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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법조계의 ‘강제추행’과 ‘성희롱’ 사이 묘한 줄타기

경북 칠곡 골프장 성추행 사건을 바라보며

지난 3일 대구지법이 밝힌 한 ‘성추행’ 판결이 7월 첫째 주 트위터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2011년 9월 3일 경북 칠곡에 있는 한 골프장에서 골프장 직원이 골프용품 매장 여성의 가슴 부위를 손가락으로 찌르고 등 부위를 손으로 쓰다듬은 혐의(강제추행)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대구지법은 사건이 공개된 장소에서 일어났으며, 피해자를 ‘손가락으로 찌른 부위는 ‘젖가슴’보다는 쇄골에 더 가까운 곳으로서 성적으로 민감한 부분은 아니’었다며 판단 근거를 제시했다. 또한, 가해자의 행위가 ‘1초도 안 되는 극히 짧은 순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적 수치심을 느끼기보다는 당황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주장한 ‘등을 쓰다듬었다’는 것과 ‘오른쪽 팔과 가슴을 만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증거 불충분의 이유로 피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건이 ‘전형적인 성희롱의 양태에 해당’하지만 강제추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건이 보도된 당시 트위터리안들과 네티즌들이 제기한 문제의 요지는 “재판부가 이제 개인의 성감대까지 판단하냐”였다. ‘가슴’이 아닌 ‘쇄골’ 부위이기에 성적으로 민감한 데가 아니라 성적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을 거라는 판단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판사가 언급한 판결문의 기저에는 여성의 육체를 비인격적 대상으로 상정하고 이를 분해한 뒤 ‘가슴’이나 ‘성기’ 등의 ‘성적으로 민감하다고 여겨지는 부위’를 접촉했을 때에만 성적 불쾌감을 느낀다는 차별적 시선을 담보하고 있다. 어떤 신체 부위를 건드렸느냐와 상관없이 자신의 (사회적 혹은 물리적 등등의) 권력을 이용해 성적으로 상대방에 신체적 접촉을 시도했고 이로 인해 상대방이 성적 모욕감을 느꼈다면 이는 성추행으로 성립된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면 ‘성희롱’으로 민사를 걸어 손해배상을 받는 대신 형사처벌을 받게 하는 ‘강제추행’으로 이 사건을 진행했을까 의구심이 든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 왜 강제추행죄가 성립하지 못한 것일까? 우선 강제추행과 성희롱의 차이를 먼저 짚어야 할 것 같다. 성희롱은 직장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인 말과 행동을 해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이다. 반면 강제추행은 폭행이나 협박으로 상대방을 항거불능 상태로 만든 뒤 성적 수치심이나 도덕감을 현저히 해할 수 있는 행동을 범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한 마디로 이 둘의 차이는 ‘폭행․협박’에 의해 이루어졌느냐 아니냐’이며 강제추행의 경우 육체적 접촉이 있어야 한다. 강제추행은 강간과 함께 성범죄에 해당돼 형사처벌을 받지만, 성희롱은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따른다.

강제추행의 경우 반드시 강한 강제력에 의해 폭행․협박이 발생하지 않아도 성립할 수 있다. 실례로 2002년 대법원은 강제추행죄가 상대방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이뤄지는 경우뿐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 인정되는 경우에도 포함한다고 선고한 바 있다. 대법원은 덧붙여 폭행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힘이 행사되었을 경우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부인이 경영하는 식당 지하실에서 가해자와 식당 종업원들이 노래를 부르며 놀던 중 가해자가 노래를 부르는 피해자를 뒤에서 껴안고 블루스를 추면서 가슴을 만진 사건이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우발적으로 껴안았고 피해자의 가슴을 의도적으로 만진 게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가해자의 행위가 순간적이었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힘의 행사가 있었으며,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한 강제추행이라고 밝혔다.

2008년 경남 골프장에서 발생한 ‘러브샷’ 사건 또한 강제추행 혐의가 적용됐다. 골프장 사장 친구이자 회원인 가해자(48, 건설업)가 골프장 내 식당 종업원(28, 여)에게 사장 친구임을 언급하며 강제로 목을 팔로 껴안고 볼에 얼굴을 비비는 러브샷을 시도해 기소됐다.

대구 칠곡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골프장 직원인 가해자 A씨(38)가 골프장 내 매장 직원인 C씨(20)에게 범한 경우다. 가해자 진술에 따르면 A씨는 당시 동료 B씨와 함께 매장에 들렀다. A씨는 C씨에게 “나랑 한번 사귀어 볼래”라고 말했고, 동료 B씨는 “A는 키도 훤칠하다”며 거들었다. 이에 A씨가 “얘는 내가 찍었다”며 가슴 부위를 찌른 것이다(동료 B씨 또한 당시 다른 매장 직원을 추행해 혐의를 받았지만,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해 혐의가 기각됐다).

위 대법원 판결 내용을 고려한다면 A씨와 C씨는 ‘갑’과 ‘을’의 관계로 A씨가 범행을 행하였을 당시 C씨는 이를 강력하게 뿌리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성추행을 당하고도 일을 중도에 그만두고 그곳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고 끝까지 근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었다). A씨가 B씨를 찌른 부위와 상관없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얘는 내가 찍었어”라는 성희롱적 발언과 함께 B씨의 육체를 접촉했기 때문에 충분히 성적 욕망을 통한 동기로 범행을 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구지법은 위 판례를 고려해보더라도 가해자의 행동이 ‘건전한 상식 있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행태라고 곧바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증거로 제시된 폐쇄화면영상(CCTV) 판독 결과 가해자가 피해자를 찌른 부위가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가 아니며 ‘등을 쓰다듬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어깻죽지를 만진 것으로 보일 뿐 ‘쓰다듬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판결 내용은 지난 3일 일제히 보도되었고 트위터리안들과 네티즌들의 빈축을 샀다. 대구지법 재판부는 판단 근거로 ‘건전한 상식 있는 일반인의 관점’을 제시했는데 이들의 반응은 대구 재판부가 이를 진정 판결의 근거로 적용했는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강제추행과 성희롱과 같은 경계가 모호한 혐의는 판사 개개인의 역량, 성향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는 상황을 보여줄 뿐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의 발생을 막기 위해 성폭력상담소 등의 여성단체는 판사들에게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판사들의 성인지적 관점 형성을 위한 자료들을 배포하고 있다. 하지만 큰 실효성을 거두긴 어려운 실정이다. 법과 각종 정보에서 접근성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소수자들에게 소수자 감수성이 부재한 법조인들에 의해 그들의 안전권이 맡겨진다면, 소수자들의 권리는 그만큼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가? 현 법률시스템을 유지하는 테두리 안에서는 판사들에게 의무적으로 소수자 감수성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간 외의 성폭력의 경우 이를 ‘경미한’ 수준으로 판단하고 감형하며(강간죄든 강제추행죄든 모두 친고죄에 해당하고 형량도 턱없이 작은 현실), 직장 내 권력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성추행을 ‘성희롱’이라고 설정하고 형사처벌조차 감행하지 않는 현 법률체계 자체를 바꿔나가는 방법들을 함께 고민하면서 말이다.
덧붙임

코린님은 언니네트워크(www.unninetwork.net) 활동가입니다. * 이 글은 여성주의 커뮤니티 사이트 ‘언니네’(http://www.unninet.net/)의 채널[넷]에 동시 연재됩니다.