러내 주고 있다. 평화운동가 사꾸마 씨는 “일본은 평화헌법이 있어서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키나와에 와서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를 겪으면서 이러한 상태는 평화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키나와의 존재는 일본이 평화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라고 말한다. 오키나와를 순례하는 동안 내내 내 머리 속에는 ‘평화가 무엇이냐’를 노래하던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떠올랐다. 더불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싸우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사람들의 아픔이 스며들었다.

오키나와와 한국, 다른 그림 찾기

후텐마 공군 기지, 전투기가 이륙해 하늘을 날고 있는 사진<br />

▲ 후텐마 공군 기지, 전투기가 이륙해 하늘을 날고 있는 사진


미군 기지를 순례하면서 나는 계속 한국과 오키나와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분별하고 있다. 분별심은 때때로 나를 괴롭힌다. 오키나와는 이런데, 왜 한국은 저런가? 뭐 그런 생각이 머리에서 왔다갔다 한다.

5월 18일 다까에로 가기 전 후텐마 공군기지를 둘러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 망원경으로 미군기지를 세밀하게 볼 수도 있다. 몇 분 간격으로 활주로를 박차고 올라가는 비행기의 기종을 설명하는 안내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마치 관광 안내를 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2007년 민통선과 미군 군사 시설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이유로 국보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시우 씨가 떠오른다. 2008년 1월 31일 서울형사지법 제27형사부 (재판장 한양석 부장판사)는 이시우 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2008년 추운 어느 날 이시우 씨가 3보 1배를 하며 국가보안법의 부당성을 외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헤노코에서 제주도 강정마을 투쟁 선전물을 들고 있는 한국과 오끼나와 활동가들 모습 <br />

▲ 헤노코에서 제주도 강정마을 투쟁 선전물을 들고 있는 한국과 오끼나와 활동가들 모습


5월 18일 우기가 시작할 무렵 방문한 다까에에서 순한 얼굴에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만났다. 2년 전 헬리곱터 이착륙 기지를 만들려는 공사가 시도되자,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공사장 입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곧이어 일본 방위성은 통행방해로 소송을 걸었다. 다까에는 오키나와 북부지역에 위치해 있고 아열대림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다. 다양한 동식물이 숲을 근거로 살고 있으며, 숲으로 가까이 가면 신령스러운 기운마저 느낄 수 있다. 이곳 숲은 마치 정글처럼 보이는데 이점이 미군의 입장에서 ‘정글 군사훈련’을 할 수 있는 최적의 곳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때문에 오키나와에 다른 미군기지가 많지만 새롭게 기지를 확장하려는 것이다. 미군은 자신들에게 필요 없는 헌집을 ‘토지반환’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하면서, 낼름 새집을 또다시 달라고 한다.

활동가들과 주민들은 순번을 정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7시부터 밤9시까지 농성을 한다. 농성은 2년 동안 이어지고 있으나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씩씩해 보였다. 새로운 미군기지 건설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주민 80~90%가 반대의견을 말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끊임없이 주민들을 회유하고 설득하면서 사법부의 허락(?)과 반기지 운동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힘도 만만치 않아 미국의 의도대로 일본 정부의 속셈대로 미군기지가 들어서지는 않으리라.

평화적인 생존권... 반기지 운동의 보편성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1945년 3월 미군은 오키나와에 폭격을 퍼부었다. 엄청난 군사력 앞에 결국 일본은 항복했다. 1945년 10월 미군은 오키나와를 점령했고 많은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살던 집과 땅을 빼앗겼다. 이후 오키나와는 미군의 군정에 놓였고, 이에 맞서 주민들은 저항하여 1972년 5월 15일 오키나와는 일본으로 반환된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키나와는 미군의 동아시아 주요 거점지역으로 주일미군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일본 내 미군기지의 23.5%를 차지하고 있다. 미군이 항상 사용할 수 있는 전용시설의 74.7%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다. (이상 「오키나와 이야기 」 참고)

오키나와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에 오키나와 미군기지가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이 전쟁기지의 피해자 이면서도 가해자의 위치에 설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러한 성찰이 가능하자, 오키나와 대중운동은 미군정에서 일본으로의 복귀(이럴 때 미군기지는 일본 본토 수준으로 유지)를 넘어 ‘반기지 운동’으로 발전했다. 일본 본토로 편입만 주장하는 것이 아닌 반기지 운동으로 목표를 분명히 한 것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한 아시아 민중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운동은 ‘반기지 운동’의 보편성을 얻는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비롯해 멀리 갈 것도 없이 평택, 군산 등 기지들을 포함해 군사지역은 지구촌 누군가를 적으로 설정하고 그들을 공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는다. 최상의 공격을 위해 군사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모집하고, 정기적으로 군사훈련을 실행하며, 필요에 따라 지역을 재편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집행하기 위해서, 땅이라고 하는 물리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는데 미국은 ‘미국에 의한 세계평화’라는 명분으로 전 세계 미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6년 1월 미국과 한국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고 평택에서 미군기지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정부는 평화의 섬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만들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미군이 강정마을에 만들어질 해군기지를 이용할 것은 분명하다. 한반도를 미국의 의지에 따른 전쟁수행에 유용한 기지로 재편하는 것은 결국 한국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전쟁의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은 한국에서 반기지 운동이 한반도 내 평화를 넘어 동아시아는 물론 지구촌 평화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한국은 짧지 않은 평화운동의 역사에서 주민들, 운동가들은 평화적 생존권을 주장하며 전쟁기지 확장에 반대하고 있다. 평화적인 생존권은 한마디로 평화롭게 살 권리이다. 전쟁으로 인해 생명이나 신체가 위협받지 않을 권리, 각 개인이 가해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평화를 위협하거나 침해하지 않을 권리, 전쟁이나 군사기지 확장으로 인해 살고 있는 집이나 땅을 빼앗기지 않고 살 수 있는 권리, 생활환경이 파괴되지 않으면서 생존을 누리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 등등. 인권의 모든 목록이 평화의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보완될 수 있는 것이 평화적 생존권이다.

다까에 농성장과 푯말. 푯말에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입니다’라고 쓰여 있다.<br />

▲ 다까에 농성장과 푯말. 푯말에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전쟁연습장으로 땅을 빼앗기고, 환경오염으로 자연은 병들어가며, 소음으로 주민들의 건강은 위험하다. 때문에 반기지 운동을 전개해서 평화로운 지구마을을 만들자는 것은 오키나와의 문제도 평택, 군산의 문제도 아닌 공통의 이슈이다. 군산미군기지피해상담소 딸기 활동가는 “가끔씩 전투기들이 폭음을 내며 뜨고 내릴 때 이 전투기가 오키나와 어디 비행장으로 가겠지 생각하면 이 문제는 단지 군산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혹은 군산에서만 해결되면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때문에 그녀는 아시아,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반기지 운동에 관해 관심을 갖고 함께 해결하자고 힘주어 말한다.


덧붙임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