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일반

[진보네트워크센터 성명] 마구잡이 감시 감청, 국가정보원을 극복하자

[편집자 주] 인권단체들이 국정원 내란음모사건에 대해 릴레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입장을 발표한 단체의 수락을 받아 <인권오름>에도 게재 합니다.


국정원이 두려운 사회는 이미 감시사회이다. 충격적인 국정원의 감청 수사 국가정보원의 감시와 감청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체포구속 과정에서 핵심적인 증거로 사용된 것은 국정원이 오랜 감시와 감청 끝에 확보했다는 녹취록이다. 감청은 매우 치밀하게,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수의 시민이 이용하는 공중전화를 1년 넘게 감청했다거나, 휴대전화를 감청했다는 언론 보도 내용은 충격적이다. 실제로 휴대전화가 감청되었다면 이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다. 물론 기술적으로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이후 국정원은 휴대전화 감청 사실을 부인해 왔다.

실제로 정부는 2005년 하반기 이후부터 지난해 연말까지 휴대전화 감청 건수를 0으로 집계해 왔다. 이 때문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재판 등에서 증거로 사용되어 온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감청 건수마저 0으로 집계되어 온 사실에 기초하여 통계 마사지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통신회사들에 감청설비 구비를 의무화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휴대전화가, 특히 최근에는 스마트 폰이 감청되어 온 모양이다. 휴대전화 감청이 얼마나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와, 관련 통계 및 국회 답변과 관련한 의문점들은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3년이란 장기간 이루어진 감청의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이 2개월씩 감청하게 되어 있는 감청 영장을 여러 차례 연장하거나 재 발급받아 7년간 감청한 사실에 대해, 2010년 헌법재판소에서는 이미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도 국정원이 장기간 감청할 수 있었다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 위헌적이며 편법적인 수사 방식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국정원이 끈기 있게 감시했다고 칭찬할 것인가? 나는 결백하므로 무관하다고 외면할 것인가? 두 가지 태도 모두 결국에는 국민 모두의 인권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기에 처하게 할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5월 회동 이전에도 국정원은 막연한 의심에 근거해서 지속적으로 감청해 왔다. 누가 국가정보기관에 이런 초헌법적 권한을 허용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사건에서 통신의 비밀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은, 국정원이 불온시 하는 이들 뿐 아니라 결국 전 국민의 통신의 비밀 원칙이 무너진 것과 다름이 없다.

국정원 전경

▲ 국정원 전경


시민들이 국정원이 자신을 감시할까봐 두렵거나 최소한 찜찜한 마음이라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감시사회가 도래했다는 증거이다. 최근 미국 정보기관이 전 세계 인터넷을 감시하고 심지어 암호화된 통신 조차 마음대로 열어보았다는 사실이 세계 시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폭주하는 정보기관을 막지 못하는 국가, 시민들이 정보기관을 두려워하는 사회에서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필요한 국가정보원 개혁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사건이 불거진 시점이 국정원에게 어떤 상황이었는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인터넷 여론 조작으로 야당 뿐 아니라 사회 비판적 주장들을 싸잡아 '종북'으로 몰아붙이면서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던 국정원이다. 그 국정원을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는 매우 절박하면서도 아직도 유효하다.

물론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경선 논란 당시 폭력 사태를 일으키고 계속된 말 바꾸기로 국민들의 신뢰 위기를 자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외면보다 국정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필요한 때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결코 제도 정치권에서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에 반대한 국회의원을 색출하고 자본론을 강의하는 교수를 학생이 신고하는 작금의 사회 분위기는 매카시즘의 전조로 보인다. 1950년대 매카시즘이 미국사회를 풍미했던 기간은 불과 5년도 되지 않았지만 미국 사회 전반에 미친 후유증은 그 이상이었다. 국회에서 시작된 매카시즘은 언론이 앞 다투어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확대되었고, 미국 민주당은 색깔론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이에 동조했다. 이후 매카시즘은 선거 뿐 아니라 공무원, 언론, 학계, 예술계 등 사회 전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모든 이들의 말과 글과 사고에 오랫동안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노동조합 등 사회운동 진영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종북 검찰" "종북 게이" 라는 말까지 등장하며 '종북'이 모든 토론을 가로막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의 주장과 다르면 모두가 종북인가? 다른 체제를 상상할 자유가 금기시 되어야 하는가? 국정원 요원은 조력자 한두 명만으로 아이디 73개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하나를 손쉽게 유린했다. 인터넷과 국민 여론은 생각보다 조작에 취약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의견들이다. 다른 생각, 다른 판단을 불온시해서는 안 된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잠식하는 공포를 이겨낼 시민들의 혜안과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 사건 때문에 국가정보원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위협하는 정보기관은 필요 없다. 비밀이 보장된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함께 갖는 "비밀경찰" 제도는 인권유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에, 전 세계 민주 국가들은 모두 이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의 수사권과, 그 수사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마구잡이 감청하는 권한을 모두 폐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