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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500일을 돌아보며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의 과제를 다시 생각하다

지난 3월 27일은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500일이 되는 날이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물대포에 맞아 죽음에 이른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활동들을 사랑방에서도 함께 해왔다. 사건 발생 초기 조사단을 함께 구성해서 조사활동을 벌이고 일 년이 다 되어서야 열린 국회 청문회 대응을 하며 진상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국가폭력이 더는 발생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그중 하나로 집회 현장에서 살인무기인 물대포를 추방할 것을 촉구했다. 백남기 농민 유족들은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을 비롯해 살수차를 운영했던 경장들까지 7명을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며 책임자 수사와 처벌을 촉구해왔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을 대응하면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해온 500일이 흘렀다. 광장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고 있다. 317일 사투 끝에 백남기 농민이 끝내 돌아가시고, 사인이 분명한데도 국가폭력을 은폐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부검영장을 집행하려는 경찰에 맞서 장례식장을 지켰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재발방지대책 마련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게 없는 현실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국가가 보였던 모습의 최소치도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사과’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시 진압과정에 주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줄지어 승진하였고, 끝까지 임기를 채우고 은퇴했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자는 없다는 현실에서 지난 500일의 시간 동안 한결같이 요구해온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의 과제가 얼마나 진전이 있었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500일을 앞두고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

국가폭력 사건만이 아니라 각종 인권침해를 대응해나갈 때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의 과제는 늘 셋트로 함께 요구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가나 인권침해를 일삼는 기업들은 그 요구들을 모르쇠로 일관하며 무시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그러한 과제들이 이행될 수 있도록 촉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역할을 마냥 해주기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미끄러지는 결과로 이어져왔던 것 같다.

 

밀양과 겹쳐지던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조사 보고회>에 다녀왔다. 2005년부터 시작해 10년을 싸워왔다. 주민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며, 경찰병력을 투입하면서 압도적인 물리력을 동원해 공사를 강행한 결과, 결국 송전탑은 들어섰다. 송전탑을 꽂으면서 주민들이 꺾이길 기대했겠지만, 여전히 많은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의 부당함에 대해 알리며 언젠가 송전탑이 뽑힐 날이 오게 하리라 이야기한다. ‘공공을 위한 국책사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송전탑 사업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며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 삶의 의미가 흔들리면서 이를 지키고자 싸움에 나선 다른 지역 주민들이 서로 만나고, 함께 모이고 있다. 그날 보고회에는 밀양만이 아닌 청도, 당진, 군산, 횡성, 광주에서 주민들이 참여해 어떻게 막무가내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그 과정을 겪으며 어떻게 삶이, 공동체가 흔들리고 망가지는지 생생히 증언을 이어갔다. 송전탑 공사가 완료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끝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공사가 강행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이는 쉽사리 사그라든다.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상흔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주민들은 어느새 잊혀졌다. 공사강행 과정에서 인권침해감시활동을 함께 하며, 밀양희망버스를 함께 준비하며, 밀양과 인연을 맺게 된 나 또한 기억이 옅어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밀양에서 송전탑을 매일 마주하면서,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으로 조각나버린 마을공동체에서 상처를 품고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을 다시 보게 된 것 같다.

밀양 보고회를 다녀오며 인권침해를 경험하며 남은 상처들은 오롯이 피해자 개인이 감당해야 할 것으로 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이 겹쳐졌다. 과거 국가폭력 사건들에서 제대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이 되었다면,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없지 않았을까. 2005년 11월 농민대회에 참여했던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폭력진압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은 사과를 하면서도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법집행이었다고 항변했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 조사하고, 책임자를 징계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수용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였고, 직후 허준영 경찰청장은 사퇴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2008년 검찰은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고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기소를 중지했다. 제대로 처벌받은 책임자는 아무도 없었다. 허준영은 이후 코레일 사장을 지내다가 2012년 총선 때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다행히도 낙선했고, 얼마 전에는 용산개발비리와 연루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09년 용산참사 때 ‘무전기를 꺼놓았다’면서 책임을 회피했던 김석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이후 오사카총영사로 발령되었다가 국회의원 후보로 나왔고, 2012년에는 떨어졌지만 2016년 총선에서는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다. 시민을 공격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서 국가폭력을 어떻게 끝장낼 수 있을까 싶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500일을 돌아보면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해왔지만 꿈쩍도 안하는 현실에서 말만 앙상하게 남지는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것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우리에겐 어떤 힘이 필요한가 고민해본다.

 

500일,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간절함으로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500일을 앞둔 주말, 광장에서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고 온전한 집회의 자유 보장을 위해 ‘물대포 추방! 차벽 금지! 어디서나 자유롭게 집회를!’ 요구하는 입법청원 캠페인을 진행했다. 지나가다가 ‘백남기 농민’이라 말하는 목소리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던 사람들이 입법청원 서명에 함께 했다.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는 시민들이 국가폭력을 끝내자 말하며 함께 걸개그림을 그렸다. 조속한 수사를 촉구하며 중앙지검 앞에 백남기 농민과 함께 서는 1인 시위도 이어가고 있다. 500일을 딛고, 이젠 정말 국가폭력을 끝내기 위해 다시금 그 과제들에 대해서 곱씹어보려고 한다. 앙상한 말로만 남지 않도록, 우리가 이 사회가 채워가야 할 진실과 정의에 대해 많이 고민하며 이야기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의 과제가 국가폭력을 끝장내는 과제임을,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임을 새기면서 힘 있게 다시 내딛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