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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호의 인권이야기] 선을 넘나드는 싸움을 만들어야 할 때

비정규직 종합대책, 그리고 (가칭) 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

알바몬과 열정페이

“500만 알바 여러분~ 법으로 정한 최저시급은 5580원입니다. 5,580원~ 이런 시급! 쬐끔 올랐어요. 쬐끔(370원 올랐대.) 이마저도 안 주면, 히잉~”

하나의 광고가 사회를 시끄럽게 했다. 걸스데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출연한 ‘알바몬 CF 영상 - 최저시급, 인격모독편'은 2월 2일 게시된 지 한 달 만에 187만 건이라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뜨거운 반응에는 ‘사장님’들도 한 몫 했다.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알바몬 광고가 아르바이트 근무자와 고용주 간의 갈등과 오해를 유발할 수 있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즉각적인 광고 배포 중지와 소상공인 전체에 공개사과”를 요구했고, 알바몬에 항의하는 ‘사장몬’(정직한 자영업 사장님들의 모임)이 만들어지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사장님들의 대응은 광고가 나온 지 1주일만에 벌어진 일이다.

젊은 세대에게 최저임금을 확실히 알린 이번 광고의 힘은 (아이돌 멤버가 나온 점도 있겠지만) 광고가 택한 화법에서 나오는 듯하다. 최저임금이 ‘쬐끔 올랐'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고, ‘앞치마를 똘똘 뭉쳐서 힘껏 던지고 때려치세요.’라고 말하는 광고는 알바노동자들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준다. 최저임금 위반 시 벌금이 얼마라고 말하며 신고방법을 가르쳐 주기보다 ‘히잉’이라며 투정을 부리는 광고는 알바노동자들의 눈길을 붙든다. 알바노동자들에게는 통쾌함을, 자영업자들에게는 불쾌감을 주었다는 점이 알바몬 광고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비교하기는 민망하지만 노동부가 2013년 7월 내놓은 ‘청소년알바 10계명’이라는 광고를 보자. 시작부터 ‘청소년과 고용주가 함께 알고 지켜야 할’이라며 중립을 자처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는 방식을 택한 이 광고는 지루하다.(현재 동영상 조회수는 1,950건 정도다.)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주유소, 음식점 등에서 더 이상 청소년들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20~30대 노동자들이 생계를 찾아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2015년 취직은 어렵고, 시급은 낮으며, 수당은 부족하고, 해고는 쉽다. 저임금과 불안정노동은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이 되었으며 ‘예외적인 노동구조’였던 비정규직은 어느새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노동구조 중 하나가 되었다. 알바천국이 20~30대 구직자 1,2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인턴 열정페이 현황’에서 65.2%가 인턴근무 시 보수가 적고 일이 힘들어도 기꺼이 참아야 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열정페이와 블랙기업이 난무하는 지금, 노동조합 문턱에도 닿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알바몬 광고는 통쾌하지만 열정페이는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쥐꼬리만한 최저임금을 말하고,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사실을 말하는 알바몬 광고의 혜리는 졸지에 ‘맑스돌’이 된다.

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

박근혜 정권은 2014년 10월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막기 위해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12월 발표한 종합대책은 △35세 이상 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55세 이상 파견 허용 업종 전면 확대 △직무·성과급 중심 임금 개편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 마련을 핵심으로 한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넘고, 저성장이 예정된(정부예측 3.8%) 시대, 정부는 숙련된 비정규직을 기업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노동자를 쥐어짜서 돌파하고자 한다. 박근혜 정권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동시장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라며 “노와 사는 상생의 정신을 바탕으로 3월까지는 반드시 노동시장 구조개혁 종합대책을 도출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고 밝혔고, 노사정위원회 전문가 그룹은 이미 정부의 안과 유사한 ‘공익위원 안’을 제출한 상태다. 3월까지는 노동시장 구조개악 합의를 마무리하고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상반기에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다.

2월 4일 열린 (가칭)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 출범 준비 워크숍 (출처: 참세상)

▲ 2월 4일 열린 (가칭)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 출범 준비 워크숍 (출처: 참세상)


이에 5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1월 4일 ‘비정규직 양산법안 저지 긴급행동(준)’을 결성하고 두 달 동안 집중적인 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2015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운동본부를 구성을 위해 워크숍 준비모임을 열고, 4차례에 걸쳐 토론을 진행해 왔다. 그 토론의 내용을 바탕으로 2월 4일 프란치스코회관에서 ‘2015년 비정규직 운동 함께 토론하는 워크숍’이 열렸다. 100여명이 넘는 이들이 모여 예상했던 것보다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이제는 워크숍의 성과를 바탕으로 (가칭)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저들이 정한 선을 넘나드는 싸움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권이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한 여론은 과거의 노동정책과 달리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 압도적이다. 보수언론이 이번 종합대책에 대해 ‘장그래법’이라고 이름 붙이자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달라고 했지 비정규직 연장해달라고 했냐?”는 비난이 인터넷과 SNS에 쇄도했다. SBS 신년 여론조사에서도 ‘정부 정책대로 정규직이 양보한다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대답이 1/3 수준인 35.6%에 그쳤다. 만화 <미생>과 <송곳>, 영화 <카트>를 접했던 이들이, 혜리의 알바몬 광고에 통쾌해 했던 이들이, 열정페이 논란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분노를 모아 반격을 해야할 시기다. 2015년은 정부가 노동시장을 개악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해이기도 하지만 전체 노동자들과 민중의 분노가 높고,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움직임이 시작되는 해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권의 땅을 치는 지지율과 총파업을 선언한 민주노총 후보의 당선 등은 이러한 밑바닥 민심을, 우리가 반격을 시도해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보여준다. 이 싸움은 (가칭)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가 만들 수도 있고,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어떤 공간에서 싸움이 시작될 수도 있다. 어디든 좋다. 올해에는 누군가 정해놓은 선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넘어 우리가 선을 정하고, 그 선을 넘나드는 싸움을 만들자.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막아내는 것을 넘어 대안을 만드는 싸움을 해보자.
덧붙임

오진호 님은 비정규직없는세상 네트워크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