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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80명의 여자들이 모이면 페미니즘 캠프가 된다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페미니즘 캠프를 다녀왔다. 페미니즘 캠프는 현재 언니네트워크가 주최하는 문화행사이지만 사실 언니네트워크라는 단체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행사이기도 하다. 1997년 70명의 대학생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서로의 고민과 힘을 나누었던 3박 4일간의 캠프의 이름이 ‘페미니즘 캠프’였고, 그 캠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언니들이 2004년 여름 다시 일을 냈던 것. 계기는 2004년 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영화 <급진적 하모니>였다. 70년대 페미니스트들의 문화운동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이 영화에서, 출연하는 모든 밴드의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무대 엔지니어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 그리고 관객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자들로만 구성된 문화공연을 하면서 한 공간에서 모여 캠핑을 하며 해방감을 느끼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고 필을 받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매년 여름 페미니즘 캠프는 수십 명에서부터 많게는 150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어떤 공간을 점유하며 몇 날밤을 함께 보내는 캠프였다.


2009년 6회 캠프를 마지막으로 안녕을 고했던 페미니즘 캠프를 3년 만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이대로 끝내지 말아 달라는, 여름이면 캠프 없이 허전해서 못살겠다는 지난 캠프 참가자 언니들의 아우성(?) ‘덕분’이었다. ‘캠프 미친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언니들이 매 캠프마다 한두 명씩은 등장하곤 한다. 캠프가 끝나고 나면 여성주의 사이트 언니네에는 거의 간증에 가까운 글들이 올라온다. 2009년 마지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열렸던 캠프의 이름을 ‘파이널 판타지’라고 정했던 것도, 지난 캠프에 참여했던 언니들이 직접 써준 소감문에 자주 등장했던 단어가 ‘천국 같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지 간다.” - 우테 에어하르트

페미니즘이 기존 젠더 규범에 균열을 내고 뒤흔드는 것이기에 여성주의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쁜 여자’로 살아갈 용기를 내는 일이다. 그것이 용기인 이유는 ‘착한 여자’에게 할당된 천국의 몫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딸이 여성단체 활동가라고 하는 사실을 안 뒤부터 우리 어머님께서는 딸의 인생이 지옥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노심초사하고 계신 모양이다. 결혼할 남자도 없이 혼자 외롭게 늙어 죽으면 어떡하느냐는 엄마의 말을 듣노라면 나는 마치 인생을 포기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하지만 사회에서 어떤 여성에게 할당하는 몫의 천국을 거부했다고 해서 내가 지옥에 가기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내가 여성주의자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내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생의 모습들을 상상하고 기획할 수 있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반드시 남자와 결혼 관계를 맺지 않고도 외롭지 않을 수 있고 지금처럼,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나의 말이 그저 ‘혼자서 하는 철없는 망상’이 아니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페미니즘 캠프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수십 명 언니들의 존재만으로도 증명된다.

정말인지 언니들은 ‘어디에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페미니즘 캠프를 통해 다양한 수십 명의 언니들을 만나게 된다. 사는 지역도, 나이도, 성 정체성도, 각자가 가족이나 결혼제도와 맺고 있는 관계도, 여성주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나 가지고 있는 관심의 정도도 각기 다른 여성들이 나름의 속도로 2박 3일 동안 그것을 나눈다. 이것을 ‘천국에 온 것 같은 해방감’으로 느낀다고 하는 것 자체가, 그만큼 이 사회가 이토록 다양한 여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여자가 할 수 있는 옷차림’,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욕망’, ‘여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영역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것은 듣지 않아도 뻔한 것, 사소한 것, 혹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가정되며, 따라서 이야기할 것도 들을 것도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것이 여성이 타자화되는 방식이다.

“남들이 당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남들이 말하게 하지 말라.” - 마사 킨더


그렇기에 여성들이 ‘여성의 경험’, ‘여성의 이야기’로 당연히 가정되는 것 뒤에 숨지 않고 자기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일에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모든 여성이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당연히 가정되곤 하는 전제를 넘어 서로의 성 정체성이 다양할 수 있음에 대해 생각하고 존중하자고 하는 약속을 매회 페미니즘 캠프에서 공유해 왔고, 다양한 성 정체성에 대해 탐색해보거나 레즈비언 여성들의 욕망이나 고민에 대해 함께 나누는 이야기방이 열려왔다. 실제로 페미니즘 캠프를 계기로 해서 다양한 성 정체성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되거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거나 열어두고 생각하게 된 언니들이 많다.

종종 캠프에 참여한 몇몇 이성애자 언니들이 자신이 이성애자임을 밝히거나 자신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혹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언니들에게 불편한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긴장과 걱정을 하게 된다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함을 넘어서는 것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이든지 간에 어쩌면 누구에게나 당연히 불편하고 긴장되고 일일 것이고 사실은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른 이에게 설명하고 이해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자신을 향한 이해의 길의 첫 발자국을 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용기를 확인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서로가 서로에게 전염시키는 것을 보고 직접 경험하는 일은 무척이나 감동적인 일인 것 같다. 캠프에서의 언니들과 보낸 2박 3일 저마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좋은 청자가 되어주고 때로는 서로 때문에 긴장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 경험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타자가 되는 시간을 나누는 동안, ‘아, 그래 이렇게 언니들을 만나려고 여성운동 하는 거지.’라는 문장이 절로 떠오르곤 했다.

2박 3일의 캠프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 서울. 버스 창문 위로 비치는, 그새 낯설어져 버린 서울의 풍경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언니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다시 창밖의 풍경을 마주 볼 힘이 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일하는 공간에서는 누구나 자신에게 당연하게 반말을 하는데 여기는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다고 말하던 언니, 나이가 많아 걱정했는데 레즈비언이라고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을 때만큼의 해방감을 느꼈다는 언니, 친구들과 함께 대학에서 여성주의 모임을 시작해볼 힘을 얻었다는 언니. 각자의 언니들의 걸어가는 그 길들을 열렬히 응원하고 지지한다.
덧붙임

자루 님은 언니네트워크(www.unninetwork.net) 활동가입니다. * 이 글은 여성주의 커뮤니티 사이트 ‘언니네’(http://www.unninet.net/)의 채널[넷]에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